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해졌다

이번 화는 제 자식 자랑타임입니다.

by 오늘

재재는 자라면서 뭘 할 수 있게 되고 뭘 하지 못하게 될까. 지금보다 훨씬 간절하게 궁금하던 날들에 했던 가장 큰 걱정은 재재의 웃는 모습을 평생 보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거였다. 평범한 아기들은 100일 전후로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다. 재재의 속도는 평범한 아기들과 비교하면 그 무엇이든 조금, 혹은 아주 많이도 느릴 수 있지만, 그래도 내가 들은 유일한 기준선은 그것뿐이라 그 무렵이 되자 초조해지는 맘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100일 전이였던가 후였던가, 그러니까 정말 그 100일 전후였던 어느 날이었다. 틀어놓은 동요 메들리에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아기 동요 메들리였는데 왜 이 노래가 나왔던 걸까ㅋㅋ) 노래가 나오고, 엄마가 재재를 바라보며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가던 타이밍에 갑자기 재재가 희미하지만, 싱긋, 웃는 표정을 보여주었다.


어 웃었나?

웃은 거 같은데?


그날은 그 한 번이었다. 엄마도 나도 그로부터 하루 종일, 재재의 꿈에 나올 정도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열창했지만 재재는 웃지 않았다.


그 뒤로도 재재는 때때로 웃음인지 찡그림인지 헷갈리긴 해도 웃음기에 가까운 표정을 몇 번 보여주었다. 이제 나는 감사하고도 오만한 태도로 재재의 진짜 확실한 웃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즈음 어느 날, 아침에 바운서를 타던 재재가, 웃었다고 했다. 나는 밤에 재재와 씨름하고 나서 쓰러져 자느라 못 봤다. 대신 사진을 봤다. 분명히 씨익, 환한 웃음은 아니지만 미소가 분명한 얼굴. 젠장 이렇게 확실한 첫 미소 직관을 자느라 놓치다니.


다행히 그 뒤로 재재는 점점 더 자주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 기저귀를 갈다가 내가 어깨를 매만지는 손길이 간지러웠는지 무려 소리를 내어, 웃었다. 행복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재재는 확실히 웃을 수 있는 아이였던 거다.


고맙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재재는 점점 더 다양한 웃음을 보여주었는데, 특별히 환한 웃음은 대개 나를 향해서만 나왔다. 아닌 척했지만 우쭐해졌다. 이 정도까지 바란 건 아니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재재의 웃음은 너무 자랑하고 싶게 예뻐지고 있었으니까.

최근의 재재



나나는 집에 데려온 지 얼마 안 돼서는 눈 맞춤이 잘 안 됐다. 앞에 얼굴을 갖다 대면 눈을 피했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아이들이 그래도 사회성은 좋다던데, 나나가 그 예외이면 어쩌나. 나나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갖다 댈 때마다 슥 돌리는 눈과 얼굴을 보며 마음이 덜컹하곤 했다. 엄마, 나, 남편 중 누군가가, 나나가 신생아 중환자실에 너무 오래 있던 것 때문에 사람과 대면한 시간이 길지 않아서 그럴 거라는 다행스런 논리를 펼치자, 나머지가 최선을 다해 동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도 셋 모두 불안했던 것 같다. 다행히 그 말이 진짜였는지, 열심히 눈 맞춤 연습을 시키던 어느 날부터 나나는 우리와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고 있는 순간이 길어져 갔다. 그리고 또다른 어느 날, 나나와의 눈 맞춤에 심취해 있는 엄마를 향해 나나가 별안간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면서 눈이 약간 초승달 모양이 되었다. 눈웃음일까. 재재의 경우와 달리 나나가 웃을 줄 알게 될 거란 것은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막상 그 모습을 마주하니 설레면서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나는 그때 진짜 웃는 거였던 것 같다. 그 후로 더 더 더 자주 눈웃음을 치고, 입도 함께 웃기 시작하고, 어느덧 눈만 마주치면 웃고, 옹알이도 웃음소리가 태반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이 아기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도 엄마도 남편도, 나나와 마주 보고 옹알이에 맞받아주려 이런저런 말을 걸고 있으면서는 저절로 더없이 행복에 겨운 표정이 되었다. 그런데 가족들은 나나가 유난히 나를 보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은 옹알이를 한다고 했다. 나는 또 별수 없이 우쭐해졌다.

