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도 괜찮겠니
재재의 신장내과 외래가 있었다. 어느덧 신장내과 진료 루틴에 능숙해진 나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에게 주차를 맡기고 재재를 데리고 내려서 당당히 홀로 어린이 병원 건물로 들어갔다. 기저귀 교환실에 들어가, 출발할 때 미리 부착해 갔던 소변 패치를 재재의 몸에서 떼어냈다. 비닐 소변 패치에 모인 소변을 두 개의 검체통에 적절히 나누어 담고, 재재를 데리고 나와 검체통을 지정된 장소에 잘 놓은 뒤 예약한 초음파실에 접수를 했다. 순서가 되어 지정된 커튼 가림막 안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재재를 뉘였다. 신장 초음파를 찍는 동안 재재가 울지 않도록 장난감을 흔들고 놀아주다가, 결국 검사 막바지쯤 불편감에 울음이 터진 재재를 달래서 몸에 바른 젤을 잘 닦아내고 옷을 입혀 나왔다. 소아 채혈실로 가서 피를 뽑기 위해 재재를 침대에 다시 뉘이고, 이번엔 사력을 다해 우는 재재를 붙들고선 나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피가 잘 뽑혀 나오는지를 확인했다. 몇 번이나 바늘을 쑤셔 겨우 피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살짝 한숨을 내쉬고, 지혈솜으로 팔을 꽉 누른 채 아이를 안고 나와 화가 풀릴 때까지 이리저리 안고 돌아다니며 달랬다. 이제 진료 1시간 전에 미리 해야 하는 것은 끝났다. 직전까지 키, 몸무게와 혈압만 재면 된다. 그러고 나서는 차례가 되면 진료실로 들어가 검사 결과를 들으면 된다.
신생아 때는 피를 뽑으면 영문도 모르고 악만 쓰던 재재는 이제 울면서도 슬그머니 눈을 떠 나를 확인하고는 더 신나고 서럽게 울고, 내가 안아서 저를 달래고 있으면 온몸을 맡기고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입을 가능한 크게 벌리고 왠지 처량한 울음소리를 냈다. 나 힘들었다고 시위를 하는 것 같다. 바늘에 찔려 피를 뺀 아이가 우는 모습에 그저 속상하기만 했던 나도, 이제는 이런 아이의 응석을 알아채고 '아이고 그래도 많이 컸네' 하고 웃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그렇지만 검사를 해놓고서 결과를 듣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가기까지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는 그 어느 때보다 초조했다. 갑자기 괜히 불길했다. 초음파를 볼 때 검사자의 표정이 뭔가 더 진지했던 것 같았다. 마우스를 이리저리 드래그해서 재재의 초음파 사진 위에 대고 뭔가를 많이 표시하는 것 같았다. 더 많이 표시할수록 안 좋은 일은 아닐까. 급기야 재재의 혈압 측정값이 오늘도 높았다. 신장이 기능을 잘하지 못하면 혈압이 높아질 수 있다. 재재는 울음이 다 그치고 안정되어 가는데 정작 나 혼자 너무 떨려서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은 지경이었다.
처음 재재가 신장을 한 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날은 출생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였다. 복부초음파 결과 신장이 한 개라고, 게다가 그 한 개마저 크기가 많이 작다고 했다. 혹시나 하나 있는 작은 신장도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 아기 때부터 투석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재재는 다행히 잘 먹었고 소변도 잘 보았다. 재재를 데려와 키우면서 검색해 보니 단독신장으로도 늙어 죽을 때까지 신질환과 관련된 문제없이 잘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여러모로 군대는 면제되겠네. 남편과 농담을 했다. 그러나 곧 다니던 외래에서 칼륨 수치가 높다는 얘길 들었었고, 전에 썼듯이 이 칼륨 수치 때문에 재재는 입원치료를 명 받기도 했었다. 다행히 하룻밤으로 끝난 입원 뒤 퇴원하면서 받아 든 한아름의 약은 두 종류였다. 하나는 분유에 타서 먹이면 되는, 가루약으로 된 이뇨제였고, 다른 하나는 분유에 타기 어려운, 겔 형태의 칼륨 배출 약이었다. 이름이 카슈웰이었던가 하는 그 약, 지금도 생각만 하면 으으 하는 소리가 나며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그 약, 그 약과 함께한 시절은 악몽이었다.
