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힘들다
조리원 생활 중에 애들 출생신고를 하러 주민센터로 외출을 갔던 날, 쌓여있는 택배들을 정리할 겸 집에 잠시 들렀었다. 익숙하고도 너무나 낯선 집이었다. 입원하러 집을 나설 때에는 뒤꼍 작은 공원에 있는 나무들에 반짝이는 진녹색 나뭇잎들이 빼곡하게 달려있었는데, 집을 비운 한 달 새 나뭇잎들은 붉은색이 되어 있었고, 윤기도 사라졌다. 퍼석거리는 나뭇잎들이 작은 바람에도 힘없이 휘날리는 모습이 꼭 내 마음 같았다. 그 나무들이 창을 통해 보이는 뷰 좋은 작은 거실에는 아기들을 위한 매트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아이들의 옷이나 손수건을 담은 트롤리가 있었다. 그 옆으로는 수유의자도 있었다. 거실 끝에 이어진 부엌 한편에는 친구에게 얻은 분유 제조기, 당근으로 구매한 자동 출수 포트기, 몇 개의 젖병, 젖병 소독기, 젖병 보관함이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저딴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애들이 멀쩡하지도 않은 걸 모르고 좋다고 헤실거리며 저런 걸 열심히도 준비해 놨었다.
나나는 아직 신생아중환자실에 있었다. 언제 퇴원할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몸무게도 늘고 있고 태변 흡인된 것도 많이 빠져서 그런가 피부색도 하얘졌는데 호흡이 문제였다. 심장에 구멍이 두 개 있는데 그중 한 개의 문제가 좀 심각해서, 기계 도움 없이 스스로 호흡하는 게 힘들다고 했다. 심장 문제는 다운증후군 아기들에게 흔하다고 했다. 약을 먹고 지켜본다고 했다. 약이 들면 구멍이 닫혀 호흡이 괜찮아져서 금방 집에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아니라면, 수술까지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조리원 퇴소 후 산후도우미를 신청해 놨었던 우리는 또 잠시 고민에 빠졌다. 둘이서 재재 하나를 보는 거야 할 수 있겠지만 나나가 갑자기 퇴원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산후도우미를 취소하지는 않고 연기하기로 했다. 보건소에서 해주는 비용 지원 가능 시기에 한계가 있어서 다른 절차 없이 연기할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우리는 나나가 그렇게 늦게 퇴원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고, 계속 미루다가 업체에서 예약한 좋은 관리사님을 놓칠까봐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일주일만 미루고, 그 후에도 나나가 못 오면 운명으로 생각하고 호화롭게 재재를 돌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조리원에서 퇴소하자마자 일주일간은 재재를 우리 부부 둘이 돌봐야 했다. 처음에는 둘이 하나 보는 거야 어렵겠나 했는데, 다시 잘 생각해 보니 그냥 둘이 아니고 바보 무경력자 둘이 신생아를 봐야 한다는 것이 아주 큰 문제였다. 갑자기 무서워져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는 둘이서 왜 애 하나를 못 보냐고 타박해 놓고는 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얼른 일정을 조정해서 도와주기로 하셨다.
생각할수록 둘이서 잠깐도 재재를 돌보는 것에 자신이 없어진 쫄보 부부는 조리원에서 퇴소하자마자 일단 엄마집으로 갔고, 엄마를 태우고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초겨울이었지만 우리가 너무 꽁꽁 싸맨 채 할머니 집까지 들렀다 오느라 오랜 시간 차에서 데워진 재재는 더워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엄마도 신생아가 오랜만이라, 집에 와 속싸개를 풀어 엉덩이 발진을 보기 전까지는 재재가 왜 우는지 몰랐다. 어른 셋(둘은 쓸모없음)이 애 하나를 보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즉, 재재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더불어 나의 진짜 시련도 시작되었다.
재재는 첫날부터 기저귀를 열자마자 물똥을 발사했다. 아기침대와 패드가 노랗게 다 젖었다. 으악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다가, 곧바로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아이의 엉덩이를 닦았다. 재재는 조리원에서 나오던 날에도 아직 평균 신생아 몸무게에 못 미치는 2.6킬로였다. 재재를 뉘이자 갑자기 작은 아기침대가 너무 광활해 보였다. 갈 길이 멀고 먼 작은 아기. 이 아기가 우리만큼 크게 될 거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고, 그렇게 될 동안(그리고 그 이후에도) 내가 언제나 이 아이의 보호자이자 책임자라는 것은 더욱 아득하게 믿기지 않았다.
