외래, 외래, 외래.

병원 다니다 애 잡을 뻔

by 오늘


재재가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퇴원하면서 받아 든 진료과 항목은 다음과 같았다.

- 소아청소년과(=소아과, 정기적 검진을 위함)

- 소아신경과(뇌 관련)

- 재활의학과(발달장애가 예상되므로)

- 신장내과(단독신장으로 인한 문제가 없는지 추적관찰)

- 소아비뇨기과(잠복고환)

- 이비인후과(만일을 대비한 청력 정밀검사)

- 정형외과(쌍둥이 중 첫째에게 간혹 발견되는 고관절탈구가 있는지 확인)

- 소아심장과, 흉부외과(동맥관개존증-심장 구멍이 덜 닫힘)


그리고 부모를 위한 완화의료과까지.

이 중 소아청소년과, 재활의학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심장 관련 과는 출생병원인 이대목동병원에서 보고, 나머지 과들은 출생병원에 없어서 서울대 어린이병원으로 다니기를 권유받았다. 우리 집은 경기도 남쪽에 있어서 이대목동병원까지는 40분 남짓, 서울대병원까지는 한 시간이 좀 넘게 걸렸고, 출퇴근 시간에 걸리면 시간은 그 배로 늘어났다. 병원 스케줄을 정리해서 달력에 적기만 했는데도 숨이 턱턱 막혀왔다. 짧은 시간 만났지만 너무나 극적인 일로 엮이는 바람에 그새 정이 든 것 같은 소아청소년과 교수님은 시간이 좀 지나면 이렇게 자주, 많은 외래를 다니지는 않을 거라고 위로해 주었다.


나나도 많은 곳에 문제가 있었지만 입원 중이라 급한 일은 그곳에서 다 해결되고 있었다. 나는 재재와 치러야 하는 코앞의 일들이 너무 버거워서 차라리 나나가 입원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코앞에 놓인 외래 시간표만 확인하며 하루 하루 버겁게 병원을 전전했다.



2024년 11월 15일


첫 외래는 다행히도 평범한 신생아 검진을 위한 것이었다. 신생아는 다 비슷비슷하기에 우리 재재는 머리둘레가 유난히 작은 것 빼고는 별다른 아픈 티가 나지는 않았다. 몸집도 워낙 작았기 때문에 머리크기가 이질적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사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아기였다. 덕분에 그날따라 바글바글했던 신생아와 아이 부모들 사이에서 우리도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신생아 부모 연기를 할 수 있었다. 교수님은 잠복고환을 지켜보자는 얘기를 했고, 경련 양상이 없는지 물었고, 서울대 외래를 잘 잡았는지도 물어봤던 것 같고, 엉덩이에 딤플이 보여 지켜보자고 했고, 마지막으로 머리둘레가 작게 태어난 데다가 자라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보였다. 심각한 얘기를 맨 마지막으로 미루고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배려에 서글프면서도 고마웠다.


2024년 11월 19일


재재의 이비인후과 외래였다. 나나도 외래를 보기로 했지만 아직 입원 중이라 재재만 데리고 갔다. 청력 정밀검사의 예약을 잡기 위한 단계로 의사에게 얼굴을 보이고 설명을 듣는 절차적 외래였다. 이비인후과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유난히 많았다. 너무나 작은 재재에게 사랑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보내주는 분들이 많았다. 이런 시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그냥 웃거나 모른 척했던 것 같다.


2024년 11월 26일


서울대 첫 외래는 재재가 생후 31일차가 되던 날이었다. 처음 가는 서울대병원 행차에 왠지 긴장을 했지만, 재재가 차에서 너무 심하게 울어재껴서 긴장은 물론 진이 다 빠져 도착했다. 아기는 드라이브를 즐길 줄 몰랐고, 날이 쌀쌀해서 혹여나 감기에 걸릴까 히터까지 켰으니 바구니카시트 안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차에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내가 아기를 안고 먼저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남편은 주차를 하러 갔다. 혼자 아기를 안고 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지나가는 할머니들마다 애기가 춥다고, 양말이 얇다고, 뭐라도 씌우라고 다들 한 마디씩 하셨다. 갑자기 되게 평범한 육아를 하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묘했다.


