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라페를 만들다가 알게 된 것 두 가지.
1. 당근에는 세척당근과 흙 당근이 있다.
나는 그것을 혼자 살기 이전에는 몰랐다. 시장이나 마트를 스치면서 깨끗하거나 흙이 묻은 당근을 보았겠지만 관심 두지 않았다. 자취를 하면서 처음으로 당근을 사봤다. 자주 가는 과일가게에서 깨끗한 세척당근을 샀다. 흙 당근은 흙이 너무 묻었고, 세척당근은 너무 깨끗했는데 심지어 쌌으므로. 엄마가 세척당근은 중국산이랬다. 중국산은 별로야? 중국산은 맛이 없어, 당근은 제주산이 맛있어. 제주 구좌의 당근이 유명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당근이 맛이 있거나 없거나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로 세척당근은 맛이 없었다. 당근 특유의 화장품 같은 향이 많이 났다. 기름을 넉넉히 둘러 볶으면 달큼하면서도 고소한 향이 나야 하는데 그런 향이 없었다. 최근에 제주산 흙 당근을 사봤는데 흙이 매우 많아서 바로 옆 땅에서 뽑아서 파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흙을 씻어낼 때부터 당근 향이 났다. 확실히 다른 거구나. 지구 반대편의 식재료도 클릭 한 번으로 받아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역시 바로 옆에서 뽑은 것처럼 흙이 잔뜩 묻은 당근이 맛있는 거구나.
2. 여전히 내 취향을 찾아가는 중이다.
혼자 살면서 당근을 딱 두 번 샀다. 그렇게 즐기는 식재료가 아니며 두루두루 쓰이지도 않기 때문에. 지난번에 산 당근은 세척당근이었고 카레를 만들기 위해 샀다. 이번에 산 당근은 제주산 흙 당근이고 당근 라페를 만들기 위해 샀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내가 반응하는 방식은 ‘왜’와 ‘어떻게’인데, 왜는 ‘아니 이걸 왜?’로 발현되고 어떻게는 ‘아니 이걸 어떻게?’로 발현된다. 당근 라페 샌드위치 영상은 ‘아니 이걸 어떻게’였는데, 카페에서 파는 당근 라페 샌드위치가 먹음직스러워 보여서 먹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친구가 유튜브 알고리즘에 대해 ‘구글 민간인 도청설’을 말해준 적 있는데 사실 나의 모든 대화를 구글에서 도청하여 알고리즘 추천을 해준다는 거였다. 근데 이건 정말 어떻게? 말도 안 하고 그저 생각만 했을 뿐인데? 내 마음까지 도청하는가? 구글은 대체….
하여튼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사실 당근 라페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번에 당근을 사서 카레를 만들고도 남아 만들어 봤었다. 근데 별로였다. 익힌 당근은 잘 먹지난 생 당근은 싫어하는데 당근 라페는 생 당근에 양념을 하는 것이라 싫어하는 당근냄새가 났다. ‘이걸 샌드위치에 듬뿍 넣어 먹는다고? 우엑!’ 해놓고서 당근 라페 샌드위치를 보고 입맛을 다시다니. 그리고 생각한 것이 그땐 세척당근이었으니 흙 당근으로 하면 맛있지 않을까? 하는 실험정신이 발동한 것이다. 당근을 채칼로 밀고 소금으로 절인다. 물기를 짜내고 올리브유, 레몬즙, 홀 그레인 머스터드, 후추, 설탕을 넣고 버무린다. 그리고 식빵에 한가득 올려 카페에서 본 것과 같은 모양새의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당근은 달짝지근하고 싫어하는 냄새도 안 나고 상큼하고 아삭하고 괜찮은데… 딱히 엄청나게 맛있지는 않다. 또 해 먹고 싶을 정도의 맛은 아니다. 유튜브 영상을 보면 다들 너무 맛있다는데, 한가득 쟁여두고 먹던데. 나는 카레에 들어간 푹 익은 당근이나 기름을 넉넉히 먹여 볶은 당근은 좋아하지만 역시 생 당근은 아닌 것 같다.
30년을 내가 나로 살았는데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계속해서 취향을 찾아가는 중이다. 취향의 완성이라는 게 있을까 싶다. 죽을 때까지 계속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찾아가는 게 아닐까. 취향은 때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취향이란 것도 있다. 사람은 그런 취향들이 쌓이면서 무르익어가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혹은 싫어하는 것 좋지도 싫지도 않고 어중간한 것들을 찾아가는 여정이 즐겁다. 여전히 나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이, 알아가야 한다는 것이 좋다. 언젠가는 생 당근을 좋아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는 당근 라페를 대량생산해서 한가득 빵에 넣어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