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근황(24.04.05)

한의원에 가기


월요일에 데드리프트를 하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무게를 내리며 세트를 마무리하던 중에 손에서 바벨이 미끄러진 탓에 허리를 쓰고 말았다. 화요일에는 자문 결과 발표가 있었는데, 끝나고 술을 몇 잔 먹었더니 허리가 더 쑤셨다. 그날 날이 좋다는 이유로 술을 몇 잔 더 마셨고, 수요일 아침에는 거의 비명과 탄식을 지르며 침대에서 뒹굴었다. 샤워를 하려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섰더니 허리와 배 쪽 근육이 뒤틀려 있었다. 중학교 때 계단에서 뛰어내리다가 발목을 삔 이후로 처음 정형외과에 갔다. X선 촬영으로 본 척추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진통제를 받고 물리치료를 했는데도 도무지 통증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오후에는 한전에서 요청한 공문을 좀 수정하고 조퇴를 했다.


의자에 조금만 오래 앉아 있어도 허리가 쑤셨다. 조퇴하는 길에 준수 사장님께 전화해서 침 맞는 병원이 어디냐고 여쭈었다. 대흥역에 있는 무슨 한의원을 소개받았는데, 사장님 이름을 대면 잘해줄 거라고 했다. 살 빼는 약 같은 것도 하시나, 그런 생각을 좀 해봤다. 기본적으로 나는 한의학에 대한 막연한 의구심이 있다. 과학적인 것이라면 진작에 양의학과 결합되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뭐 그런 의구심이다. 또 한편으로는 어려서 녹용을 먹고 살이 급격하게 찐 탓에 자리 잡은 개인적인 원한이다. 다만 침구학은 그럭저럭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근육에 미세한 손상을 일으켜서 회복을 돕는 뭐 그런 것 아니겠는가 싶었다.


대흥역까지 찾아가서 한의원에 갔다. 생활한복을 입고 있는 원장님이 증상을 묻고는 침을 놓아주셨다. 엄지발가락에서 피를 빼더니, 새끼발가락에 두 대를 놓고 손가락에 또 한 대를 놓았다. 그리고는 무릎 뒤쪽에 한 대를 놓았다. 나는 당연히 누워서 허리에 침을 맞을 줄 알았다.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생각보다 침이 아파서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주변에는 자주 침을 맞으시는 것으로 보이는 할머니들이 많았는데, 나와 비슷한 부위를 맞으신 분은 옆에서 침을 맞은 채로 졸고 계셨다. 나는 대마가 잡힌 관우처럼 울부짖고 싶었으나, 나라 망치는 젊은 세대들이 나약하기까지 하다는 소리를 들을세라 참아보기로 했다. 침을 맞고 일어서는데 여전히 오래 앉아있던 탓에 거동이 힘들었다. 어찌 보면 맞기 전보다 더 어기적거리면서 한의원을 나섰다.


조금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흥역 주변을 산책하는데 방앗간이니 생선가게니 하는 골목에서 벚꽃 숲길이 아름다웠다. 지난 몇 해의 봄은 좀 어지러웠던 것도 같은데, 이번 봄은 좀 쉬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별일 없는 계절이 참 오랜만이다. 하나 둘 떨어지는 벚꽃 잎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허리의 통증이 조금은 사라지는 듯했다. 어쩌면 한의사의 신묘한 침술이 내 단전을 열어제껴 대우주의 온화한 기운을 소우주에서 재구축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혹시나 싶어서 손에 기를 모아보았으나 담뱃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삼매진화가 아닌 지포라이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구실로 돌아오자 다시 허리는 쑤시기 시작했고, 집에 돌아온 지금도 옆으로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일단 내일 한 번 더 침을 맞으러 가야겠다. 그리고 벚꽃을 다시 봐야겠다. 짧은 봄에 뭐라도 예쁜 것들을 주워 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근황(24.03.2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