소아신경과 외래를 보기 위해 진료실 쪽 대기석에 앉아있으니 그제야 우리 애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와닿기 시작했다. 10살은 되어 보이는데도 목도 완전히 가누지 못한 채 휠체어형 유모차에 앉아있는 아이, 아예 이동 침대 같은 곳에 누워있는 아이, 기계를 달고 있는 아기,... 다른 아이들을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는데도 이런 풍경이 곁눈으로도 쉽게 들어왔다. 진료를 보러 들어가자마자 교수님이 재재를 보고는 "아구.. 이렇게 애기가 왜 이런델 왔니" 하셨다. "그러게요"라고 애써 웃음을 섞어 대답했다. 출생병원에서 찍은 MRI를 서울대병원에서 다시 분석할 수 있게 등록하기로 하고, 혹시 모를 경련 가능성에 대비해 3개월쯤 뇌파를 찍기로 했다. 염색체 검사 결과에 이상이 없었다는 얘기를 듣고 교수님은 유전자 검사를 권했다. 유전자 검사를 위해 피를 뽑으며 재재는 당연히 악을 쓰고 울어댔다. 우는 재재를 꽉 붙잡고 있다가 달래서 데리고 나오면서 남편의 얼굴이 보이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엉엉 울었다.


2024년 11월 29일


재재의 예방접종 겸 검진으로 또 이대목동 소아청소년과에 갔다. 접종만 할 줄 알고 마음 편히 먹고 갔는데, 엉덩이 딤플이 아직도 보인다고 했다. 딤플은 또 무엇인가. 딤플은 엉덩이 보조개라고도 불리는, 엉덩이 사이에 함몰자국이 있는 것이란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그곳에 살이 채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초음파를 찍어보면 95퍼센트의 아기들은 정상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들어서 그런가 초음파를 찍으면서도 큰 걱정을 안 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데 이것까지 문제일리가 없다고 또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5퍼센트의 확률을 간과하다니 참나. 우리 애는 그거보다 훨씬 더 희귀한 확률의 질환을 이미 가진 애인데 말이다.


사람 맘이 참 우스운 것이, 예방접종을 위해 양쪽 허벅지가 찔려 병원이 떠나가라 우는 재재를 보면서는 별로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분명 며칠 전 유전자 검사를 위해 피를 뽑을 때보다 더 울면 울었지 덜 울진 않았는데도 말이다. 잠에 들면서도 울음기가 남아 몸을 때때로 들썩거리는 재재가 귀엽기만 했다.


2024년 12월 9일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가서 신장내과 진료를 보았다. 신장내과 교수님은 재재와 나나의 소아과 교수님의 친구분으로 소개를 받은 분이었다. 뭐라고 말을 전해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친절한 진료를 해 주셨다. 당장에 신기능에 문제가 있지는 않아 보이니 계속해서 지켜보자고 했다. 피검사와 소변 검사를 하고 결과가 괜찮으면 전화로 외래를 보게 될 거라고 했다. 전화 외래가 가능하다니, 너무나 고마웠다.

아기의 소변은 기저귀 안에 비닐 패치를 붙여서 받는다. 피검사를 하면 아기가 울면서 몸에 힘을 줘서 소변이 나올 수 있으므로 패치를 먼저 붙이고 피를 뽑는다고 했다. 이번에는 남편이 피를 뽑는 아이를 붙잡고 있기로 했는데, 검사실 바깥에 앉아 있는데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피검사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따라 울기도 하고, 지나가는 보호자들이 '에구 애기 많이 우네'... 하는 말도 들렸다. 나는 또 마음이 요동쳤지만 그래도 울지 않고 잘 지나갔다.



2024년 12월 10일


딤플 초음파 결과를 들으러 이대목동병원 소아과에 갔다. 결국 초음파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소견을 들었다.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소아신경외과 외래가 추가되었다. 예상치 못했던지라 또 진료실에서 눈물을 한차례 흘렸다. 이 작디작은 아이가 도대체 무슨 문제를 이리 많이 가지고 있는 건지 온 세상에게 화를 내고 싶기도, 좀 이제 봐달라고 빌어보고 싶기도 했다.


