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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Jul 13. 2023

빨래


  2년 전 얻은 5평짜리 원룸에 꽤 만족하며 살고 있다. 음식을 자주 해 먹는 사람이라서 주방이 좁은 게 단점이고, 층고가 높아 수납공간에서 뭔가를 꺼내는 게 불편하지만 이내 적응했다. 인덕션의 화구는 두 개인데 동시에 쓰려면 정말 코딱지만큼 작은 냄비나 팬을 써야 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팬 하나로 요리를 하고, 싱크대가 작기 때문에 설거지는 나오는 대로 한다. 수납공간들이 내 키 훨씬 위에 있어서 반찬통이나 접시, 화장품이나 휴지 등을 꺼낼 때 의자를 딛고 올라가야 한다. 처음엔 너무 귀찮았지만 계단 오르기 운동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2년쯤 살다 보니 불편한 것도 적응되고, 좁은 공간은 오히려 안락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나 하나 사는데도 매일 먼지가 쌓여 하루에 청소기를 몇 번씩 돌리지만 그래도 작은 공간이라 금방 해낸다. 모든 것에 그럴 대로 적응했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빨래다.     


  5평짜리 원룸에서 빨래와 건조는 꽤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옵션으로 달려있는 건조대가 있다는 것. 처음 방을 구하러 다닐 때 몇몇 원룸에 이런 옵션이 있었다. 서랍식으로 여닫을 수 있는 간이 건조대. 

도저히 건조대를 둘 공간은 없어 보였기에 이 건조대가 꽤 마음에 들었다. 냉장고 옆 수납공간 중간에 위치해 있는데 필요할 때 빼서 양 옆으로 펼칠 수 있고, 그 외에는 넣어둘 수 있다. 

근데 실제로 써보니 건조대가 내 옷을 감당하기에 너무 작다는 것이 문제였다. 미스터리한 내 옷장은 늘 입을 옷이 없는데도 터져나가기 직전이다. 수많은 옷들을 건조하려면 간이 건조대로는 택도 없었다. 옵션으로 달린 세탁기는 그리 작지 않아서 이불도 빨 수 있지만 이불을 널 만한 공간이 없다. 그래서 계절이 바뀌는 때에는 몇 날 며칠 빨래에 매달려야 한다. 환기가 잘 안 되기 때문에 화창하고 맑은 날을 골라잡아야 한다. 건조대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빨래를 하고 널어서 말리고 개서 정리하는 동안 다시 세탁기를 돌리고, 널고, 말리고, 개고.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가 가장 난감하다. 겨울옷들은 부피가 커서 많은 양을 세탁하기도 힘들고, 니트 종류는 옷걸이에 걸 수도 없으니 더 많은 건조 공간을 차지한다. 옷장 문이나 창틀 등 옷걸이가 걸리는 모든 곳에 옷을 널어둔다. 방을 둘러보면 빨래가 주인인 것 같다. 빨래가 주인이 된 방은 향기로운 습기로 가득하다.     

  혼자 살면서 딱히 가족이 그립다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빨래를 할 때면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가 사는 집에는 거의 매일 빨래가 널려 있었다. 다섯 식구가 입고 벗어놓은 티셔츠, 청바지, 속옷, 양말, 잠옷, 신발, 수건 등을 매일같이 빨아서 널어놓았다. 큼직한 건조대와 베란다에 빽빽이 빨래가 널려있는 광경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엄마는 색과 재질을 구분해서 빨고, 운동화를 문지르고, 손으로 빨고, 삶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집안일은 오로지 엄마의 몫이었으므로 속옷부터 이불까지 모든 빨래는 엄마 혼자 해냈다. 엄마가 나에게 집안일을 시키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핑계로 집안일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해도 나는 엄마만큼의 빨래를 할 수 없다. 엄마가 한 빨래는 언제나 쾌적한 냄새가 났고, 접혀있던 옷들도 꺼내 입으면 주름지지 않았다. 나도 같은 세제와 유연제를 쓰고 탁탁 털어 널고 가지런히 개어 놓는데도 좋지 않은 냄새가 날 때도 있고, 이상하게 쭈글거린다. 


  나는 이제 가지런한 빨래에서 엄마의 사랑을 본다. 깨끗하고 보송한 옷을 입기까지의 지난한 과정들을 안다. 내 몸을 감싸는 모든 것들이 엄마의 정성과 사랑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직접 해보기 전엔 몰랐다. 여전히 많은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내 삶 곳곳 엄마의 손이 미치지 않은 구석이 없기 때문에 엄마의 사랑은 사소한 부분에서도 여러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 모르는 엄마의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올라온다. 아마도 나는 계속 모를 것이다. 내가 엄마의 딸이고, 엄마가 나의 엄마인 이상 나는 언제까지나 엄마의 사랑을 완벽히 알 수 없을 것이다.          

                                                                   


                                                                                                                        2023. 7. 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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