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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Jul 24. 2023

K에 대하여


  딱히 별 일이 없는데도 잠을 뒤척이게 되는 밤이 있다. 분명 피곤해서 누웠는데 정신이 점점 맑아져서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멍하게 바라보게 되는 밤. 그런 밤에는 지나간 인연들을 떠올려보곤 한다. 한 때 친했으나 자연스럽게 혹은 다투고 멀어진 친구들, 옛 연인들, 연인이 될 뻔한 이들, 친하지는 않았지만 떠오르는 얼굴들. 연락처도 없고 소식도 들리지 않는 이들은 잘 살고 있는지, 어떤 모양으로 살고 있는지 궁금해해 본다. 대체로 엄청난 호기심은 아니어서 SNS를 뒤져본다든지 하는 적극성은 없다. 그중에는 정말 ‘살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


  K는 대학 동기였다. 내가 재수를 했으므로 나보다 한 살 어렸고, 키가 크고 잘생겼다. 개성 있는 잘생김이 아니라 누가 봐도 못 생긴 얼굴은 절대 아닌 잘생김이었다. 성격은 호탕하고 활기가 넘쳤으며 언변이 화려했다. 특유의 사교성으로 1학년 대표를 맡기도 했다. 그는 거의 매일을 클럽에서 보냈다. 어제 뭐 했냐고 물어보면 강남 어디 클럽에 갔다던가, 이태원 어디 클럽이 물이 좋다던가 하는 식이었다. 클럽에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수업에 빠지는 일도 잦았다. 과방에 모여서 점심 메뉴를 고르다가도 흥이 오르면 구석에서 셔플댄스를 추곤 했다. 어지간히도 춤이 좋은가보다 싶었다. 쓸데없고 재미없게도 성실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그를 클럽 좋아하는 한심한 스무 살 남자애쯤으로 여겼다.      


  동기들 몇이 모인 술자리에서 K는 자신의 병에 대해 고백했다. 그에게는 병이 대여섯 개쯤 있었고(병명을 말해줬는데 아는 이름이 없어서 다 잊었다), 그중 제일 약한 병이 류머티즘 관절염이랬다. 병이 약하고 강한 게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의 말이 그랬고, ‘류머티즘 관절염도  심각한 병이지 않나? 더 강한 병은 얼마나 심각한 거지?’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K의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울었다. 그는 너무 담담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십 년 뒤에 죽을 거라고 했다. 의사가 말하길 여기저기 고장 나서 오래는 못 산다고, 서른 정도가 한계일 거라 그랬다고. 그래서 살아 있을 때 미친 듯이 술도 마시고, 클럽 가서 춤도 추고, 놀 수 있을 만큼 노는 거라고 했다. 걔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삶이 정해져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상상조차 안 됐지만 그냥 슬펐다. 

원래 눈물이 많은데 울기 시작하면 멈추는 것도 잘 안 된다.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참으려 애썼으나 떨어지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거기서 우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다음날 그 자리에서 있던 다른 친구가 나를 나무랐다. 그건 정말 매너가 아니었다고, 네가 거기서 울어버리면 걔 마음은 어떻겠냐고. 그 말이 맞았다. 나도 울고 싶어 운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울었으니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K에게 사과했다. 뭣도 아니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부르게 동정했다고 미안하다고. 근데 걔는 나한테 고맙다고 했다. 자기 얘기를 듣고 울어줘서 고맙다고. 그런 얘기를 하면 못 믿거나 불쌍해하거나 하는데, 못 믿는 건 어쩔 수 없어도 불쌍해하는 건 견디기 힘들 댔다. 그래서 솔직하게 나도 불쌍해서 운 것 같은데,라고 하니 ‘누나는 나한테 공감을 한 거잖아. 나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았어. 그래서 고마웠어.’랬다. 그는 언젠가부터 눈물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공감이건 대신이건 과하게 좋은 쪽으로 해석한 것 같지만 어쨌거나 그 뒤로 K와 잘 지냈다. 

