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유럽여행에 대해 묻는다면 가장 먼저 캐리어를 떠올릴 것이다. 여행과는 거리가 먼 가정환경 속에서 나는 가장 먼저 해외에 발을 디딘 구성원이었다. 첫 외국은 고등학교에서 단기 연수로 간 미국이었다. 그때 잘 다녀오라며 이모가 캐리어를 선물해 줬다. 당시 가격으로도 10만 원이 넘는 비싼 제품이었다. 빨갛고 튼튼한 캐리어는 나와 함께 미국을 다녀온 후 십 년 가까이 집에만 있었다. 드디어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고 자고 있던 캐리어를 깨웠다. 한 달 반 정도의 긴 유럽여행이었고, 겨울옷은 조금만 넣어도 부피가 엄청났다. 억지로 짐을 욱여넣고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아파트 일 층 현관을 지나는데 아빠가 끌던 캐리어가 덜컹거렸다. 아빠는 캐리어가 안 끌리자 뒤를 돌아봤는데 돌아본 자리에 덩그러니 바퀴가 빠져있었다.
이 시트콤 같은 상황은 뭐지? 5초간 정적이 흘렀던 것 같다. 캐리어가 너무 오래 자고 있었나 보다. 일단은 떨어진 바퀴를 챙겨서 차에 올라탔다. 심란한 마음으로 검색해 보니 하필이면 일요일이라 수리실 운영을 안 한단다. 엄마는 유럽에 도착해서 하나 사라고 했다. 나는 가본 적 없는 영국 런던을 떠올려봤다. 바퀴가 빠진 커다란 캐리어를 낑낑대며 끌고 런던 지하철과 거리를 헤매는 나를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되지도 않는 영어를 이리저리 써가며 하필이면 물가도 험악한 나라에서 새로운 캐리어를 구매하는 내 모습 또한. 여행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지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일부러 더 밝게 인사하고, 씩씩하게 캐리어를 끌며 공항으로 들어갔다. 그래야 부모님의 걱정이 덜어질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 공항 안에 캐리어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가볍고 튼튼해 보이지만 못생긴 검은색 소프트 캐리어를 골랐다. 재질이 천이라서 좀 더 유연할 것 같았고, 하드케이스보다 가벼워서 바퀴에 조금이라도 무리를 덜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뭣보다 다른 캐리어에 비해 저렴했다. 저렴해서 20만 원 정도였는데 마음이 쓰렸다. 공항 구석에 캐리어를 냅다 펼쳐놓고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짐을 옮기는 과정에서 바퀴 2개가 더 빠졌다.
이걸 영국까지 가져갔으면 등에 업고 다닐 뻔했다. 결국 단 한 번의 여행만을 함께한 빨간 캐리어는 그대로 공항에 버려졌다. 새로 산 캐리어는 전 캐리어보다 확실히 가벼웠다. 크기도 좀 더 커서 내 짐을 다 넣고도 공간이 남았다. 그래, 차라리 오기 전에 빠지길 잘했다. 이 정도면 웃고 넘길 해프닝이지. 여행 다니다가 빠졌어봐, 말도 안 통하고 어디서 사야 되는지도 모르는데! 긍정회로를 돌렸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긍정이 과했을까? ‘여행 다니다가 빠졌어봐’가 실현될 줄이야.
체코 프라하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아침에 뜨끈하게 샤워를 했고, 스위트한 리셉셔니스트 덕분에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햇살이 눈부신 좋은 날이었다. 기차 시간이 빠듯해서 열심히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캐리어가 무거워졌다. 이상한 기분으로 뒤돌아봤는데, 데자뷔인가? 저만치 떨어진 곳에 까만 동그라미. 저게 내 캐리어의 바퀴라는 걸 깨닫는 데 잠시의 시간이 필요했다. 에이, 설마 또? 급한 마음에 바퀴를 잡았는데 이전까지 열심히 구르던 바퀴는 엄청 뜨거웠다. 손가락에 금방 물집이 잡혔다. 돌길의 돌조각이 바퀴 사이에 끼면서 힘을 이기지 못해 떨어져 나간 거였다. 어이가 없어서 울 것 같았다. 바퀴 하나는 완전히 빠져 버렸고, 다른 하나는 휘어져서 방향이 틀어졌다. 어떻게 해도 캐리어를 정상적으로 끌 수 없었다. 길은 또 얼마나 울퉁불퉁한지, 이 놈의 돌바닥! 유럽은 왜 죄다 이런 돌바닥인 거야. 세상 모든 돌바닥을 저주하며 캐리어를 거의 들다시피 해서 기차가 출발하기 1분 전에 탑승할 수 있었다.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그날따라 햇살이 좋더라니.
