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이란 무엇인가

무엇이란 말인가요오

by 오늘

한때 친하게 지냈던 대학 후배는 유아교육과 복수전공을 했었다. 훗날 자식을 잘 키우고 싶어서 했단다. 대단한 친구다. 그래 그래서 유아교육과에서 공부를 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뭐였을까. 물으니까


뭐겠어요 당연히 A 교수 수업이죠.


한다. A 교수는 학교 전체에서 특이한 걸로 약간 유명했던 유아교육과 교수였다. 나는 그 교수가 특이하다는 것만 들었지 자세한 이야기는 몰랐어서 더 궁금해졌다.


그 후배가 얘기하기를, 그 교수가 하는 모든 수업의 시작 때에는 학생들이 모두 긴장하고 앉아 있다가 교수가 강의실로 들어서는 순간 일제히 북한 사람들처럼 기립하고선 같은 문장을 외워야 한단다.

"발달이란! 성숙한 모체에서~~~~"

물결로 생략한 뒷말이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대충... 성숙한 모체에서 잉태되어 태어난 아기가 변화하는 전 과정? 이런 식이었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엔 저 성숙한 모체라는 말이 너무 올드하면서 웃기게 들려서 저 말만 강하게 뇌리에 박혔다.


내 아이들의 발달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마다 그때 푸하하 웃던 나의 모습과, 저 말, 발달이란 성숙한 모체에서... 저 말이 자꾸 떠오른다. 내가 삶의 어떤 과정에선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바람에 발달을 잘 못 하는 아이들을 낳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뒤따른다. 에휴. 이 부분은 정당화가 잘 안 된다. 씁쓸하다. 씁쓸해. 그렇지만! 속상한 건 속상한 거지만! 정당화를 할 수 없다면 다른 더 좋은 것으로 덮어야지. 고맙게도, 애들이 그렇게 만들어 준다.




아이들의 발달이 느릴 것이라는 것은 이미 생후 며칠이 되지 않았을 때 들었지만 신생아의 모습은 다 거기서 거기고, 다 속싸개에 싸여 누워 있어서 당장 실감이 나지 않았었다. 더구나 그즈음에는 미래에 대한 끝없는 걱정으로 당장 눈앞의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았었다. 한 백일 때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이 웃기 시작했던 그 무렵, 한눈에 봐도 좀 이상하거나 아니면 택도 없는 나름의 몸짓들이 시작되면서,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남다른(?) 발달 속도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나나는 다운증후군 때문인지 신생아 중환자실에 오래 누워있었기 때문인지, 100일이 지나도 목에 힘이 지나치게 없었다. 터미타임을 시켜놓으면 고개를 번쩍 잠깐 들었다가도 금세 바닥에 머리가 퍽 하고 고꾸라지는 모습이 무서워서 얼른 다시 뉘여놓곤 했다. 그때에는 언젠가 나나가 몸을 가누고 걸을 수 있을 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 전체가 흐물흐물했다. 우리는 나나가 연체동물 같다고 했었다. 그렇지만 의외로, 하루 종일 누워있기만 하면서도 나나는 정말로 무척 바빴다.


나나는 처음 한동안 입에 손 넣기를 시도했었다. 모든 아기가 그런 건지 나나만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입에 손을 넣는 행동이 그렇게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결과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나나는 처음엔 자신의 입을 향해 자연스럽게 팔을 구부리지 못했다. 자신의 손을 간절하게 바라보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최대한 내밀고선 계속 팔을 움찔움찔거렸다. 그 행동을 정말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했다. 나나의 끈기 있는 모습은 정말 하찮고 우스꽝스럽고 동시에 존경스러웠다. 안타까운 맘에 도와주려고 손을 입으로 가져다주면 뭐 때문인지 오히려 화가 나서 뿌앵 울기 때문에 우리는 나나가 그러고 있을 때 더 이상 건드리지 않게 됐다. 그러더니 마침내 어느 날 나나는 위풍당당하게 자신의 손을 먹고 있었다. 분명 그 전날까지도 택도 없는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해냈다. 물론 '갑자기'라는 말을 나나가 알아들었다면 무척 화를 냈겠지만.


