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의 아쉬움이나 회수되지 못한 복선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들 신나게 할 것이므로, 나는 이 드라마를 최대한 변호하려 한다.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카지노를 통해 자신의 제국을 세우려는 차무식이라는 사람의 일대기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구도는 보다 넓게 해석해 볼 수 도 있을 것 같다. 드라마의 제목은 카지노이지만, 보다 흥미로운 것은 카지노를 통해 얻어들인 돈과 권력이 활용되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를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지 못해 사적폭력이 횡행하는 필리핀이라는 공간에서 질서를 가져오려는 자들의 대결로 보았다. 차무식은 필리핀에서 돈과 사적 폭력을 통해 자신의 질서를 건설한다. 극 중 반복되는 “여기 필리핀이야.”라는 그의 대사는 그의 영향력을 과시할 뿐만 아니라 그가 세운 질서를 은연중에 상기시킨다. 차무식의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는 오승훈 경감이다. 한국 경찰이지만 필리핀에 코리안 데스크로 파견 나와 있는 그는 법치와 정의라는 보편적 질서로 차무식에 맞선다. 이들은 대립하고 있으나, 사실 서로 매우 비슷한 유형의 인물들이다. 특히 강박이라는 단어를 공유하고 있다.
차무식의 성공스토리는 그의 강박에서 온다. 그의 강박은 결국 돈과 복수이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부분은 복수다. 그는 그에게 원한을 샀다면 되돌려주려 한다. 동시에 그에게 신용을 샀다면 그 역시 되돌려주려 한다. 복수자, 집행자, 구원자 무엇이라 해도 좋다. 그는 필리핀에서 국가를 대신하는 지상의 신으로 군림한다. 그렇기에 진짜 국가를 대신하여 파견 나온 오승훈이 차무식과 대립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그리고 그 역시 차무식 못지않은 강박을 차무식과 필리핀에 투사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차무식의 몰락 또한 일정 부분 강박에서 온다는 것이다. 그는 필립과 소정을 자신이 죽였다는 증거품을 진작 없앨 수 있었음에도 끝내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권력이 다니엘에게 기인한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자신을 믿어주었던 민회장의 신용에 답하기 위해 다니엘을 거스른다. 차무식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은 언제나 그의 강박에 있다.
동시에 그의 몰락을 가속한 것은 강박과 동시에 노화다. 성장하는 악역이었던 차무식이었으나 어느 순간 노화가 그의 성장을 앞지르기 시작한다. 그는 후계 교육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은퇴를 생각할 만큼 늙어버렸다. 노화로 인해 약해진 마음은 자꾸만 그의 베팅을 어긋나게 만든다. 차무식은 진작 정팔을 내쳤어야 했음에도, 그의 여린 마음이 끝내 정팔을 믿었고 극에서 퇴장한다. 허무하지만 동시에 대단히 도박스러운 죽음이다. 다시 드라마의 제목으로 돌아오면 카지노는 차무식의 수입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차무식은 계속된 베팅 끝에 바카라의 순리대로 플레이어가 패배하였다. 그렇다면 딜러는 누구인가? 카지노는 누구인가? 각 인물 중 어느 누구도 승자나 패자가 되지 못했다. 차무식의 대결 상대는 다름 아닌 삶 그 자체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강박으로 삶에 맞서다 스러지는 악역이다.
그렇다면 차무식이 영원히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했을까? 강박을 포기했다면 그는 아예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조직이었다. 깡패들 한 데 모아 딜러를 시키는 허술한 조직이 아닌, 체계와 후계 구도가 명확한 조직 및 그에 따르는 점진적인 승계 작업이 필요했다. 한국에 송환되었다가 풀려난 돌아온 차무식이 딜러들에게 용돈을 쥐어주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초보 딜러들이라면 몰라도 상구나 정팔이는 스스로 사업을 키워나갈 수 있는 정도의 권한을 주고 후계로서의 가능성을 시험해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정팔에 비해 확실히 뛰어난 역량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태석과의 관계 역시 조정이 이뤄졌다면 차무식은 끝끝내 승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차무식의 질서는 조직을 통해 필리핀을 장악하지 못했고, 차무식 개인에게 너무 많은 것이 달려 있었다. 유한한 인간이 끝끝내 승리하는 길은 결국 의지를 넘겨받은 타인에 의해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상의 신을 꿈 꿨지만 유한성에 갇혀 버린 인간, 강박을 통해 일어섰지만 강박을 통해 스러진 인간, 인간 차무식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