재재는 때때로 영문 모르게 울어재끼는 것만 빼면 꽤 잘 적응하고 지냈다. 일주일 동안 엄마가 도와주셔서 나름 수월한 육아를 했다. 나는 조금씩 엄마 옆에서 따라 하면서 이것저것에 능숙해져 갔다.(착각이었던 것 같기도) 그리고 산후관리사님이 두 분이나 오셔서 한 달을 지내는 동안 나나는 계속 퇴원하지 못해서 재재가 두 분의 보살핌을 독차지했다. 나나가 중간에 퇴원할 거라 믿었기에 중간에 취소하지 않았었다. 한 분과 우여곡절 끝에 교체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덕분에 우리는 푹 쉬고 맛난 밥을 먹고 또 관망하듯 육아를 배웠다. 그 무렵 재재의 대학병원 외래가 너무 자주 있어서 재재보다도 우리 부부가 두 분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나나에게 면회도 수월하게 다녔다. 남편은 조금 맘 편히 일을 했다. 원래 나나가 있으면 산후도우미를 연장하려 했었지만 나나는 결국 마지막날까지도 퇴원하지 못하게 되었다. 재재의 외래와 나나의 면회 때문에 도움이 없이는 사실 조금 버거워서, 고맙게도 엄마가 다시 와주셨다.
많은 도움 덕에 이제 육아에 자신이 좀 생겼다고 생각했을 그 시점에, 재재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성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재재는 무척 예민한 아기였다. 알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뇌구조에 이상이 있어서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평범한 사람들처럼 편안하게 처리하기 힘들 거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재재는 무척 잘 놀랐고, 잠에 들었다가 자주 깨어나 울었고, 울기 시작하면 정말 무슨 일이 날 것처럼 혓바닥이 새카매지도록 숨도 쉬지 않고 울었다. 이미 아이 둘을 키운 엄마도 재재가 심하게 울 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꼭 안아도 보고 아이를 안고 일어났다 앉았다도 해 보고 쉬~하는 소리도 내 보고 이렇게 저렇게 두드려도 보고 하면서 아이가 울음을 멈추면 그 방법을 기록해 놓고, 다음에 또 안 통하면 다시 다른 방법을 찾아 헤매었다. 의사에게서 경련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보니, 자그만 아이가 악을 지르듯 계속 울 때면 혹시나 이러다 경련을 할까 봐 걱정되었다. 아이의 울음은 점점 빈도가 잦아져 어느새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우리를 괴롭혔다. 아이를 보고 있지 않을 때에도 울음소리가 들리면 잘 수가 없었다. 우리는 점점 피폐해져 갔다. 체력과 감정이 바닥까지 떨어졌던 어느 밤엔 어떻게 해도 그치지 않고 우는 아이를 안고 방구석에 가서 나도 함께 엉엉 울면서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너 어디가 그렇게 힘든 거야!!! 하고 소리쳤다. 남편이 놀라 얼른 아이를 데려가며 나에게 비난과 걱정이 동시에 담긴 눈빛을 보냈었다.
더불어 2개월 무렵부터 수유 거부가 시작되었다. 딱 산후도우미 시기가 끝날 때쯤이었다. 그나마 잘 먹는 아기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잘 먹는 게 아니라 신생아 초기 반사인 빨기 반사 때문에 젖꼭지가 닿으면 빨아대는 게 잘 먹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빨기 반사가 끝난다던 2개월 무렵부터 정확히 수유 거부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젖병을 바꿔보고, 젖꼭지를 바꿔보고, 분유를 바꿔보고 , 오래 굶겼다가 아이가 울고불고할 때 먹여보고, 반대로 기분 좋을 때 먹여보고 별 짓을 다 해봤지만, 모든 방법이 대차게 실패했다. 재재는 젖병을 입에 댈 때마다 독약이라도 받은 것처럼 악을 지르며 울었다. 몸을 있는 대로 뻗댔다. 재재에게 분유를 먹이려고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수유량은 급격히 줄어 하루 500미리도 먹지 못했다. 어떨 때는 400미리도 못 먹었다. (이 시기 아기의 평균 수유량은 700-800미리)
이런 상황이다 보니 부부의 사이도 나빠졌다. 조리원에서 툭하면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눈물을 흘리던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대신 내 기준에서 보기엔 한없이 서툴고 이해되지 않는 육아방식을 가진 남편에게 하루에도 열두 번씩 정색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애가 울 때마다 어플을 켜서 울음 분석을 하느라, 애가 울면 핸드폰부터 찾았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미칠 것 같았다.
'아니 애를 일단 달래야지 애가 우는 게 배고프거나 불편하거나 졸리거나 뭐 이유가 다 그게 그거지. 그리고 그 어플이 무조건 맞아? 애 얼굴이 새빨갛다 못해 새카맣게 되고 있는데 뭘 하는 거야 진짜.'