그 애가 했던 말을 후에도 자주 생각해 봤다. 사실 그에게 공감한 게 아니었고, 그래서 대신 울어준 것도 아니었다. 아직 스무 살 밖에 안 된 인생이 기구했고, 불쌍했는데 담담하게 받아들이니까 그게 슬퍼서 운 거였다. 알면 얼마나 안다고 공감하고, 대신 울어주기씩이나 하겠나. 걔가 맘대로 해석하고 고마워한 거지만 마음속에 부채감 같은 것이 늘 있었다. 그 눈물은 너를 위한 게 아니었으니 고맙다고 할 필요 없었는데. 고마워서 나한테 잘해준 거라면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이십 대 초반 나의 주량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웠다. 그래서 하나둘씩 쓰러지는 엠티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모든 뒤처리를 하는 자였다. 취한 애들은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다른 방에 옮겨졌고, 그 방은 시체방이라고 불렸다. 간혹 그 방의 문을 열면 애들이 정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어서 괜히 몇몇 애들을 흔들어 깨워보기도 했다. 하여튼 마음껏 취하고 그래서 시체방에도 가고 친해지기도 하는 게 엠티였다. 그래서 대부분이 취했고, 취한 스무 살은 과감하고 용감해졌다. 그중 몇은 취기를 빌려 호감을 표하기도 했다. 누나라고 존대를 하더니 갑자기 이름을 부르거나 나를 데려오라고 난동을 피우거나 가볍지만 친밀한 스킨십을 하는 식이었다. 나는 그들의 술 냄새나는 용기에 고개를 저었지만 냉정하게 밀어내진 않았다. 언제까지나 누구에게라도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심이 그때는 있었다. K는 나의 곤란을 잘 알아챘다. 눈치가 매우 빠른 아이였다. 내가 곤란할 때면 어김없이 치고 들어와서 상황을 정리하곤 했다. 특유의 유쾌함으로 누구도 서운하거나 곤란하지 않게. 취한 누군가 내 무릎을 베고 누워 내가 당황하면 K는 곧바로 반대쪽 무릎에 누웠다. 그렇게 해서 둘만의 이상야릇한 장면이 아닌, 취해서 아무 무릎이나 베고 누운 이상한 애들이 되게끔 했다. 누군가 내게 불편한 대시를 계속하면 K는 곧바로 개인적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누나 쟤랑 밥 먹기 싫지? 우리 팀 과제 한다 하고 나갈래? 이런 식으로. 그 애는 유독 나의 곤란함을 잘 알았고 언제나 성실히 도왔다. 그렇다고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다. 둘이서만 붙어 다니거나 밥을 같이 먹거나 연락을 매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간혹 몇몇의 오해를 받은 적도 있었지만 나나 K나 서로에게 연애 감정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냥 조금 더 친한 동기로만 지냈다. 그의 도움은 끈적임 없이 쿨했다. 뭔가를 바라서가 아니라 그저 할 수 있기에 하는 것뿐이라는 산뜻한 태도. 나는 그 애의 눈치 빠름과 산뜻한 배려가 고마우면서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누구든 눈치는 빠를 수 있지만 누구나 그렇게 상황을 유연하고 유쾌하게 바꾸진 못하니까.      


  그는 말이 거침없고 정치색을 강하게 드러내기도 하며 교우관계도 썩 좋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그의 병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믿는 이들은 나를 포함해 소수였던 것 같고, 안 믿는 이들이 많았다. 만약 정말로 아프면 그렇게 매일같이 클럽 죽돌이로 살 수 있겠냐고, 동정심 유발해서 여자 꼬시려는 거라고. 나는 꼬시려면 건강한 육체를 어필해야지 병으로 여자가 꼬셔지나 싶었고, 그가 굳이 동정을 얻으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아서 그냥 믿었다. 나중에 한 친구로부터 그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같이 갔다가 그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때 K는 이미 동기들과 멀어진 후였다. 그의 확고한 정치색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고(정확한 내용은 모른다), 그로 인해 모두가 손가락질할 때도 나는 그를 욕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가 아무리 나쁜 사람이어도 최소한 나에게는 좋은 친구였으므로 욕할 수 없었다. 관계에는 늘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구석이 존재하니까. 


  내가 남자친구를 사귀고 걔가 휴학을 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내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걔가 복학을 하고서도 전처럼 가까워지진 못했다. 2학년부터는 과가 달라졌기 때문에 겹치는 수업도 없었고, 나는 복수전공을 선택하며 더 바쁜 대학생활을 했다. 굳이 연락해서 얼굴 볼 정도로 친한 것도 아니어서 졸업할 때까지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살면서 가끔 생각했다. 류머티즘 관절염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클럽을 지나칠 때, 엠티를 추억할 때. 그렇다고 내가 먼저 그의 연락처를 찾아 잘 지내니? 따위의 안부를 물을 성정은 못 되어서 그냥 생각만 했다. 좋든 그렇지 않든 그의 존재는 대학교 1학년 시절에 강렬히 각인되었지만, 이후 행보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졸업을 했는지 어쨌는지 들리는 소문도 소식도 없었고, 마지막으로 들은 건 그에 대한 욕뿐이었다.      


  그로부터 십 년의 세월이 지났다. 의사의 말대로 K는 서른에 죽었을까. 아니면 건강하게 서른하나를 살고 있을까. 차라리 그 모든 게 거짓말이어서 서른이든 서른하나든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 그가 술을 마시러 가기 전에 셀 수 없이 많은 약을 털어 넣는 걸 본 적이 있다. 내가 약을 먹고 술을 먹으면 안 좋다, 그렇게 약을 많이 먹을 정도로 몸이 안 좋은데 술을 먹으면 어떡하냐 등의 잔소리를 하자 그는 산뜻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누나, 그건 약을 먹어서 건강해지고 나을 수 있을 때 맞는 말이고, 난 안 먹으면 지금 당장 쓰러지니까 너무 아프니까 먹는 거야. 어차피 이 약 먹고 술 안 마셔도 오래 못 살아.” 

죽음을 체념하면 그렇게 산뜻할 수 있을까, 저 애는 언제부터 얼마나 오래 아팠기에 저렇게 무뎌진 걸까 같은 생각을 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만약 서른을 넘긴 그 애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또다시 울고 싶다. 모든 과정을 무사히 통과한 그 애를 대신해서 이번에는 정말 진심으로 울어주고 싶다.           

                                                             


                                                                                                                        2023. 7. 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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