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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시작되는 순간

월드컵 단상(22.12.19)

분명 이번 월드컵은 구설수가 많았다. 처음으로 겨울에 열리는 월드컵이라는 점만은 아니다. 사실 월드컵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계속해 증가하고 있다. 피파 수뇌부가 중계권료와 유치를 위한 로비에 절여져 있다는 것은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다. 게다가 카타르의 이주노동자가 마주해야 했던 열악한 노동 환경은 월드컵이 모두의 축제가 맞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물론 성소수자들에게는 의구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명백하게 이 축제에 함께하는 것을 거부당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나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팬조차 아니다. 월드컵 시작할 때부터 대한민국의 건투 같은 것은 조금도 관심 없었다. 벤투는 후방 빌드업이라는 것을 이식하였다는 점에서 칭찬받아야 마땅하지만, 대한민국 대표팀 전원은 아직 디테일한 부분에서 한참 미달하는 기량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대한민국이라는 팀에서 뭘 보고 좋아하고 응원하는지 의문일 지경이다. 내게 이번 월드컵의 유일한 관심사는 ‘신이 결국 메시에게 모든 것을 허락할 것이냐 아니냐’ 내지는, ‘축구의 역사가 순리대로 흐를 것인가 아니냐’의 물음 정도였다. 그리고 대회 시작 전까지 나는 어려울 거라고 봤다.

월드컵에 대한 내 모든 부정적인 인상에도 불구하고, 길티 플레져로서 이 대회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경기력 덕분이었다. 선수들이 만들어낸 월드컵이었다. 유럽 축구는 현재 반환점을 도는 시기이고 부상자가 많았다고는 하나, 전반적인 선수들의 체력은 괜찮은 편이었고, 그 덕에 양질의 경기들이 계속 등장하였다. 전술 측면에서도 현대 축구가 한 발짝 나아갔음을 실감케 했다. 후방 빌드업, 전방 압박, 공수에 따른 포메이션 변화까지 세계적인 수준의 모든 팀이 다양한 전술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였다. 4강에 오른 팀들은 방점이 서로 다른 곳에 찍혀 있었을 뿐 모두 훌륭한 팀들이었다. 물론 그들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프랑스의 파괴력은 압도적이었으며 모로코의 수비력은 지독했다. 크로아티아의 조직력은 4년이 지났어도 여전했다. 우승팀 아르헨티나가 가진 차이라면, 결국 리오넬 메시 그뿐이었다.


메시의 결승전 경기력은 아주 좋았다고는 말 못 하겠다. 물론 혼자 두 골을 넣고 나머지 한 골에 기점이 되어준 선수에게 이런 평은 어색하지만, 그 이름이 메시라면 얘기가 다르다. 오늘 메시는 확실히 몸이 무거워 보였으며 킥의 정확도도 높지 않았고, 드리블 실패도 제법 있었으며 무엇보다 턴오버가 많았다. 하지만 오늘 메시는 리커버리 또한 6회였다. 그는 그만큼 간절했다. 메시는 첫 경기 사우디전 패배 이후 모든 경기가 결승전 같았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전체 7경기에서 7개의 골과 3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다. 다음 세대를 지배할 음바페의 추격은 어떤 의미에서 역사적이었으나, 메시의 라스트 댄스는 완벽한 피날레로 끝이 났다.

믿을 수 없는 승부차기와 세리머니를 보여준 에밀리아노와 메시의 보디가드 역을 맡아 매 경기 믿기지 않는 활동량을 보인 데 파울. 천진난만할 정도로 수비라인을 뛰어다니는 알바레즈와 큰 경기에서 증명하는 디 마리아. 아르헨티나의 나머지 선수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증명했다. 축구의 역사가 쓰이는 순간의 주역이 되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라운드 밖에 있었던 또 한 명의 리오넬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리오넬 스칼로니는 한때 메시와 같이 대표팀에 있었던 적이 있을 정도로 젊은 감독이다. 기껏해야 사십 대 중반의 감독이 보여준 용병술은 그야말로 광기였다. 디 마리아를 숨겨두고 결승전 선발로 낙점한 것뿐만이 아니다. 크로아티아전 미드필더 운영, 네덜란드전 쓰리백 운영 역시 환상적이었다.

축구는 결국 그깟 공놀이가 맞다. 여전히 월드컵에 붙은 논란들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피파는 계속해서 선수들을 볼모로 보다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려 노력 중이다. 리오넬 메시와 아르헨티나의 우승이 카타르 월드컵의 어두운 면면들을 모두 가려주지 않으며, 여전히 잔디밭에 초청받지 못한 이들이 존재한다. 아르헨티나의 상황 역시 극도로 불안정하다. 이깟 공놀이 잘한다고 하여 현실의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인은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겐 축구가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바티 골로 유명한 아르헨티나 공격수 가브리엘 바티투스타는 국가부도 상황에 몰린 조국의 상황에 2002 월드컵에 나서며 위와 같이 말한 바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축구선수가 자신의 트로피 보관함에 트로피를 몇 개 추가했다는 사실 말고, 어떤 남자가 평생에 걸쳐 이루려 했던 것을 끝끝내 이뤄내는 장면을 목도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누군가의 꺾이지 않는 마음이 만들어낸 어떤 순간이, 수많은 사람들에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겐 그 이름이 축구일 뿐이고, 우리 각자에게는 또 다른 무엇이 되면 된다. 그것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 살아갈 용기가 되는 미담이 되고,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 전설이 된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본 것은 그 전설의 완성이 아닌 시작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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