맘속으로 부글부글 하면서 지켜보다가 결국 내가 달려가서 낚아채듯 애를 안으면 남편은 황당하고 서운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빨리 원인을 찾아 잘 해결해보려고 한 건데 왜 애를 방치한 사람 취급을 하니...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었고, 둘 다에게 간절하지만 둘 다 잘 못하는 일을 하면서, 즉 육아를 하면서 그게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 차라리 내 일이면 그냥 포기하고 양보할 수 있는데 아기의 일에 있어서는 왠지 날을 세우게 됐다. 남편과 나는 그 무렵 엄마가 주무시는 밤마다 소곤소곤 대화를 했다. 엄마가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면 자칫 화기애애한 대화로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조용한 말씨 마디마디마다 아주 날카롭게 칼날을 갈아 서로의 마음에 소곤소곤 박아 넣었다.
내 생각엔 재재 젖꼭지 사이즈 업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아까 사이즈업 했더니 재재가 먹다가 켁켁거려서 더 울고 안 먹었잖아.
그래도 적응시켜야지. 작은걸로만 먹이자고?
애가 더 거부 오면 어떡해.
어차피 지금 거부하잖아.
그럼 오빠가 먹여. 켁켁대는것도 오빠가 감당해.
...
다음날에는
재재 사이즈업 해주면 안 될 것 같아. 오빠 말 생각나서 큰 거 끼워 먹였더니 켁켁거리고 울고 난리도 아니었어.
어제 안 하기로 했잖아? 거부 온다며.
어제는 큰 게 맞다며. 그래서 해봤는데 아닌 것 같다고. 공유하는 거잖아.
맞다는 게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해봤다는 거지.
생각만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말 것이지 그게 맞는 것 같다고 왜 말을 해.
...... 아 알았어 미안해.
어(뭐가 미안해 지금 하나도 인정 안 하면서)
ㅋㅋ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이런 식의 대화였다. 지금 떠올려보니 정말로 부끄럽고 부질없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들어보니 이 시기에 안 싸우는 부부가 드물다고 했다. 재재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어서 우리가 더 힘들었던 게 있긴 하지만, 우리는 잠이 부족해서 한껏 날카로웠고, 도무지 재재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으면서도 완전히 인정하지 못하고 이 아이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는 아픈 아이들을 키워내면서 행복해야 한다는 우리만의 거대한 의무감 앞에서 늘 단결되었고 결국 한쪽이 흔쾌히는 아니더라도 의견을 굽혔다. 신경전의 끝에는 억지로라도 사과를 하고 내키지 않아도 받아주었다. 그러면서 다행히도 차츰 포기하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느 날 엄마와 둘만 있을 때, 엄마는 나와 남편이 서로 부드럽게 의견을 굽히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했다. 우리는 차츰 안정을 찾아갔던 것 같다.
분유는 먹이는 사람이 젖꼭지 사이즈를 결정하기로 했다. 아이가 켁켁거려도 쫍쫍거려도 울어도 먹이는 사람을 탓하지 않게 됐다. 버려지는 분유는 아무도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이 계속 사용하는 어플 덕에 아이가 우는 이유 중 배고픈 신호는 구별할 수 있게 됐고, 나는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였다. 남편의 품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내가 "오빠 힘들지" 하는 말과 함께 데리고 갔고, 남편은 내 품에서 금세 울음을 그치는 재재를 보며 서운해하고 의아해할지언정 받아들였다. 우리가 나아지는 건지 재재가 적응하는 건지 그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재재도 자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하고(다시 짧아지기도 했지만...), 수유량도 때때로 많아지면서(다시 줄어들기도 했지만...)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조금 더 살만하게 해 줬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부부는 새롭게 서로 정이 들었다. 아이에게 예민하게 구는 아내를 이해하고, 육아를 잘하고 싶어 하는 남편의 노력을 인정하게 됐다. 뭐 그렇다고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둘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이런 건 절대 아니고... 그냥 뭐랄까. '그래... 너도 힘들지.' 하는 동병상련의 연민으로 열 마디 말을 한마디로, 다섯 시간치의 삐쭉거림을 째림 한 번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끝내는 정도. 그래도, 특히 나에게는, 아주아주 장족의 발전이었다.
나나는 결국 수술까지 하고 생후 80일이 지나서야 집에 왔다. 속상했지만 그 덕에 재재 하나를 데리고 육아 적응을 좀 더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재재와 나나를 함께 키우면서 또 다른 난관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재재와 잠시나마 겪어냈던 것처럼 우리는 어찌어찌 해낼 거라고 믿게 됐다.