친구인 서울대 신장내과 교수님에게 결과를 전해 들었는지 소아과 교수님은 피검사도 다시 해보자고 했다. 칼륨 수치가 높다고 했다. 하루 만에 또 피를 뽑았다. 다행히 조금은 떨어졌지만 칼륨 수치가 경계 수준으로 높았고, 칼륨을 배출하는 약을 먹기로 했다. 이렇게 작은 아기에게 이 약을 처방해 보는 것이 이 교수님도 처음이라고 했다. 약사와 의사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았는지, 남편은 병원 바깥에 있는 약국을 몇 번씩 오가며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가루로 조제된 약과 시럽 형태 약을 잔뜩 가져왔다. 예상치 못하게 오랜 시간 병원에 있는 바람에 아이는 배가 고파서 화가 났고 내 젖은 유축을 못 해 퉁퉁 불어서 아기가 먹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나도 아기도 모두가 괴로운 상태로 겨우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2024년 12월 16일


지난번에 서울대 신장내과에서 한 피검사 결과가 좋지 못해 전화 외래가 취소되고 직접 병원에 갔다. 또 한 차례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아이가 바늘에 찔려 우는 모습에 그렇게 눈물이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검사를 마치고 외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간호사실에서 연락이 왔다. 검사 결과가 나왔으니 진료실로 들어오란다. 아직 외래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이런 배려가 있나, 너무 고마워서 얼른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교수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둘째가 아직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그렇다면 잘 됐다고 생각하자며 입원을 하잔다. 약을 먹고 있는데도 칼륨 수치가 오히려 더 높아졌다는 거다. 칼륨수치가 높으면 심장에 위험이 있을 수 있어 치명적이란다. 기왕 해야 하는 다른 과 검사들도 있으니 입원한 김에 하잔다. 말투에서 최대한 내 맘을 편하게 하려 노력해 주는 게 느껴졌지만 또 오랜만에 머릿속이 뱅뱅 돌고 있었다. 입원이라니.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니.


멍한 상태로 안내를 받고, 병실에 도착하고, 소아신장과 5인실 병동에 자리를 안내받아 짐을 내려놓고, 입원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 오라고 남편을 보내고, 작은 아기용 환자복으로 준비된, 병원 마크가 박힌 배냇저고리를 입혀 아기를 침대에 눕히고 나서야 이 상황이 실감이 났다. 재재도 왠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듯했다. 아기를 안고 무릎에 올려놓았다. 아기와 마주 보고 있으니 또 지겹게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놈의 눈물은 마르지도 않는지 짜증이 확 나려는데, 재재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안 그래도 통통한 볼이 옆으로 부풀어 오르고 입가가 쫙 찢어지면서 얼굴이 시뻘게졌다. 응가를 하는 표정. 재재는 지난 3일간 응가를 못했었다가 아침에 조금 하긴 했는데, 그래 우리 효자 병원 다녀와서 마저 응가 다 하자 마사지 해줄게~ 했었는데... 헉.


재재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이었고, 곧 3일의 묵은 응가들이 터져 나오는지 뿌드득 소리와 함께 온 주위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재재의 표정이 평안해졌을 때 살펴보니 배냇저고리의 등허리 안쪽이 노랗게 되어 있었다. 맙소사 아직 샌 똥은 안 치워봤는데... 일단 침대 커튼을 열고 아기를 안고 나갔다. 병실 안에 보호자들이 모여 두런두런 대화를 하다가 나와 재재를 보고 반가움의 미소를 보여주었다. 처음 들린 말은 "어머 신생아다~~ 나 한 번만 안아봐도 돼요?"였다. 나는 어찌할 바 모르고 아기가 똥을 쌌다고 말했다. 곧바로 세 명의 엄마들이 달려들었다. 아기를 안아보고 싶다고 했던 엄마가 재재를 안았다. "냄새나는데..." 하자 "애긴데 어때요!" 했다. 다른 엄마는 온수가 나올 수 있게 병실 안에 있던 세면대 물을 틀어두었다. 망설이며 "세면대에서 엉덩이 닦아도 돼요?" 하자 다른 엄마가 또 "애긴데 어때요!" 했다. 덕분에 나는 새 기저귀와 새 배냇저고리와 물티슈를 준비해 두고 재재를 받아 엉덩이를 씻겼다. 그러는 동안 다른 엄마가 재재의 똥기저귀를 치워주었다. 너무 쉽게 응가 처리를 했다. 재재를 안고 감사 인사를 하자 다들 손사래를 쳤다.


