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이는 못 살아

민첩할 민 할머니

by 오늘


엄마와 다시 함께 산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엄마는 원래 65세까지만 일을 하고 쉴 계획이었다고 했다. 엄마는 지금 65세다. 인생은 원래 계획대로 안 되는 거라며 엄마는 웃었다.


엄마는 9남매 중 여섯째다. 이름 두 자 중 한 자는 여자 형제들끼리의 돌림자이고 한 자는 '민'이다. 한자(漢字)로는 민첩할 민(敏)을 쓴다. 엄마의 이름을 풀면 그냥 민첩한 사람이 된다. 여자 아이 이름에 민첩할 민이 뭐냐고, 엄마는 외할아버지께 따진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름값이라는 게 있는지, 우리 엄마는 진짜 민첩한 사람이 맞다. 일손도 빠르고 생각 회전도 빨라서 뭐든지 착착이다. 아쉽게도 나는 엄마의 이런 점은 물려받지 못했다.


재재도 나나도 이유식을 참 잘 안 먹는다. 특히 재재의 이유식 먹는 모습을 보면 내가 애한테 식고문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이유식 초기에는 몇 입은 받아먹었던 것 같은데, 때로는 맛있으면 잘 먹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때의 기억은 꿈만 같고 지금은 장난감을 흔들어야 입을 겨우 열고 그 안으로 속임수를 쓰듯 숟가락을 재빨리 밀어 넣어야 한다. 그렇게라도 영 먹기 싫어지면 입술을 옹졸하게 오므리고 그 가운데로 뾰쪽하게 혀를 내민다. 철통 방어를 하는 것이다. 먹기 싫다고 울고 고개를 흔드는 애 앞에서 온갖 재롱을 부리다가 나도 힘들어서 "그래. 그만 먹자" 하면, 그때는 민첩할 민 할머니가 나설 차례다. 힘들면 그냥 먹이지 말자고 하며 재재의 이유식 그릇을 엄마에게 넘겨주고 나나 옆에 드러누워서 놀아주다 보면 어느새 재재의 웃음소리가 나고, 즐겁게 옹알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마침내 엄마가 '다 먹었다!' 하는 말도 들린다. 어떻게 한 거지. 나는 매번 휘둥그레진다.


엄마는 정말 능숙하고 다정한 손길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토를 해서 울고 있을 때 우리는 어쩔 줄을 모르고 일단 씻기려 하지만, 엄마는 얼른 아이를 안아가 이리저리 살피면서도 거울 앞으로 가 장난을 치면서 아이의 기분을 먼저 풀어준다. 그러고 나서 조심스럽고도 빠르게 옷을 벗기고 물장난을 치는 척하면서 얼른 아이를 닦는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진 아이에게 내가 편히 새 옷을 입힐 수 있게 해 준 뒤에야 토 범벅이 된 당신의 옷을 갈아입으러 간다.


엄마는 아이들을 정말 잘 놀아준다. 장마다 사람이 그려져 있고 위에 한 겹의 종이가 덧대어져 종이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까꿍 놀이를 할 수 있는 책이 있다. 나는 까꿍 책으로 까꿍 놀이밖에 할 줄 모르지만, 민첩할 민 할머니는 이 책을 보여주면서 종이를 들었다 놨다 빠르게 반복하면서 아빠 바람, 엄마 바람, 할머니 바람(책 속의 사람은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아기 등이 있다) 맞기 놀이도 하고, 책 속의 사람이 실제로 어디 있는지 찾는 놀이도 한다. 재재는 바람이 얼굴에 닿으면 좋아서 몸이 들썩거리며 꺅 소리를 내고, 나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팔을 팔랑거리며 환하게 웃는다. 그러니 당연히 재재도 나나도 할머니를 무척 좋아한다.