가루약은 분유에 타면 묘하게 분유에서 쓴 맛이 돌았다. 그래서 재재는 분유를 먹다가 이따금씩 표정을 찡그리거나 울기도 했지만, 어르고 달래면 결국엔 다 먹어주었다. 겔 형태의 약은 아기용 약이 따로 나오지 않아서 20cc인 성인용 약을 재재의 용량에 맞게 작은 약병에 나누어 먹였는데, 한 번에 5cc씩 하루에 세 번을 먹여야 했다. 일단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시간을 정하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먹이기 시작했다. 첫날엔 입에 조금씩 짜 넣어주면 오만상을 쓰면서도 결국 다 먹어주었다. 그런데 이틀째부터는 그 맛과 질감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재재가 강력한 거부를 하기 시작했다.
재재는 지금도 맛이나 질감에 무척 예민하다. 그때는 재재가 생후 50일 정도 되었을 때라 이유식을 시작하기도 훨씬 전이었다. 분유나 모유 이외에 다른 것은 먹어본 적이 없는 재재가 이 맛도 맛이거니와 모래알 같은 질감이 느껴지는 자글자글한 물약을 싫어할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재재의 울고불고 난리를 붙들고 약을 겨우겨우 먹이고 나면 남편과 나와 엄마는 머리를 맞대고 이 약을 어떻게 잘 먹일지 매일같이 토의했다. 어느 날엔 Y자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M사이즈 젖꼭지에 구멍을 좀 더 크게 뚫은 뒤에 약을 부어 재재에게 분유를 주는 척하면서 물려 보았다. 우리의 기대대로 재재는 아무 생각 없이 쭉 쭉 빨면서 약을 다 먹었다. 맛을 느끼고는 바로 울긴 했지만 금방 달래졌다. 오 이 방법인가! 하고 며칠 이 방법을 반복하자 재재는 무엇이 들어있든 간에 분유병 자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다음은 최대한 혀를 많이 거치지 않고 목구멍 쪽으로 약을 쏴주는 방법을 써 보았다. 완전 실패였다. 목구멍 쪽으로 약을 넣자마자 재재는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하다가, 앞으로 넘어온 약의 맛에 두 배로 화가 나 울다가 그전에 먹었던 분유까지 다 토했다.... 그다음에는 분유병과 비슷한 원리로 약을 먹일 수 있는 여러 약병을 사들여 보았다. 재재는 모든 약병을 다 거부하고 빨지 않았다. 결국 다시 우는 애를 붙잡고 약을 조금씩 흘려 넣어 다 삼키는 걸 확인하고 나면 우리는 녹초가 되고, 아이는 땀범벅에 눈물범벅이 되었다. 울다가 울다가 겨우 먹인 약을 토해내기도 많이 했다. 이걸 다 먹으면 뭘 해주겠다고 협상을 할 수도 없고 제발 한 번만 먹어달라고 부탁을 할 수도 없고, 애도 우리도 미칠 노릇이었다.
"칼륨 수치가 높으면 큰 문제가 생길까요?"
마음이 너무 힘든 나머지 급기야 병원에 갔을 때 교수님에게 한심하고 멍청한 질문을 했다.
"심장에 영향을 줄 수 있어요. 극단적으로 심정지가 올 수도 있어요."
이 전쟁 같은 약먹이기를 그래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매일매일 하루 세 번씩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가 된 것 같은 자괴감을 느끼며 약과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 재재는 일 주 간격으로, 그러다 이 주 간격으로 서울대 신장내과 외래를 다니며 칼륨 수치를 확인했다. 아이의 짧고 통통한 팔 위에 저번에 피 뽑은 자국이 아직 남아있는 그 옆으로 또 바늘이 들어갔다. 도대체 이런 삶을 어떻게 살아가지, 한탄하기 시작했을 무렵, 칼륨수치가 안정화된 것 같다는 소견을 듣게 되었다. 그와 함께 약을 줄여보자는 말도. 그 징그러운 칼륨 배출 약을 하루 두 번 먹게 되었다. 전쟁은 아침과 저녁, 두 번으로 줄었다.
