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단상
안타깝지만 고죠 사토루는 죽어야만 했다. 모든 소년들의 성장 서사가 그렇다. 지라이야가 죽었기에 나루토는 선인모드를 익혔고, 루피는 흰수염과 에이스의 죽음 뒤에 패기를 다루게 된다. 시라즈카 선생님의 전근과 함께 하치만은 성장하고, 렌고쿠의 죽음 이후에 탄지로는 해의 호흡을 다룬다. 스승과 제자, 멘토와 멘티 사이에서 전승되는 의지, 가르침, 뜻 뭐 그런 것들의 각각의 작품의 주제의식을 대변하며 소년 만화의 주요한 동력원이 된다. 그러니 사실 고죠 사토루는 죽어야만 한다. 비록 지금까지 주술회전이라는 만화 자체가 고죠 사토루를 중심에 두고 흘러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이타도리든 유타든 간에 주인공 세대의 각성을 위해 고죠는 죽어야만 한다.
다만 다른 만화의 멘토들과 고죠 사토루는 좀 많이 다르다. 사실 기본적으로 주술회전에서 고죠 사토루는 조연 정도가 아니다. 퇴장 직전까지 대부분의 이야기를 이끌어오는 주연이다. 고죠의 각성 - 봉인 - 구출 - 죽음까지 모든 서사의 배경에는 고죠가 있다. 그러니 주인공 세대의 존재감은 희미해지고, 고죠의 다소 허무한 퇴장은 서사 전반의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이러한 고죠의 모습은 작가의 연출 실패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다만 내게 흥미로운 것은 미성숙한 멘토라는 그의 설정 자체이다. 그는 현대 최강의 주술사임에도 아직 미성숙한 주술고전 학생들의 교사를 자처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학생들을 대단히 사랑하는 교사인 것도 아니다. 그는 강한 만큼 고독했고, 그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주술을 사용하는 변태적인 인간이다. 결국 그는 결함 가득한 인간으로, 평생 동안 돌아오지 않을 자신의 청춘을 그리워하다 죽는다.
나는 고죠에게서 어른이 없는 세대의 어른을 본다. 변변한 멘토 없이 어느새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곳에 올라버린 고죠에게는 ‘상층부’라 불리는 구세대도 주술고전의 선생님들도 멘토가 되어주지 못한다. 그런 그는 선악에 대한 가치판단조차 홀로 수행하지 못한다. 그에겐 유일한 친우인 게토만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고죠가 토우지와의 싸움에서 각성하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선언하자, 게토마저 그를 떠났다. 그의 삶에 남겨진 것은 지루한 주령 퇴치뿐, 강자의 고독함 이전에 그냥 단순한 외로움이 항상 그의 곁을 머물렀다. 생물로서의 격이 다르다던 주변인물들의 헌사는 그의 죽음 끝에 재해석되며, 그의 처절할 정도로 외로운 죽음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고죠의 죽음은 그 자체로 이미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 일행의 각성을 위한 수단이 아닌, 고죠 사가 자체로는 충분히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쨌거나 고죠 뒤에 남겨진 이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죠보다 한참 약한 그들은 어떻게 스쿠나와 맞설 것인가? 주술회전의 주인공들은 모두 하나같이 어딘가 미쳐 있으며, 현재 연재되고 있는 신주쿠 결전은 각각의 캐릭터들이 악역 스쿠나를 만나 치료받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윗세대의 주술사들이 하나하나 퇴장하는 가운데, 새로운 세대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아마도 이 질문은 주술회전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한 갈림길이 될 것이며, 그간의 연출 실패를 돌이켜보건대 아무래도 주술회전은 이에 대해 독자들이 납득할만한 답변을 제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고죠의 삶이 던진 화두는 남는다. 어른이 없는 세대에 어른이 되어버린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처절한 외로움 속에 죽어갈 것인가? 어떤 삶의 길을 찾아낼 것인가? 당신의 영역은 무엇인가? 주술회전이 클리셰 비틀기 속에 우연히 마주한 이 질문에 나는 아직 답을 하지 못하겠다. 그러니 일단 고죠 사토루는 죽어야만 했다고, 그렇게 믿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