나나는 그 후로 뭐든지 그렇게 하나씩 해 내고 있다. 온몸이 휘청휘청하면서도 장난감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려고 눈을 부릅뜨고 팔을 발발 떨면서 목을 들려고 노력하더니 점차 목에 힘이 생겼다. 온몸을 휘고 소리를 질러 대면서 다리를 이리 저리로 돌리더니 5개월 무렵 어느 날 갑자기 몸을 뒤집었다. 한 번 해내더니 여러 번 해내고, 한쪽을 성공하더니 다른 쪽도 성공했다. 뒤집고 고개를 들고 놀다가 힘들어지면 얼굴을 바닥에 박고 앙앙 울었다. 나는 기쁜 맘으로 나나를 몇십 번 몇백 번이고 다시 뉘어주었다.


한 달쯤 뒤에는 엎드려 있다가 고개를 내던지듯이 뒤로 눕더니 그 행동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약간 이상하지만 되집기에 성공한 것이다. 머리가 다치지 않을까 온 가족이 걱정할 때쯤 다행히 머리를 사뿐히 뉘이는 데에도 성공하기 시작했다. 엎드려서 팔꿈치로만 몸을 지탱할 수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는 잠깐씩 팔을 쭉 뻗어서 손바닥으로 자신의 몸을 지탱하기 시작했다. 힘이 세지니 한쪽 팔만 바닥에 대고 다른 쪽 팔을 들어서 물건을 만질 수도 있게 됐다. 나나는 못 가는 곳이 없게 됐고, 적어도 바닥에 있는 것들은 못 만지는 것이 없게 됐다. 우리는 아이들이 9개월이 된 무렵에는 나나의 안전을 위해 매트 가장자리에 울타리를 쳐야 했다.


그 후로 돌이 되기까지, 나나는 혼자 앉기 시작했고, 배밀이를 하고, 내 무릎 정도의 약간 높은 곳을 타고 오를 수 있게 됐다. 나나는 요즘 거실 창가 쪽에 있는 에듀테이블 앞에 앉아 피아노 건반을 때리다가, 갑자기 창가 반대편 화장실 앞에 있는 뽀로로 문 장난감을 향해 배밀이로 돌진한 뒤, 거기 달려 있는 전화기 모형에서 우선 수화기를 집어서 저 멀리로 던지고, 버튼을 쾅쾅 눌러 음악을 재생하고는 앉아서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며 논다. 눈을 뗄 수 없는 시기가 왔다. 모든 행동이 믿을 수 없이 신기하고 기특하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재재는, 내내 뒤집기도 못 하고 누워만 있었다. 재재의 강직은 재재가 커갈수록 더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무언가 하고 싶어도 몸의 강직 때문에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재활치료사 선생님들의 설명에 따르면 강직이 있는 아기들은 근육의 강약 조절이 잘 되지가 않아서 모든 행동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다. 몸의 어느 부분을 움직이고 싶어 지면 그 부분에 집중을 하게 되고, 그 부분의 근긴장도가 확 올라가 오히려 더 뻣뻣하게 굳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재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았는데 별안간 심하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움직임에 아무런 의욕도 없는 듯 통나무처럼 누워만 있기도 했다. 나나가 이리저리 뒤집고 노는 것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때에는 특히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재재가 뒤집고 싶어 하는 것처럼 몸을 옆으로 휘는 것을 보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뒤집고 싶어 하기만 할 줄이야... (그래도 몸을 움직이고 싶은 욕구가 있어 고맙다.)


그렇다고 재재가 아무런 발달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목 힘이 많이 생겼고, 강직이 있는 몸 중에 그나마 팔은 조금 가벼워져서 목표하는 물건 가까이 손을 갖다 댈 수 있고(잡을 수는 없다), 손을 바닥에 댄 채로 앉혀두면 최대 10초 정도까지 버틸 수 있고(1초 만에 기우뚱할 때도 많지만), 뻣뻣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엎드려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평범한 아이들과 비교하면 발달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수 있지만, 이런 아주 작은 변화에도 우리 집은 들썩들썩한다.


나나는 머리가 다 자란 뒤에도 지능에 한계가 있을 것이고, 신체적으로 다 자란 뒤에도 운동선수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치만 몇 년 안에 걸을 것이고, 어눌한 발음이 있겠지만(다운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타고난 구강 구조 때문에 발음이 좋기는 어렵다고 한다. 나나도 물론 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말도 곧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는 조금, 혹은 아주 많이 늦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그건 별 문제가 안 된다. 재재는 반면, 뭐든 할 수도 못 할 수도 있다. 못 기어 다닐 수도, 못 걸을 수도, 말을 못 할 수도. 그래서 재재의 발달에 대해서는 기대를 버리게 된다. 그 무엇도 감히 바라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물론 나나에게도 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재재는 뭐 하나만 해도 특히나 온 마음이 감동으로 가득 차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재재가, 정말로, 감히, 절대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빠'라고 했다.


