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배운 것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약해지거나 잊게 된다. 웃어른을 공경하라거나 친구와 싸우지 말라거나 인사를 잘하라거나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말라는 것들. 그런 와중에도 전혀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진 가르침이 있는데, 절약의 정신이다. 나의 부모는 상당한 절약가다. 아빠는 어릴 때부터 녹록지 않게 살다 보니 그런 것 같고, 엄마는 아빠와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자식 세 명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하느라 이리저리 아껴야 했을 것이다.
우리 삼 남매는 어릴 때부터 절약을 몸에 체화시키며 자랐다. 양치하거나 세수할 때 반드시 물을 받아서 쓰고, 휴지는 적정량만 쓴다(어릴 때는 몇 칸씩이라고 정해져 있었다). 치약이나 화장품을 잘라서 싹싹 긁어 쓰는 건 당연한 일이다. 쓰지 않는 불은 반드시 끄고, 냉장고문도 자주 여닫거나 오래 열어두지 않는다. 동생들은 성별이 달라도 내 옷을 물려 입었고, 학용품도 마찬가지였다. 먹는 것에는 크게 아끼는 편이 아니었지만, 엄마는 사 먹는 것보다 해 먹는 게 싸고 건강하다며 대부분의 요리를 직접 했다. 날마다 할인하는 품목이 달라지기 때문에 매일 장을 봤고, 그건 지금도 여전하다. 그래서 우리 가족에게 외식이나 배달음식은 매우 특별한 날에 먹는 것이었다.
어째서 많고 많은 것 중에 절약 정신만이 내 것이 되어 남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부모조차 혀를 내두르는 절약가가 되었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더 심해졌는데, 어릴 때부터 습관화되어 그런지 절약하는 삶이 크게 힘들지 않다. 2년 넘게 혼자 살면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은 적은 딱 2번. 대체로 장을 봐서 직접 해 먹는다. 배달음식 자체가 익숙하지도 않고, 배달비가 오르면서 치킨 한 마리를 시켜도 2만 원이 훌쩍 넘으니 점점 시키지 않게 되었다. 요리를 좋아해서 아주 다행이다. 그렇게 요리를 하면서도 키친 타월 하나를 1년 동안 썼다.
집에서의 습관은 밖에 나가서도 어김없다. 회사를 다닐 때도 물이나 휴지를 마구잡이로 쓰는 광경을 보면 아찔했다. 글자 하나가 틀리면 서류를 처음부터 다시 뽑아야 했는데, 그냥 버려지는 종이가 아까워 이면지로 사용하곤 했다. 그마저도 기밀문서면 이면지로 쓰지 못하고 파쇄해야 했는데, 멀쩡한 종이를 갈아내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알뜰하다고 했지만, 어차피 회사에서 사는 건데 굳이 궁상떨 필요 있나 싶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의 돈이 아깝다기보다는 그저 흐르는 물, 그냥 버려지는 종이 그 자체가 아까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껴 쓰는 것이 있다면 보일러나 에어컨이다. 그것들을 거의 켜지 않고 산다. 어느 정도냐면 매번 관리실의 전화를 받는다. 보일러나 에어컨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걸로 나오는데 혹시 고장 났느냐는 전화다. 그럼 나는 조금 멋쩍게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린다. 보일러는 본가에서도 거의 켜지 않기 때문에 익숙하다. 공기가 따뜻한 것보다 내 몸을 따뜻한 옷으로 감싸는 걸 더 좋아한다. 수면양말과 실내화를 신기 때문에 바닥이 차가운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몸에 열이 많아져서 겨울에 창문도 열어두고 사는데, 간혹 친구들이 놀러 오면 너무 춥다고들 한다.
보일러보다 에어컨을 켜지 않는 게 훨씬 어렵지만, 에어컨을 켜지 않는 건 명확한 이유가 있다. 우선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잠깐은 괜찮은데 오래 노출되면 머리가 아파오고, 안 그래도 건조한 눈이 심각하게 뻑뻑해진다. 희한하게 배가 차가워지고 목이 칼칼하다. 냉방병에 취약한 몸인 것 같다. 또 하나의 이유는 역시 돈이다. 사는 지역의 특성상 에어컨 비용이 더 많이 나온다. 열을 병합한다나 뭐라나 전기세와 별개로 냉방비가 붙는다. 일반 가정에서 에어컨 전기세로 5만 원이 나온다면, 나는 10만 원이 나오는 셈이다. 그걸 생각하니 몸에 밴 절약 정신이 꿈틀거려 쉽사리 켤 수가 없다. 마지막 이유는 북극곰이다. 고등학생 때 환경에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곰이 살 수 있는 빙하가 점점 녹는다는 내용이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도 못하지만 이상하게 그때부터 에어컨을 켜는 행위가 지구 온난화로 연결되고, 그건 또 북극곰으로 연결됐다. 그러니까 에어컨을 켤 때마다 북극곰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내가 지금 에어컨을 켜면 북극의 빙하를 녹인다, 그럼 북극곰은 또 살 곳을 잃고 여기저기 힘들게 헤엄쳐야 하겠지, 이런 식이다. 과장된 비약인 것 같지만 그런 구조가 머릿속에 자리 잡고 나니 에어컨을 켜는 게 더 어려워졌다. 물론 내가 환경 운동을 한다거나 동물을 위해 엄청나게 애를 쓰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지금 잠깐 에어컨으로 시원하면, 내년 여름은 더 더울 것이고, 그럼 더 많이 에어컨을 켜게 될 것이고, 그럼 결국 북극이든 남극이든 모든 빙하가 녹아버리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힘겹게 살아가는 북극곰들은 얼마나 더 힘들어질지, 결국은 우리들도 얼마나 힘들어질지 모르겠다. 올해도 아직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이제는 오히려 아빠가 독려한다. 너무 아끼지 말고 더우면 켜고 살라는 건데, 아끼려는 마음보다는 앞으로의 더위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 덥다고 마구 켰다가 악순환에 갇혀 버릴 것 같다. 미쳐버릴 정도로 덥지도 않아서 작은 선풍기 하나로 족하다. 너무 더우면 도서관이나 카페에 간다. 어차피 그곳은 에어컨을 켤 수밖에 없는 환경이니까 에너지 무임승차를 하는 셈이다.
옛날에 비해서 확실히 풍족한 삶이다. 많은 것을 고민 없이 소비하며 살아간다. 인간들의 더 편리하고 풍족한 생활을 위해 수없이 많은 플라스틱과 에너지가 생산되고 소비된다. 앞으로도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에어컨을 켜지 않으며 살아가기는 힘들겠지만 어떠한 지각도 없이 소비만 하는 건 위험하다. 내 소비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가거나 죽어가는 알지 못하는 동물들을 생각해 본다. 쓰러지는 나무나 녹아가는 빙하를, 갈라지는 땅들을 생각해 본다. 생각만으로 뭐가 달라지지 않지만 생각조차 안 하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소비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하는 건 오래된 절약 정신 때문이지만, 그로 인해 빙하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을 지켰다고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따땃해진다. 결국 부모로부터 받은 건 돈을 아끼는 방법이 아니라 나와 내 주변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지구 곳곳이 녹아가고 그로 인해 재난이 덮쳐오면 아무 쓸모가 없다. 고작 나 하나의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고작 나 하나라도 더 보태고 싶지 않다. 북극곰도 나처럼 안전한 집에서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2023. 7. 10.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