엄마는 매의 눈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외출할 때면 나름 예쁘게 입힌다고 입히는데... 패알못 애미의 코디는 민첩할 민 할머니의 눈에는 언제나 차지 않는다. 할머니의 손길을 거쳐야 모두가 당당한 외출을 할 수 있다. 강직 때문에 늘 주먹 쥔 재재의 손이 유난히 부드러운 날을 엄마는 놓치지 않는다. 그럴 때 재재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을 손 앞에 가져다주는 것은 늘 민첩할 민 할머니다. 재재는 그날따라 부드러운 손으로 더 정확하게 장난감에 손을 뻗고, 버튼을 누르고, 덕분에 신이 나서 옹알이를 하며 즐거워한다. 나나의 작은 변화, 작은 발달도 그 첫 순간을 발견하는 것은 거의 엄마였다. 나나의 눈웃음이 시작되던 날, 뒤집으려는 포즈를 취하던 날, 손을 모으고 몸을 꼬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던 날, 엄마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나나의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훨씬 늦게 발견했을 것이다. 내가 먹이고 재우고 병원을 오가는 것에만 온 신경을 기울이면서 겨우 살아가려고 할 때, 엄마는 내 삶 자체를 소중하게 만들고 계속 살아내게 해 주는 이런 순간순간을 찾아내 알려주곤 했다.


민첩할 민 할머니는 손주들 뿐 아니라 35세인 딸도 아직 키우고 있다. 손목을 털고 있으면 손목 보호대를 하라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뜩이나 안 좋은 자세 더 구부리지 말라고 잔소리가 날아온다. 배가 고파서 얼른 과자나 하나 먹으려고 하면 어느새 엄마가 뚝딱 반찬과 국까지 만들어 낸다. 나와 동생을 키우기 위해 40대에 김밥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엄마는, 안 그래도 빠른 손이 더욱 모터를 달게 되었다. 엄마가 일했던 어느 김밥집에서는 생활의 달인에 김밥 빨리 싸는 것으로 출연까지 했던 아주머니가 엄마의 김밥 싸는 속도를 보고 되려 감탄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걸 본 김밥집 사장님이 한번 더 티비에 출연할 기회를 노렸었다고. 엄마 덕에 우리 집 냉장고는 항상 풍족하고, 나와 남편은 감사하고도 원망스럽게 살 빠질 틈이 없다.


엄마와 갖는 수다타임은 즐겁다. 엄마는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객관적인 편이라 과도하게 감정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상대에게 그렇게 냉정해 보이지도 않게 적절하게 공감한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엄마에게 못할 얘기 빼고는 다 한다. 그런데 때때로 내가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엄마가 안 보는 곳에서 남몰래 힘들었던 이야기를 어쩌다 하게 될 때면, 살면서 엄마에게서 처음 보는 표정을 접하게 된다. 민첩할 민 할머니는 지금껏 잘 숨기고 살아왔지만, 사실은 딸에게 몹시 약한 사람이었나 보다. 울컥 나오려는 눈물도 민첩하게 숨기려고 하지만, 그때만큼은 나에게 들키고 만다. 민첩할 민 할머니의 딸은 다른 건 몰라도 엄마의 슬픔을 포착하는 것에만은 민첩하다.


나는 엄마와 함께 육아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랑 속에 자랐는지 목격하게 된다. 엄마가 퍼부어 준 사랑과 지지에 비하면 배은망덕하게도 얼마나 못나게 컸는지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 재재와 나나는 민첩할 민 할머니의 성숙하고 커다란 사랑 덕에, 원래 프로그래밍 되어있던 것보다는 훨씬 잘 자랄 것 같다. 그리고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 덕에 나 또한 조금은 더 나은 엄마로 자랄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일단 당분간은 엄마 바짓가랑이를 잡고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내 육아는 끝이 없는 육아가 될거라고 생각하며 우울했는데, 따지고 보면 이런 식으로 모든 육아가 끝이 없는건가 싶다. 그나마 엄마가 힘든 가운데 보람찰 수 있게 내가 좋은 엄마로 잘 커야지. 해맑게 복에 겨운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