처음에는 빠 뿌 뻬 같은 된 발음이었다. 그때만 해도 소리가 너무 미약해서 투레질을 어설프게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빠 뿌 뻬 하는 발음이 날이 갈수록 선명해져 갔다. 그러다 거짓말처럼 '아빠' 하는 소리가 나온 거다. 우연이야. 당연히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재재는 몸짓도 신생아 수준이었고, 옹알이도 나나에 비해서는 많지 않았다. 그러니 재재가 말 비슷한 걸 할 거라고 기대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아빠'가 여러 번 연속해서 들렸다. 놀라서 무릎에 아이를 기대 앉혀 놓고 "재재야 아빠! 아빠!" 시키자 재재가 스스로도 뭔가를 해낸 걸 안 것처럼 만족스럽게 웃고는 다시 집중해서 '압.. 빠' '아웁빠' '읍빠' '아빠' 하기 시작했다. 재재는 아빠를 20번도 넘게 외쳤다. 아 나 진짜 할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냥 이것 하나일 수 있어, 이게 재재가 말을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 뒤따라오는 오만한 기대를 누르려고 노력하고 노력했지만, 이미 온몸이 거대한 심장이 된 듯 두근, 두근, 뛰고 있었다.

엄마도 그랬나 보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찍겠다고 뛰어온 재재의 할머니는 동영상 버튼도 누르지 않은 채 핸드폰을 재재의 얼굴에 들이대며 한참을 웃고 있었다.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걸 확인하고는 망연자실해서 늙으면 쓸모없다는 말을 했다. 우리 엄마는 정말이지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닌데, 얼마나 속상했으면. 다행히 재재는 할머니가 다시 제대로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게, 그다음 날도 그 다 다음날도 점점 더 많이, 그리고 점점 더 정확한 발음으로 아빠를 외쳤다. 그리고 며칠 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드디어 자신의 아빠에게 안겨서 바라보며 '아빠'라고 했다. 아직 아빠가 뭔지는 모르고 하는 소리일 테지만 그 모습을 보니 눈물이 터지려 해서 얼른 방으로 들어가 마음을 다독였다. 재재에게 언젠가 엄마 소리를 듣는 날이 올까. 이런 기대를 하게 된 것 자체가 너무나 과분한 감동이었다.


재재는 여전히 뒤집기는 못 하지만, 아빠를 조금 더 정확하게 발음하고, 내가 '엄마'를 시키면 입을 유심히 보다가 '어바' 라거나 '어와' 라거나 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요즘은 혀 차기에 재미가 들려 장난스럽게 웃으며 쯧 쯧 하기도 한다. 기특하고 신통해 죽겠다.


나는 정상발달하는 아이들의 발달 시기를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주변 지인들의 아기들이 발달하는 모습을 보고 때때로 까무러치게 놀라곤 한다. 저 때 저게 가능하다고? 천재 아니야? 그다음에는 잠시 생각을 멈춘다. 우리 아이들과 괜히 비교해서 씁쓸해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동안 훈련이 됐는지 요즘엔 노력하지 않아도 잘 되는 편이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의 평균적인 발달과정을 정리한 표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보지 않는다. 재재의 발달세계는 재재가 다 클 때까지 알 수 없는 것이고, 나나는 늦어도 다 할거, 일단은 알고 싶지 않아 졌다. 재활치료를 다니면서 이래저래 이쯤엔 뭘 해야 한다 듣게 되긴 하지만 그때에도 뭐 그렇구나 하고 만다. 이쯤에 뭘 해야 한다는 것은 다운증후군 아가들도 이쯤엔 뭘 한다는 뜻인가요 정상발달 하는 아이들이 이쯤엔 뭘 한다는 뜻인가요. 묻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냥 만다. 뭔가 기준을 알아버리면 스트레스의 시작이다. 지금 아는 것도 너무 많다. 그냥 지금 재재와 나나가 자신의 선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면, 그 발자국만큼만 기뻐하고 행복해하려 노력한다. 사실 한 발자국 당 백 발자국 어치만큼 호들갑을 떠는 것 같다. 이런 호들갑을 떨 기회가 앞으로 많이 남아있어서 고마운 날들이다. 정답이 아니더라도 나는 나의 느린 아이들과 일단 이렇게 지내려 한다.


근데, 그건 그래도, 재재가 뒤집기를 하는 날, 나는 꽤 많이 울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