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24)
학회기간이지만 내일 수업 조교하는 후배가 먼저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전날 과음으로 오늘 오전 일정을 거의 쉬다시피 하기도 했고, 차도 하이브리드라서 내가 데려다주고 오겠다고 했다. 숙소는 불국사 근처인데, 역까지는 이십 킬로도 넘게 가야 했다. 기차시간 한 시간 전에 출발했다. <해피투게더> ost를 틀어두고 운전을 했다. 기차시간 삼십분을 남기고 도착했다. 돌아갈 때는 무슨 음악을 들을까 고민하다가 저스틴 허위츠의 <바빌론> ost를 골랐다. 경주역을 나서며 벌써부터 쿵짝대는 음악에 살짝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윽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갈래길이 나왔다. 차선 변경을 할 수 없어서 그대로 차를 몰았다. 도로 바닥에는 “부산/울산” 글자가 떡하니 적혀있었다.
당황하여 네비게이션을 보니 네비게이션도 ‘이 똥멍청이 새끼가 이 길로 왔을리 없어’ 하는 표정으로 현실부정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조금 더 달리자 정신 차린 네비게이션이 십칠 킬로미터를 직진하라고 했다. 이번에는 내가 현실부정을 하기 시작했는데, 한 번 선택으로 대체 얼마를 더 달려야 하나 막막했다. 표지판은 기세등등하게 “부산 102km 울산 35km”를 가리키고 있었다. 밤운전도 서툰 나는 세상 막막한 심정으로 직진을 했다. 신나게 쿵쾅거리던 저스틴 허위츠는 금새 구슬픈 음악을 들려주었다.
터널이 여러개 나왔는데 그 중 하나의 이름이 명계터널이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자연스럽게, ‘명계터널이 닉값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많은데, 내일 모레 <수유천> 나온 장어집에서 장어도 먹고 일요일에는 별빛영화제 가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도 봐야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차가 흔들리는 기분이 들어 속력을 보니 100키로가 넘었다. 터널의 닉값보다 운전 중 딴 생각이 더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굳게 먹었다.
다행히 17km 직진 이후 턴해서 돌아가야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원래 경주시내를 지나 서쪽에서 당도했어야 할 나의 아반떼는 경주를 휘이 돌아 동쪽에서 불국사를 향해 달렸다. 조금 돌아가면 어떤가. 75살 먹은 조용필 아저씨도 신곡으로 ‘그래도 돼’ 이야기하는데, 생이 좀 막막하면 어떤가.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으니 찬 가을 바람 사이로 소똥 냄새가 들어왔다. 전에 경주에서 운전할 때도 이 냄새를 맡아본 적 있는 것 같아서, 잠깐 옛날 생각을 했다. 갑자기 서글퍼졌다. 호텔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핸드폰을 보니 친구 하나가 연락해서는 요즘은 병원 안 다니냐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물론 영영 행복해질 계책 같은 것은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생이 막막하지 않은 적도 거의 없었다. 초행길에서는 저스틴 허위츠 음악을 듣지 않기, 그런 식으로 좀 덜 막막한 교훈이 쌓여간다. 도착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태우는 담배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