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음'의 소중함
어느덧 아이들의 돌을 앞두고 있다. 가족끼리 하기로 했던 돌잔치는 조금 미루고 아이들 첫 생일 기념 가족사진 촬영을 하기로 했다. 바로 내일이다. 내가 패션 센스가 영 없기 때문에 옷은 대여점에서 빌리기로 했다. 아이들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스튜디오에 상담전화를 했는데, 어떤 아이든 다 예쁘게 찍는 방법이 있다며 걱정 말라고 한다. 이런 고마울 데가. 옷은 엊그제 도착했고 내일 애들 컨디션 관리만 잘해서 가면 된다. 가족사진을 찍는다니. 이런 날이 주어지다니.
아이들에 대해 꽤 많이 받아들였을 때에도 나는 사실 앞으로 펼쳐질 내 삶이 가시밭길일 줄만 알았다. 다만 때때로 부드러운 가시를 밟으면 덜 아프다고 기뻐하고, 또 내 발에 굳은살이 생겨 가시가 덜 아파지면 뿌듯해하고, 그렇게 살려고 각오를 했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에 대해 남들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굉장히 특별한 삶을 사는 무슨 대서사 비극의 주인공이 된 줄 알았던 것 같다.
재재는 신장 기능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하고, 당연히 발달이 느리거나 아예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경련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경련을 하게 되면 단순히는 생명에 위협이 되는 호흡 등의 문제부터 뇌손상으로 인한 발달 퇴행, 약을 쓰면서 오는 부작용으로 처짐이나 수유 곤란 등 여러 문제가 동반된다고 했다. 나나는 우선 경추가 약하기 때문에 목을 가누기 전까지는 머리와 목 부분을 무척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고 했고, 적어도 3년은 갑상선 호르몬을 계속 추적하면서 약을 잘 챙겨 먹여야 한다고 했고, 타고나기를 기관지가 약하기 때문에 감기만 걸려도 입원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했고, 당연히 발달이 느리고 성인이 되어도 지능이 낮을 것이라고 했다. 이쯤 떠올리니 내가 그 당시에는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삼을 만 하긴 했다.
그렇지만 나의 효자는 현재까지는 뇌파에서 경련파를 보이지 않고, 신기능이 정상으로 올라와 관련된 약도 먹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나의 효녀는 이제 목을 잘 가누고, 갑상선 약을 최소량으로 먹을 만큼 호르몬 수치를 괜찮은 정도로 유지하고 있고, 감기에 걸린 적은 있지만 입원한 적은 없다. 덕분에 현재 우리의 주된 육아 관심사는 애들을 잘 먹이는 것, 잘 재우는 것, 잘 놀아주며 시간을 때우는 것이다. 처음의 기대(?)에 비하면 생각보다 너무 평범해서 싱거울 정도다.
재재도 나나도 잘 먹는 아기는 아니다. 재재는 무척 안 먹는 아기이고 나나는 그저 그렇게 먹는 아기이다. 재재는 분유도 이유식도 거부하며 울기 일쑤고, 재재를 먹일 때면 온갖 효과음을 내며 이상한 몸짓을 하거나 다채로운 장난감을 들이대야 한다. 나나는 분유는 잘 먹는 편이지만 이유식은 대부분 싫어한다. 달래서 먹이다가 먹이다가 안 되면 다행히도 좋아하는 유일한 음식인 과일 퓌레를 섞어 먹인다. 내 입장에서는 괴식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나는 퓌레 섞인 이유식에만 입을 흔쾌히 벌려준다.
