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무 Jul 12. 2023

나의 초록 병아리


  초등학교 하굣길에는 상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정문에 자리를 펴고 쪼그만 애들을 유혹했다. 달고나와 솜사탕, 설탕 독수리 같은 것들을 파는 할아버지가 있었고, 학습지 구독을 권하는 아줌마들이 있었고, 휴대용 랜턴이나 라디오 같은 잡동사니를 파는 아저씨도 있었다. 그중 아이들의 발목과 눈길을 가장 사로잡은 사람은 단연 병아리를 파는 상인이었다. 그들은 커다란 박스에 짹짹거리는 작은 생명체들을 잔뜩 가져와 한 마리에 100원을 받고 팔았다. 보통의 노랑 병아리는 100원, 초록색이나 핑크색으로 염색을 한 병아리는 300원이었다. 아이들의 마음이란 그렇듯 알록달록한 병아리들이 인기가 더 많았는데, 나와 동생들도 마음을 뺏기곤 했다. 

  

  엄마를 졸랐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내 손에도 병아리가 오게 되었다. 쨍한 초록색 염색을 한 300원짜리 병아리였다. 먼저 키워본 애들이 말하길, 염색을 한 병아리들은 더 빨리 죽는다고 했다. 그런데 내 병아리는 잘 자랐다. 매일 들여다보고 쓰다듬고 밥과 물을 챙겨주고 톱밥을 갈아줬다. 사료도 사다 먹이고 채소나 과일도 챙겨줬던 것 같다. 병아리는 조금씩 몸집이 커지더니 초록색털이 없어졌다. 그땐 염색이 빠지나 보다 했는데 생각해 보니 털갈이였다. 상큼하게 짹짹거리던 소리도 조금 탁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작은 병아리에서 거의 중닭 수준이 되었다. 털은 살짝 빳빳해졌고 발에는 주름이 지기 시작했다. 병아리보다 닭의 모습에 가까웠다. 누구도 병아리를 그만큼 키운 적 없었기 때문에 그는 내 자랑이 되었고, 친구들 중 몇은 구경하러 오기도 했다. 병아리의 시절을 지나친 병아리에게 더 큰 스티로폼 박스로 집을 만들어 주었다. 어떤 생명체가 그만큼 자라는 걸 처음 목격했다. 그를 갈색의 닭까지 키울 수 있을 줄 알았다. 교만하게도. 

명절이 되어 집을 비워야 했는데, 그를 데려갈 생각은 못했다. 며칠이니까 밥이랑 물을 넉넉히 챙겨주면 알아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다.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니까 며칠은 혼자서도 잘 살겠지 싶었다. 명절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스티로폼 박스 속에서 빳빳하게 누워 죽어있었다. 나는 미라같이 굳은 병아리였던 것이 무서워서, 그게 풍기는 냄새가 지독해서, 그의 마지막을 보지 못해서, 그가 왜 죽었는지 알지 못해서, 그를 데려가지 못했던 내가 미워서, 내가 그를 죽인 것 같아서 울었다. 나의 초록색 병아리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빳빳하게 일자로 누워서 말라가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나는 그를 소중히 싸서 흙에 묻어 주었다. 그 뒤로 아무것도 키우지 않았다.


  나의 부모는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정확히는 무서워하는 것 같다. 동물의 마음은 알 수 없기에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엄마는 무척 깔끔한 사람이라 동물의 털이 집에 날리는 것도 싫다고 했다. 우리는 종종 강아지나 고양이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한 번도 키우지 못했다. 아마 자식 셋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반려동물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내내 조르면 햄스터나 병아리처럼 작은 동물은 키워볼 수 있었다. 제일 처음 키웠던 동물이 햄스터였다. 한 때 유행처럼 반의 대부분 아이들이 햄스터를 키웠다. 그들은 작고 귀엽고 번식력도 대단했다. 나와 동생들은 햄스터를 살뜰히 살폈는데, 햄스터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으면서 판매직원의 간단한 설명으로만 그들을 키웠다. 해서 새끼를 배거나 낳거나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한 번에 새끼를 그렇게 많이 낳는지도 몰랐다. 7마리의 작고 꼬물꼬물한 것들이 태어났는데, 눈도 못 뜨고 어기적거리는 모습이 미치도록 귀여웠다. 근데 다음날 보면 한 마리가 없어지고, 또 다음날 없어지고. 세 마리째 없어졌을 때 한 구석에서 빨간 핏덩이 같은 것을 발견했고 어미 햄스터가 자기 새끼를 잡아먹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어린 우리들에게 그건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다니.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충격에 휩싸인 나머지 새끼를 잡아먹은 햄스터에게 정이 떨어졌다. 결국 그들을 한 마리씩 분양했고, 우리는 더 이상 햄스터를 키우지 않았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먹이가 부족하거나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사람 손을 타면 새끼를 잡아먹기도 한다는 것. 먹이를 부족하게 주진 않았지만 출산 후에는 더 많은 먹이가 필요하다고 하니 부족했을 수 있고, 신기하고 귀여운 새끼를 만져보기도 한 것 같다. 결국 그들이 부모에게 잡아먹힌 이유는 우리의 잘못이었다. 그걸 알고 나서는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를 봐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떤 생명체를 나의 반려로 들이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엄청난 사랑과 관심, 돈과 노력,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들은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없으니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공부해야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러한 노력 없이 그저 생명을 사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줄 알았다. 지금은 그 작은 생명이 가지는 무게감이 크다는 걸 알아서 두렵다. 나 아닌 다른 생명의 온기를 감당하기에 아직 내가 가진 세계는 너무 좁다. 펫샵 유리창을 통해 귀여운 생명체들을 마주할 때마다 빳빳하게 죽어간 나의 초록 병아리를 떠올린다. 이제는 귀엽다고 무턱대고 생명을 사지 않는다. 더 이상 나의 무지함이나 부족함으로 생명을 죽이지 않도록 마음을 눌러본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기대해 본다. 언젠가는 어떤 생명을 나의 반려로 들일 수 있기를. 내가 나 아닌 다른 생명체에게, 말 못 하는 생명체에게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쏟고 사랑을 줄 수 있기를, 그만큼 나의 세계가 넓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2023. 7. 13. 수

매거진의 이전글 좁은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