"아기 며칠이에요?"

"이제 50일 정도 됐어요"

"아유 너무 힘들겠다. 나도 그맘때 애기 처음 입원시켰는데, 진짜 힘들었는데, 어떡해 너무 힘들죠"


똥치우느라 겨우 들어간 지겨운 눈물이 또 터졌다. 마침 그때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어머 재재어머님!!! 무슨 일이에요!!!"

"아니... 애가 응가를 했는데..."


까지 밖에 말을 못 하고 또 눈물이 더 터져 나왔다. 간호사 선생님은 순간적으로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가, "아이고 애기가 응가를 해서 어떡하지?! 뭘 도와드릴까요?!" 라며 무조건적인 공감의 태도를 일단 보여주었다. 이대로라면 애기가 입원까지 한 상황인데 고작 똥 싼 게 곤란해서 우는 이상한 엄마가 된다 하는 생각에 눈물이 뚝 멈췄다. 여기 계신 분들이 너무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눈물이 났다고 다행히 얼른 해명을 했다.


재재는 속을 비워낸 덕에 배가 고파졌는지 찡얼거리기 시작했고, 입원을 전혀 예상치 못하고 준비해 온 분유는 다 떨어졌지만 다행히 젖이 적절하게 돌아서 얼른 아이를 먹였다. 재재는 적당히 먹었는지 곧 잠이 들었다. 남편은 최선을 다해 빠르게 집에 다녀오고 싶었지만, 그 시기는 서울에서 한창 대통령 탄핵 시위가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많은 길이 가로막힌 탓에 한밤중이 되어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급하게 챙기느라 유축 깔때기는 가져왔는데 유축기를 안 챙겨 왔다. 어차피 상주보호자는 1인만 가능해서 새벽에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운전을 해서 집으로 왔다. 서둘러 유축을 했는데, 젖이 그냥 물처럼 투명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게 몸에서 드러나는 것 같아 속상하면서도 신기했다.


잠시 쪽잠을 자고 짐을 챙겨 병원으로 돌아갔다.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게 될까 봐 전동 모빌도 초점책도 꾸역꾸역 챙겼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새벽의 불 꺼진 병원 통로를 따라 걸으면서 이 길이 앞으로 나의 인생길인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나 또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다음날 아침에 한 피검사에서 재재의 칼륨 수치가 극적으로 떨어졌다. 입원하면서부터 쓴 새로운 약이 재재에게 잘 든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소 허무하지만 행복하게, 많은 양의 약을 기꺼이 받아 들고 바리바리 싸와 풀어둔 짐을 다시 바리바리 싸서 퇴원했다.


2024년 12월 24일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여러 과의 진료를 보았다. 비뇨기과, 신경외과, 신장내과.

신장내과 진료를 위해 우선 소변검사와 피검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는 소아 비뇨기과 진료가 먼저 있었다. 진료실에 들어가 아이의 고환을 이리저리 만져보던 교수님이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희소식을 전해주었다. 고환이 내려오고 있으니 괜찮을 것 같다고 일 년 뒤에 오란다. 괜찮다니. 정상이라니. 기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교수님도 아이의 차트를 보더니 "과가 하나라도 줄어서 다행이네요" 했는데 내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온 줄 알았다. 진료실을 나와 곧바로 친구들에게 "☆ 경 재재 꼬추내려옴 축 ☆" 메시지를 보냈다. 웃으라고 보낸 건데 다들 너무나 진심으로, 한 마음으로 축하해 주어 또 울컥 할 수밖에 없었다.