시도를 거듭하며 우리가 찾은 가장 최선의 약먹이기 방법은 한 명이 재재를 안고서 살짝 뒤로 기울이고 다른 한 명이 재재의 입에 약을 약간 짜 넣으면, 재재가 울기 시작할 때쯤 애를 안고 우와~~ 하는 효과음을 내며 온 집안을 빠르게 걸어 다니는 거다. 정신을 쏙 빼놓기 위해서. 아이는 울다가 멈춰서 주변을 살피고, 날아다니는 자신의 몸을 느끼며 즐거워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안에 있는 것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배신당했다는 듯 다시 운다. 그러면 다시 약을 조금 짜 넣고, 또 온 집안을 돌아다니기 반복... 재재가 토하지 않게끔 먹이려면 이 과정을 8~10번 정도 반복해서 조금씩 먹여야 했다. 재재는 결국 나중에 가서는 어쨌든 심하게 울고, 재재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땀이 나고 온몸이 아팠다. 엄마는 이 꼴을 보며 아이고... 하고 웃었다. 우리는 매일 최선을 다해 이 우스꽝스러운 풍경을 만들며 울고 싶었다.
우리만의 전쟁통에 또 재재의 피검사 날짜가 왔고, 칼륨 수치를 비롯해 신장과 관련된 다른 수치들이 안정화되었다고 판단한 재재의 신장내과 교수님은 이제 약을 더 줄여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다. 어느 약이 더 먹이기 힘드냐는 질문에 제발 그 칼륨 배출 약을 끊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교수님은 이뇨제를 먼저 끊어보고 싶어 하면서도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재재의 다음 외래 날짜도 이제 3개월 뒤가 됐다. 따져보니 칼륨 약을 먹기 시작한 지 두 달밖에 안 되었었다. 재재의 하나뿐인 신장에는 낭종도 두 개가 발견되었고, 신장의 크기도 여전히 작았다. 그렇지만 기특하게도 재재의 작은 신장은 자신의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잘 해내고 있었던 거다.
3개월 뒤에도 재재의 신장은 작았지만, 낭종이 더 생기지는 않고 기능도 더 잘하고 있었다. 이제는 이뇨제도 끊기로 했다. 재재는 당분간 아무 약도 안 먹어도 되는 아이가 되었다. 다음 외래는 5개월 뒤로 잡혔다. 5개월 뒤라니. 그럼 돌도 지났을 때잖아! 다음 외래가 영원처럼 멀게 느껴지면서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그리고 그 5개월이 벌써 지나, 진료실 앞에서 나는 떨고 있었던 거다. 결과는 다행히 예감과는 달랐다. 앞으로 6개월 뒤에 보자는 행복한 통보를 받았다. 이미 앉아있지 않았다면 몸에 힘이 풀려 바로 퍽 넘어졌을지도. 휴 다행이다. 너무 감사하다. 나는 어쩌다 이리도 심각한 쫄보가 되었지. 앞으로 몇 번을 더 쫄아야 단단해질까. 아니다. 앞으로 몇백 번 더 쫄아서 다리가 매번 풀려도 좋으니 계속 6개월 뒤에 보시죠. 하는 말을 들었으면.
그래서 결국 싱겁지만, 재재는 신장과 관련해서 지금 별 일 없이 지내고 있다. 이유식을 할 때에는 따로 조심해야 하는 것이 없고, 심지어 칼륨이 많이 함유된 바나나도 먹을 수 있다. 분유는 단계를 높이지 않는 것을 권유받는 정도. 분유의 단계가 높아질수록 고영양으로 설계되어 신장에 무리를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의 불안은 단지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혹시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 혹시 칼륨 수치가 다시 높아지면, 혹시 계속 고혈압이 측정돼서 진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무서워서 얼른 미뤄두고 조금 더 할만한 상상을 한다. 앞으로 애들이 밥을 먹게 되면 온 가족이 저염식을 해야 하나. 아 나 김치 없이 못 사는데 지금부터라도 김치 안 먹기 연습을 시작해야 하나. 건강 식단에 맞춰 살다가 쓸데없이 너무 오래 사는 거 아냐....
눈은 두 개, 귀도 두 개, 콧구멍도 두 개, 손도, 팔도, 발도, 다리도, 논란이 있지만(?) 엉덩이도 두 개. 그리고 신장도 두 개. 두 개인 것은 두 개여야 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 왜 재재의 신장은 하나인 걸까. 재재의 배를 만지고 있다가 문득 그 안에 비어있는 콩팥의 자리를 상상하게 된다. 다른 한쪽의 작은 콩팥이 외로워 보인다. 나중에 나중에 재재가 다 크고 나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내 신장 관리를 좀 해야 하나 생각한다. 일단은 그전까지는, 재재의 작고 귀여운 콩팥이 외로워도 슬퍼도 계속 힘을 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