재재는 징그럽게 잘 못 자는 아기이고, 나나는 신기할 만큼 잘 자는 아기인데 요즘 약간 재우기 난이도가 상승하기는 했다(그래봤자 귀여운 수준이다). 재재는 재우기도 힘들뿐더러 대부분의 밤동안 세네 번 이상 깨기 때문에 재재를 돌보는 사람은 잠을 거의 잘 수가 없다. 100일의 기적 200일의 기적 그 무엇도 없었다. 그래서 남편과 내가 교대를 해서 밤동안 재재를 돌본다. 상대적으로 잘 자는 나나는 밤동안 엄마가 맡아주신다. 사실 재재는 잘 잘 수가 없다. 자고 깨는 것도 인간의 다른 모든 활동과 마찬가지로 뇌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는 재재가 안쓰럽지만, 피곤한 상태에서 새벽에 뻗대고 우는 아기를 꽉 안고 버티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 때가 있다. 부끄럽게도 그럴 때면 나는 재재를 침대에 엎어 놓고는 엉덩이를 팡팡 두드리거나(두툼한 밤기저귀가 덮여있기는 했지만, 그 아래의 맨 엉덩이를 상상하며), 아니면 쌓인 이불 위로 내 팔과 함께 아이를 던지듯 툭 내려놓기도 했다. 멍청한 것이 어차피 그렇게 해서 애가 더 울면 그 감당 또한 내 몫이다.
재재는 집중력이 좋고, 근긴장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많이 정적인 편이고, 나나는 활발하고 빠르고 집중력은 낮은 편이다. 그래서 재재에게는 책을 많이 보여주게 되고 나나에게는 움직이거나 소리 나는 장난감을 갖다 주게 된다. 남편은 어느 날 엄마에게, 둘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꼭 원숭이와 나무늘보 같다고 말했단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크게 웃다가 그 말을 나에게 전해주었고, 나도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의의 웃음을 터뜨렸다. 나나는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다가 재재를 마주치면 꼭 얼굴을 한 번 찰싹 때리거나 손가락으로 쿡 찔러보거나 아니면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재재는 평소에는 작은 자극에도 놀라거나 싫어하면서 빵 터지듯 울지만 신기하게도 나나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에는 눈만 한번 꿈쩍 하고 하던 것을 하거나 때로는 나나를 보며 웃기도 한다.
재재와 나나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세 군데의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었다. 장애아 보호자 카페, 다운증후군 환아 부모 카페, 뇌주름 관련 환아 부모 카페. 그리고 단 한 번도 인터넷 뉴스에 댓글조차 달아본 적이 없는 그 전의 나는 상상할 수도 없게 그 카페들에 수많은 글을 남겼었다. 주로 나의 고통을 호소하거나, 다짐을 외치거나, 희망을 전시하는 용도였던 것 같다. 어떤 글을 쓰던, 앞서 같은 고통을 가져본 랜선 선배들은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따뜻한 댓글을 정말 많이 남겨주었다. 눈물과 함께 읽은 것들이 정말 많은데, 지금 와서 가장 생각이 나는 댓글의 내용은 '키우다 보면 생각보다 별 거 없어요..' 하는 말이다.
