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가는데, 노벨 정문 가에 학부생들이 득시글거린다. 간간히 대면 수업이 이뤄지던 작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거리마다 사람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러고 보면 내 대학원 생활의 첫 몇 학기를 팬데믹과 보낸 것이 아주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나는 고요한 안암을 사랑해 왔다. 그것이 학부생 시절 거리에 사람이 없을 때까지 피시방에 틀어박힌 변명이라면 궁색한가? 사랑이라는 변명이 언제나 궁색하누법이라고, 한 번 더 궁색해지련다.
노벨로 들어서니 저 멀리 신공학관 연구실은 불이 꺼질 줄 모르고, 나는 오늘 할 일과 내일 할 일을 정리해 보았다. 광장으로 들어서자마자 인파가 사라졌다. 어찌 보면 노벨 정문은 일종의 방파제인가 싶다. 축제철이나 고연전 기간에는 이 방파제 너머로 사람이 밀려들어 헛헛한 대학원생 마음에도 술생각을 뿌려대지만, 화요일 밤의 열기가 이 광장을 침범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이 굉장에는 누군가 노벨상을 탄다면 그 동상을 세워주기 위해 미완성을 남은 노벨 단상이 있다. 그래서 광장의 이름도 노벨 광장이다. 이공계생들의 웅대한 포부를 육성하기 위함이겠지만, 웃음이 날 것 같은 게 사실이다. 나는 여기 동상이 세워진다면,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가장 가능성 높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광장에는 추억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정 파편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첫 휴가 날 좋은 날에 낮술을 걸치기 전 앉아서 뭐라 뭐라 사소한 얘기를 했다. 한참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주말 오후에 선교하려던 기독교인과 토론을 했다. 휴가 나온 후배에게 안주 사줄 돈이 없어서 김밥천국에서 스페셜 정식을 사다가 술을 마셨다. 추억까지는 못 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감흥이 없어서 그렇다. 첫 휴가에 만난 친구는 곧 결혼을 하는데, 얼마 전에 거의 얼굴을 까먹었다는 걸 깨달았다. 기독교인과 했던 토론은 무신론에 대한 것인데, 나는 이제 기독교인만큼이나 전투적 무신론자에게도 짜증이 난다. 이제는 그 녀석도 알아서 돈 잘 벌고, 군대 간 다른 후배 면회 가서 초밥 세트 먹일 정도로는 벌고 있다.
근데, 당시에는 아니었겠지. 고마웠겠고, 화가 났겠고, 미안했겠지. 그리고 저 노벨 바로 바깥에서 넘실대는 친구들도 오늘 밤에 고맙고 화가 나고 미안하겠지. 그리고 그중 몇몇은 10년쯤 지나서 나처럼 터벅거리며, 별 감흥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노벨 광장 귀퉁이에서 전자 담배를 입에 물겠지. 전역과 우울증, 돈 벌 궁리를 배회하던 마음인데 이제는 그런 단어들이 막연하게만 다가온다. 단골 북까페 사장님의 건강, 오늘 먹은 바클라바의 칼로리, 엔화 환전 수수료 같은 것들로 밤이 깊어간다. 나이를 먹으며 고민거리가 구체화되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