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구하기 전에 친구 집에 잠깐 얹혀살았었다. 신축 오피스텔이었는데, 소음이 엄청났다. 위층의 쿵쿵거리는 소리와 옆방의 가래 뱉는 소리가 다 들렸다. 아침부터 신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음 소리를 들으며 아침부터 왕성하시구나, 감탄했다. 내 방도 그럼 어쩌지 걱정도 했다. 가끔 들리는 거야 상관없지만, 계속해서 이런 신음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한다면 좀 외롭겠는데 싶었다.
이사한 지 2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신음소리는 들은 적 없다. 다행이다. 위층의 쿵쿵거리는 소음도 없다. 층고가 높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간혹 엘리베이터에 조용히 해달라는 공문이 붙는 걸로 봐서는 위에 사는 이웃이 조용히 살아주시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아래층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아직까지 어떠한 지적이나 다툼도 없이 살고 있으니 다행이다.
층간소음은 없는데 벽간소음이 있다. ㄷ자형 구조로 생긴 오피스텔은 가장 안 쪽에 있는 방의 평수가 조금 넓다고 한다. 나는 그 조금 넓은 방의 옆에 사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벽 하나를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만약 벽이 다 하나씩이라면 왼쪽 방의 소음도 들려야 하지만, 오른쪽 방의 소음만 들리는 걸로 봐서는 나의 추측이 맞을 듯하다. 처음 벽간소음을 들었던 날은, 퇴근하고 돌아온 금요일 밤이었다. 내일은 토요일이니 맥주 한 캔 하면서 영화나 보고 있었는데 엄청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들썩거리는 음악도 들리고 여자가 웃고, 남자가 웃고, 여자가 소리 지르고, 남자가 소리 지르고. 네다섯 명 정도가 모여서 파티를 하는 것 같았다. 금요일 밤이니까 그럴 수 있지 싶어서 넘어갔다. 다음날 밤에는 여자와 남자가 대판 싸웠다. 뭔가 우당탕탕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울고 남자는 시발, 하며 욕을 했다. 화장실에서 들으니까 더 잘 들렸다. 어제 분명히 까르르 잘 노는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미친 듯이 싸워 대서 놀랐다. 그래도 어쩔 수는 없다. 싸우고 있는데 가서 좀 조용히 해 주십시오 말할 깡도 없고, 뭣보다 싸움 구경은 재밌기 때문이다. 비록 볼 수는 없지만.
그들은 그런 일들을 종종 반복했다. 그러니까 와하하 웃다가, 다음날 죽일 듯이 싸우고. 나는 그들이 참 혈기왕성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연인과 한 번도 죽일 듯이 싸워본 적이 없다. 물건을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울며불며 싸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싸우는 그들은 아마도 나보다 어릴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우연히 그들을 마주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중년의 남성과 여성이었다. 저들이 그렇게 활기차게 싸운다니 상상하기 힘들었다. 싸움이란 건 나이로 특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한 번은 정말 심각하게 싸운 적이 있었다.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고, 내 방의 벽도 흔들릴 정도로 뭔가 쿵쿵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언제나처럼 울면서 소리 지르고, 남자도 언제나처럼 욕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 정도면 이 층의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거였다. 싸움의 정도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때 누군가 현관문을 박차고 나와서 걸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으로 들어서는 남자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조용해졌다. 나는 동태를 살필 겸 쓰레기를 들고 밖으로 나와 잠시 귀를 기울였는데, 여자는 혼자 울면서 청소기를 밀고 있었다. 뭐가 깨지긴 깨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다정하게 같이 장을 봐서 들어왔다.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열심인 사람들임에는 분명했다. 열심히 싸우고 화해도 열심히 하는가 보다. 그 간격이 너무 밭아서 벽을 공유하는 나로서는 얼떨떨하다.
그들은 요즘 축구에 빠져있다. 지난 월드컵부터 시작된 것 같다. 골이 들어갈 것 같으면 그들은 한 마음으로 골을 외치다가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는다. 골이 들어가면 더 크게 골을 외치면서 기뻐하며 손뼉을 친다. 나는 그들로 인해 월드컵을 보지 않고도 경기 상황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이 싸움이나 축구로 소음을 만든다면, 나는 노래로 소음을 만든다. 혼자 있으면 이상할 정도로 진지하게 노래를 하고 싶다. 그냥 흥얼거리는 정도가 아니다. MR을 틀어두고 마이크 같은 그립감의 뭔가를 손에 쥐고 본격적으로 부른다. 최근에는 뮤지컬 넘버들에 빠져서 오만가지 역할에 빙의된 듯 노래를 불렀다. 뮤지컬 노래는 공기가 거의 없게 불러야 하기 때문에 조용히 부를 수가 없다. 그래서 낮 시간에만 몇 곡 부를 뿐이지만 그들은 내가 뮤지컬에 빠져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쟤 또 시작이네. 어제보다 더 못 부르는 듯?’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주치면 인사는 안 하지만 서로의 치부를 알고 있다.
아래층 주민에게 흡연을 삼가 달라고 말한 후 알 수 없는 약품 테러를 당했다는 기사를 봤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에도 여러 번 호소문이 붙은 적이 있다. 화장실에서 담배를 그만 피워 달라거나 새벽에 운동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 당연한 것을 호소해야만 하는 상황은 안타깝다. 내가 하는 어떤 행동이 타인에게 엄청난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혹 잊고 살게 되는 것 같다. 실수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지적받았을 때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이 어른의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혼자 살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살지 않는 세상에서는 타인을 향하는 마음도 기를 필요가 있다.
내 공간은 안락하다. 담배냄새도 없고, 층간소음도 없다. 간혹 미친 듯이 싸우는 이웃이 있지만 그들은 이내 화해하고 같이 축구를 본다. 골이 들어가면 기쁜 일이니까 그 정도 소음은 참는다. 내가 그들의 소음을 참는 만큼 그들도 내 노래를 견디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소음을 주고받는다. 서로 견딜 수 있는 이웃을 만나서 다행이다.
2023. 6. 16.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