아예 별 거 없지는 않다. 매주 2일 재활을 가야 하고, 한 달에 한두 번에서 많으면 세네 번 대학병원 외래도 있다. 외래는, 우선 병원이 가깝지 않아서 오가는 길부터 고역이다. 차가 막힐수록 아이는 울고, 달래다 보면 나도 진이 빠지고, 병원에 가서는 피검사에 소변검사에 또 아이는 악을 쓰고 울고, 나는 이젠 눈물은 잘 나진 않지만 그런 아이를 붙잡고 있느라 몸으로 울고... 외래 날들 중에는 가끔 잘 지내던 나를 누가 어디 구석으로 끌고 가서 너는 문제 있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직시시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재활은, 재활 자체는 익숙해졌지만, 전에도 썼듯이 아이들을 따라오는 낯선 시선에는 익숙해지지 못했다. 차라리 사설 발달 센터나 재활 병원을 다니면 이런 시선에서는 자유로울텐데,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 다니고 있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소아 재활 치료를 받는 아이들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이 어떤 상황인지 쉽게 짐작하기 힘들다 보니 이 아이들이 왜 여기서 이리 자주 보이는지, 왜 저 남자아이는 누워만 있거나 안겨만 있는지 은근은근 궁금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요즘은 전반적인 교양 수준이 많이 높아져 아주 곤란한 일을 자주 겪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한 번은 아이들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유모차 안의 아이들을 귀엽다는 듯이 보던 사람이 갑자기 나나를 유심히 보면서 '아?' 하는 짧은 감탄사인지 의문인지를 내뱉더니 뭔가 알았다는 듯이 '아..' 하고는 곧바로 유모차 손잡이를 잡고 있는 나를 위아래로 훑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채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방금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고 나서야 화가 올라와서 하루 종일 문득문득 그 순간이 떠올라 괴로웠다. '뭐요. 왜 그런 식으로 보는데요' 하고 싸웠어야 했나, 아니면 '다운증후군 아기를 알아본 본인이 자랑스러워 티를 내고 싶은가요?' 하고 비꼬아 줬어야 했나. 여러 생각을 하다가 다음부터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최대한 빤히 쳐다보기로 결심했다. 눈싸움을 잘하려면 안구가 건조하지 않게 스마트폰 사용을 줄여야 하는데...
하려던 얘기는 이게 아니고, 뭐 이런 식으로 아예 별 거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진짜로 생각보다는 별 거 없었던 날들이었다. 지난 일 년을 떠올려 보면, 아이들의 질환에 대해 고통스러워하고 고민하던 며칠(혹은 몇십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날들에는 내 아이들을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특별한 만큼만 특별하게 대했던 것 같고, 동시에 이 세상 모든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대하면서 지내온 것 같다.
많은 장애아 보호자들은 어릴 때가 그나마 좋다고 한다. 그나마 다른 아이들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 말이 무슨 말인지도 사실 벌써부터 느끼고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느꼈던 그 당황스러운 시선이 언젠가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매 순간, 매일 따라오게 될 날도 올 것이다. 재재는 한참 커서도 유모차나 휠체어에 타야 할 거고, 나나는 클수록 외모와 말씨에서 다운증후군 환아의 특징이 확연히 보이게 될 테니까. 쓸데없이 워낙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벌써 여러 번 그런 순간들을 떠올려 봤고, 대부분은 상상 속에서조차 어찌할 바 모르고 당황하거나 서글퍼지곤 했다. 아직도 그 순간에 대한 대처법을 제대로 마련해놓지 못했다. 마음가짐도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 일단의 대책은, 소심하게 미뤄두기로 한 것이다. 일단은 그날이 그렇게 빨리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은 그냥 어느 날 훅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낳고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여러 순간을 지나오고 그러면서 꽤나 단단해진 것처럼, 또 수많은 날들을 지나 더 더 단단해진 나에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에, 별로 미덥지는 않지만 그때의 나에게 기대 보기로 했다. 일단은 이렇게 하루하루 주어진 날들을, 아이들과 웃고 울며, 때로는 짜증 내고 화도 내다가 후회하고 사과하며, 평범하게 잘 지내보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의 첫 돌이 다가왔다. 2.1킬로였던 재재는 9.2킬로가 되었다. 1.5킬로였던 나나는 8킬로가 되었다. 이만큼 커 준 아이들에게 고맙다. 별일 없는 평범한 날들을 여러 날 지나온 우리 가족에게 고맙다. 사실 아이들의 첫 생일을 내가 이렇게나 축하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했다. 정말이지 내가 당연하다고 믿고 살아왔던 모든 것들은 전혀 당연한 게 아니었던 거다. 내 아이들의 생일을 축하하고 기념하고 싶어 져서, 평범한 엄마들과 같은 마음으로 그렇게 할 수 있어서 모처럼 감격스러운 밤이다.
재재. 나나. 생일축하해
엄마한테 와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