소아 신경외과는 딤플이 의심되는 다른 아기들 몇 명과 함께 들어갔다. 미리 안내받은 대로 들어가자마자 다른 부모들도 나도 각자의 아이를 엎드려놓고 엉덩이를 착착 깠다. 마치 딤플 진단 공장 같았다. 물론 그 상태에서 진료도 보는 건 아니고, 교수님이 아이들의 엉덩이를 한 번에 보고 나서 다시 우르르 나온 후 한 명 한 명씩 다시 들어가 진료를 보는 식이었다. 그렇게 하는 게 효율이 좋은가 본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초조한 와중에도 웃음이 났다. 재재의 딤플은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우선 서울대병원에서 초음파를 다시 찍어보자고 했다.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니! 초음파 결과는 어떨지 몰라도 일단은 또 기쁜 소식이었다.


신장내과에서도 약이 계속 잘 드는지 칼륨수치가 괜찮다고 했다. 약이 맛이 없는지 약을 먹일 때마다 전쟁을 치렀는데 그래도 보람이 있어 기뻤다. 희망적인 날이었다.

2025년 1월 7일


이 날은 아침부터 이대목동병원에 갔다가 오전 늦게부터 오후까지는 서울대 진료가 있어 가장 바쁜 날이었다.


아침 진료는 정형외과였다. 고관절 탈구가 있는지 확인하는 진료였다. 그 전 주에 찍은 초음파 영상을 확인하고 교수님이 직접 아이를 만져보기도 했다. 재재는 그 무렵 바지를 벗기고 다리를 만지면 시원한지 눈이 땡그래져서 만져주는 사람을 쳐다보곤 했다. 그날도 재재는 자신의 다리를 요리조리 만지는 교수님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얌전히 있었다. 고관절은 정상이었다. 점점 더 괜찮다는 진단이 늘어가니 희망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다음 차례는 서울대 소아신경외과에서 딤플 초음파 찍은 것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전에 이미 이상소견을 들었었기에 여기에서는 문제가 있음을 확인받을 거라고 각오를 하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띠용. 괜찮다고 했다. 이야기를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교수님의 말을 요약하면 아예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의 문제는 거의 정상으로 봐도 된다는 거였다. 다만 딤플은 소변보는 기능과도 관련이 있고, 아이가 신장에 이슈가 있기 때문에 좀 더 엄밀히 하는 차원에서 3개월 뒤에 다시 보자고 했다. 딤플에 문제가 있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들어서 또다시 서울대에 입원할 것을 각오했었는데, 또 한번 뛸 듯이 기뻤다.


신장내과도 무사통과였다. 계속 수치가 괜찮으면 다음번에는 약을 줄여보자는 말도 들었다. 모두 통과라니('일단'이라는 전제가 붙지만)! 다음 날이 내 생일이었는데, 선물을 미리 받은 것만 같았다.




그 후로도 외래 러시는 물론 한동안 계속되었다. 몇 개 과 외래가 종결되어 기뻐한 것이 무색하게 소아신경과 협진으로 유전학과가 추가되었고, 신장내과에서 정기적으로 한 검사에서 신장 관련 수치들은 좋아졌지만 호중구 수치와 간수치가 한동안 말썽이어서 소화기내과와 혈액종양내과 진료가 추가되었다. 나나가 퇴원하면서는 나나의 외래도 시작되었다. 나나는 이대목동병원에서 소아과와 내분비과, 소아심장과와 흉부외과, 재재와 같이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재활의학과 외래를 차례로 다녔다. 나나도 간수치 때문에 최근부터는 서울대 외래도 다니고 있다.


재재와 나나 둘 다 3개월 무렵 청력 정밀검사를 하였고, 둘 다 약간의 걱정은 있긴 하지만 큰 문제는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 또 나나도 정형외과를 한 번에 통과했다. 그러나 다운증후군 아기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갑상선기능저하증으로 소아내분비과는 꾸준히 보고 있다. 재재는 지금까지 뇌파 검사를 두 번 하였고, 다행히 아직 경련 파는 발견되지 않았다. 신장내과 약은 현재 완전히 끊은 상태이다. 재활의학과는 매주 재활을 다녀야 해서 거리가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재재와 나나 둘 다 매주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하고 있다.