어째서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나는 걸까. 왜 나에게만 이러는 걸까.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싱싱한 녀석이었다고…. 원망하고 저주하고 한숨 쉬어봤자 이미 빠진 바퀴를 어쩔 수 없었다. 울고 싶었지만 친구까지 우울해질까 봐 억지로 참았다. 한참 넋이 나가 있다가 이내 생각했다. ‘소매치기당해서 돈이나 핸드폰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여권도 무사하고, 기차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바퀴 없는 캐리어를 훔치지 못할 것이다. 그냥 좀 힘들게 끌고 가서 바퀴만 고치면 된다, 그렇게 큰일도 아니고, 억울할 것도 없다. 여행이 너무 평탄하기만 하면 재미없잖아? 나중에 이 얘기를 하면 얼마나 재밌겠어?’
억지 긍정은 그래도 마음을 다독여줬고, 역에 가까워질 때마다 미약한 와이파이를 잡아 부다페스트의 캐리어 수리점, 판매점 등을 검색했다. 캐리어를 고칠만한 곳이 있었으나 너무 멀었고, 대신 쇼핑센터 같은 곳에서 캐리어 가게를 찾았다. 가게 사장님은 영어를 잘 못하셨고 나 또한 그랬다. 나는 ‘스트롱’과 ‘휠’을 반복했다. 바퀴를 만지며 스트롱? 스트롱? 하면 사장님은 오케, 오케! 하는 식이었다. 나는 떨어져 나간 바퀴와 처참한 캐리어를 찍어둔 사진을 보여주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나 벌써 두 번째라고. 이 바퀴 정말 스트롱하냐고.
그러자 사장님은 웃으며 캐리어를 바닥에 쿵쿵 내리치고, 바퀴를 망치 같은 걸로 두드리셨다. 독일에서 만든 거라 베리 스트롱하댔다. 독일과 스트롱이 상관있나 싶으면서도 사장님의 확신을 믿고 싶었다.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좋은 여행 하라고 했다. 이건 절대 부서지지 않을 거라고. 다정한 분이셨다. 다정한 그의 말대로 캐리어는 베리 스트롱하여 지금까지도 나와 잘 다니고 있다. 짧은 기간 함께한 비운의 캐리어는 부다페스트 숙소에 남겨두고 왔다. 에어 비앤비 호스트에게 어디에 버릴 수 있냐 물었더니 그냥 집에 두고 가면 버려준다기에 방 한쪽에 남겨두고 왔다.
그때 가지고 다녔던 작은 노트에 이렇게 적혀있다. ‘나중에 바퀴 빠진 일을 이야기하면, 다시금 지금의 날씨와 기분과 공기까지 기억이 날 것이다. 스스로 위로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쓴 마음도 기억이 나, 내가 대견할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 체코의 프라하가 어땠는지, 거기서 뭘 먹었는지도 희미한데 그날의 날씨와 돌바닥의 모양과 기차역 옆 공원을 뛰어갈 때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이상하게 쳐다봤는지 그런 것들이 세세하게 기억난다.
여행은 대체로 좋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완전하게 좋은 일만 가득하지는 않다. 어렵고 힘들고 속상하고 안타깝고 억울하고 지치고 멍해지는 일들이 있다. 그런 순간들은 좋았던 순간만큼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건 그 상황을 무사히 지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계속해서 나아가 결국은 여행을 마쳤기 때문일 것이다. 두 차례 바퀴 사건을 겪고 나는 무적이 되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물론 그 뒤에 소매치기를 당해서 또 한 번 멘털이 털리지만) 여행은 이런 방식으로 나를 성장시켰다. 아름다운 풍경과 낯선 사람들, 멋진 문화들보다 어렵고 어이없고 힘든 일들에서 더 많이 배웠다. 여행은 항상 그런 순간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래서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2023. 6. 23.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