나나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퇴원이 결정되어 기쁘면서도 초조하던 어느 밤, 재재를 안고 재우면서 거실을 쭉 둘러보았다. 바닥 매트, 트롤리 안의 손수건들과 아기 옷들, 수유의자, 수유등, 분유 제조기, 분유 물 포트기, 젖병 소독기, 모빌,... 애들이 아프다고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스스로 비웃었는데 참 뭔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생각이었지 싶었다. 모든 육아템들은 다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고, 나나가 오면 두 배로 유용하게 쓰일 거였다. 종착지는 좀 다를 수 있어도(그것도 지금에 와서는 이 또한 뭐 그리 다른가 생각하게도 된다.) 육아는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비슷하게 힘든 것 같다. 그리고 다 비슷하게 행복한 것 같다.
재재를 품에 안고 재우는 밤마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들을 참 많이 하게 됐다. 제일 많이 한 생각은 '왜 나는 애를 낳으려고 했는가'였다. 떠올려 보니 아이를 가지고 싶어 지게 된 가장 주요한 동력은 '진정한 삶'을 살고 싶다는 거였다. 어느 날부터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고, 해외로 여행을 다니고, 좋은 콘텐츠를 보고 교양을 쌓고, 스펙을 쌓고 하는 것보다 가족을 꾸리고 건강을 챙기고 기왕이면 내 몸에 장착된 장기들의 기능을 다 써보고, 인간을 길러내 보는 일이 너무나 벅차고 가치 있는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호르몬의 농간이었을까. 아님 내 삶이 모처럼 너무 평탄하여 약간 재수 없게 봤던 신이 장난을 좀 친 걸까. 그리하여 결혼을 했고, 적당한 시간이 지나 피임을 안 했고, 피임을 안 했는데 애가 안 생기자 병원에 갔고, 시험관을 했고, 한 번만에 운 좋게(?) 세 쌍둥이가 생겼고, 다행히(?) 둘이 됐고, 아픈 아이들이 태어났고,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아니 곤두박질쳐서 더 이상 올라올 수 없다고 느꼈고, 잠깐은 삶이 조금도 재미없어졌고 살 가치가 없다고도 느꼈고, 그럼에도 유축을 시작하자 고파진 배에 음식을 욱여넣게 되고, 다시 맛있는 음식을 찾게 되고, 아픈 아기이지만 아기는 다 귀엽단 것을 알게 되고, 너무 소중해질까 두렵지만 이미 조금씩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이를 갖기로 하며 꿈꿨던 '진정한 삶'은 전혀 손상되지 않고 나에게 다가와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애초에 아이를 가지려고 할 때 아주 어엿한 전혀 아프지 않은 아이를 가질 거란 계획을 하진 않았다(오만하게도 아픈 아이가 생길 거라는 생각도 못했던 거였지만). 그보다는 아이로 인해 단단한 가정을 만들고 싶단 생각을 했다. 나를 닮은 한 인간이 나름대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조금 우겨보자면 건강, 성장 이런 개념을 조금만 달리 생각한다면, 내가 바랐던 모습은 앞으로도 계속 손상되지 않은 채로 나에게 올 것도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옷을 평범하게 입힐 수 있게 팔다리와 몸이 있어서, 젖병과 손수건을 사용할 수 있게 입으로 먹을 수 있어서, 요도와 항문이 잘 형성되어 평범하게 기저귀를 갈아줄 수 있어서, 그런 모든 것들에 대해 재재와 나나에게 고맙게 느껴졌다. 특별하고도 평범한 이 쌍둥이 육아를 할 준비가 조금은 된 것 같기도 했다.
<그 무렵의 일기>
재재는 사람 몸 위에서만 잘 잔다. 그래서 재재를 맡아 재우는 밤이면 나름대로 연구한 편한 자세 위에 아이를 배에 얹고 버티며 졸며 보내야 한다. 신기하게도 분명 완전히 곯아떨어져 축 처져 있는데도 침대에 눕히면 10분을 못 가고 서글프게 울며 잠에서 깨어나 온 가족을 괴롭히게 되기 때문에, 한 사람이 희생해서 모두를 잘 재우는 편이 낫다.
오늘은 내가 희생자를 맡은 밤이다.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가습기, 분유포트, 냉장고 같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윙윙 백색소음으로 들리고 눈앞에 있는 아이의 머리통이 내 숨과 아이의 숨과 박자를 맞추어 오르락내리락한다. 명치에 다소 압박감이 느껴지지만 잠에 깊이 빠져 입이 벌어진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견딜만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보기 위해 최대한 몸은 미동하지 않은 채 목만 길게 빼어 구부린다. 이미 불편한 자세에서 더욱 불편하게 되었지만 한참 동안 감수하게 된다. 그러다가 나는, 상상하던 것과는 다르지만 나의 이것이 일종의 사랑임을 알게 된다. 아무래도 아이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