소아과 교수님의 말처럼 이제는 그렇게 자주 대학병원에 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꼭 외래가 있긴 하다. 우리도 능숙해지고 아이들도 나름 커서 전에 비하면 정말 다닐만하다. 나는 꽤나 단단해져서 이제는 피를 뽑는다고 해서 속상하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저 재재와 나나가 '자기 나름대로' 건강하고, 때때로 좋은 소견을 받기도 하고, 특히 재재가 아직 경련을 하지 않고 있음에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아기의 병명을 처음 듣고 검색을 할 때에는 혹시 아이가 경련을 하면 어떡하지. 혹시 신장 기능이 안 좋아져서 투석이라도 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외래를 다니면서 의사를 만나고 주변에 있는 환아들을 보고 그 가족들을 보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이의 상황에 익숙해지면서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정말로 잘 알게 되었다.


처음 재재를 데리고 서울대병원 소아신경과 진료를 보러 갔을 때, 뇌성마비인듯한 어린이가 휠체어에 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고개가 삐딱하고 팔 한쪽이 안으로 말려있는 듯했고 눈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속상함이 밀려오는 마음이 드는게 미안해져서 황급히 표정을 숨기고 시선을 거두려는데, 아이의 아버지가 그 말려있는 아이의 손을 잡고 리듬을 타듯이 흔들흔들거리며 놀아주자, 순간적으로 아이가 소리 없이 입을 크게 벌리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정말로 눈부시게 예뻐서 실례인 줄도 모르고 한동안 멍하니 쳐다보게 되었다. 동시에 뒤쪽에 앉아있던 다른 환아의 부모님들이 양쪽에서 자신의 아이를 꼭 끌어안고 우리 재재를 바라보며 "너도 저렇게 작았어. 아기 너무 예쁘지"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재재를 낳고 한 달이 된 때였지만, 그 순간에서야 나는 재재를, 나나를, 그리고 재재와 나나를 낳은 내 삶을 훌쩍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 같다. 아이가 자라 어떤 모습이어도 나름대로 괜찮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부자의 모습처럼, 뒤에 앉은 세 가족처럼, 나는 적어도 때로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 후에도 휘청거리던 순간은 꽤 있었다. 재재가 입원했을 때 그랬고, 소아신경과 교수님이 무척 친절하면서도 난감한 얼굴을 하고 재재의 뇌 상태를 보니 좋은 얘기를 해주긴 힘들다고 했을 때 그랬고, 재활의학과 정기 외래에서 재재와 나나 모두 발달지연이 있고 재재는 특히 심각하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을 때 그랬고, 뭐 앞으로도, 내가 얼마나 더 단단해지더라도 아이를 붙들고 우는 일이 없을 거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재재와 나나가 이렇지 않았으면, 정상이었으면 하는 생각은 적어도 그 이후로는 하지 않는 것 같다. 내 아이들은 이 아이들이 갈 길로 자라날 갈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든 나는 이 아이들의 엄마로서 조금만 절망하고 조금은 더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기록을 하고 쭉 읽어보니 저 시간동안 너무 종종거리기만 했던 내가 안타깝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론 그 시간을 무사히 지나온 나와 우리 가족이 정말 고맙고 대견하다. 다음 주에는 또 재재의 신경과 외래가 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는 나나의 소화기내과 외래가 있다. 전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대학병원 외래는 우리의 일상이다. 아직까지는 어떤 날은 지치고 어떤 날은 무척 맘 졸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느 순간엔 그냥 평범한 하루를 보내듯이 평온한 마음으로 그런 날들도 잘 살아갈 수 있으려나. 흠... 지금 생각으로는 아마 그건 죽을때까지 어렵지 싶다.


그렇다면 뭐, 나 자신 파이팅, 우리 가족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