나나의 4개월 무렵

나나는 최근들어서 그 누구를 향해서도 너무나 잘 웃는다. 그런데 사회적 웃음이라고 하는 게 이것인지. 언젠가부터 눈을 찡그리며 누가 봐도 거짓으로 보이는 미소를 자주 짓는다. 잘못 보면 마치 업신여기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실수에 마지못해 웃어 보이는 그야말로 억지웃음의 표정이다. 이 표정도 너무 귀여워서 다들 웃지만 나나의 진짜 웃음이 얼마나 예쁜지 아는 나는 못내 아쉽다. 진짜 웃음은 나나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향해 주로 나타난다. 당연히 나는 진짜 웃음을 자주 받는다. (우쭐)


최근의 나나


이제는 옛날옛적으로 느껴지는, 눈물로 보내던 조리원 시절의 어느 날, 남편 몰래 화장실에 숨어 친구와 눈물의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한참 서로 울기만 하다가 양쪽 모두에서 울음이 좀 잦아들었을 때, 울먹임과 코맹맹이 소리가 하나도 가시지 않은 채로 친구가 대뜸 말했었다. '근데 너 좀만 지나면 애들 너무 예뻐서 물고 빨고 하고 있을걸.' '그런가? 그러려나 하하.' 속으로는 사실 그런 일이 나에게 과연 생길까 부정적으로 의심하면서 마지못해 대답했었다.


나나가 아직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고 재재는 산후관리사님들의 돌봄을 받고 있을 때, 마음이 답답해서 집 근처의 친구에게 연락한 적이 있었다. 친구는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고, 근처 카페로 나갔다. 그날 아이들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애들이 안 소중해지면 좋겠어. 애들이 소중해질까 봐 무서워' 하면서 펑펑 울었었다. 그때에는, 아이들이 소중하게 느껴질수록 재재와 나나의 문제들을 더 견디기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전에도 고백했지만, 어리석게도 아이들에 대한 모정에다가도 방어막을 쳤던 거다. 알다시피 그 일은 잘 안 됐다.


아이들을 눕혀 놓고 온몸에 뽀뽀 세례를 퍼붓다가 조리원에서 들은 친구의 말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집 앞 카페에서 펑펑 울면서 했던 어리석은 내 말도. 그럴 때마다 조금 머쓱해지고,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해지고, 그치만 이렇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조금 행복해진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이는 아직 기대하는 표정으로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고, 나는 얼른 다시 아이의 배로 얼굴을 묻는다.


재재가 웃지 못했다면 나는 재재를 이만큼 사랑하지 않았을까.

나나가 눈 맞춤을 잘하지 못했다면 나는 나나를 이만큼 사랑하지 않았을까.

필요 없는 가정이지만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부끄럽지만, 그랬다면 이렇게 빨리 사랑에 빠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확신할 수 있는 건 재재가 웃지 못했더라도, 나나가 눈 맞춤을 잘하지 못했더라도, 나는 이 아이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특히 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챘을 것이다. 알아채려고 온 힘을 다 했을 테니까.


그리고 또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건, 만약에 내가 눈 맞춤을 못하는 사람이어도, 내가 웃지 못하는 사람이어도 재재와 나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기들의 엄마를 사랑했으리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사랑은 정말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을 만큼 경이롭게 순수하다. 그 순수함으로 애들은 자기가 받을 사랑을 자기가 쟁취하는 것 같다. 우리 애들도, 미안하지만 이쪽에서는 별로 가는 게 없을 때에도 아랑곳 않고 자기들의 엄마를 끊임없는 사랑으로 당겨 주었을 거다. 그래서 어느덧 내가 저절로 저들 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든 거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갚아야 한다.

앞으로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다. 뭘 해도 다 고맙고, 뭘 못 해도 괜찮다.


더없이 소중한 나의 아이들에게, 이 마음을 알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언젠가는 직접 전달하고 싶다. 그날이 오길 바라며 사랑을 다해 열심히 키워야지.


연출샷. 너희들끼리도 이렇게 다정한 날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