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요즘 제법 달리기에 재미를 붙였다. 가능하다면 일주일에 3번 정도 뛰려고 노력한다. 주말 중 하루는 10km를 뛰지만 나머지 평일에는 못해도 5km는 뛰려고 한다. 뛰는 내내 보통은 힙합 음악을 듣는다. 버벌진트나 이센스, 빈지노를 주로 듣는다. 요즘은 켄드릭 라마도 자주 듣는다. 처음 몇 주는 팟캐스트를 듣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음악 정도만 듣는다. 최근 며칠은 켄드릭 라마의 GNX를 들었다. 성북천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에서 앨범의 첫 트랙을 재생하면, 용두희망어린이집(이 지점을 지나면 뛸까말까 주저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부근에서 다음 트랙으로 넘어간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마치고 나이키 어플로 운동을 시작하면 대개 luther와 함께 러닝을 시작할 수 있다. luther는 이번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트랙인지라 이러한 루틴이 제법 흡족스럽다.
나는 청계천으로부터 1키로쯤 떨어진 성북천 지류에서 달리기를 시작한다. 상류를 향해 뛰기 시작해 한성대 입구까지 2.5km를 뛰고 원점으로 돌아오거나, 원점으로 돌아온 뒤 청계천으로 나아가 조금 더 뛰는 식으로 목표량을 달성한다. 한때는 이 공간의 계급적 분화에 대해 생각했다. 신축 아파트와 낡은 빌라들, 아기자기한 까페와 수더분한 포차들을 바라보면 도시공간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그럴듯한 말을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쉽사리 정리되지 않는 것들을 구태여 엮어보려는 것은 언제나 무기력하다. 그보다는 내 호흡 상태나 착지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운다. 다리와 폐에 걸리는 부하에 대해 생각하고 얼마나 더 뛸 수 있을지를 가늠한다. 트랙이 끝나는 한성대입구 반환점에서 나는 10초 정도 걸으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나는 하류를 향해 달릴 때 지나치게 빨리 달리는 경향이 있어 템포를 조절하기 위함이다. 하류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면 헤드폰에선 tv off가 나온다. 켄드릭의 고함과 함께 나는 팔을 흔들어 가며 더 빠르게 달린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 나는 보다 저차원, 정확하게는 0차원 내지는 1차원의 존재가 되는 기분이다. 달리기를 하는 순간 나는 대개 점으로 존재하고 아주 가끔 선으로서의 스스로를 인식한다. 위치는 있되 크기가 없으며, 길이는 있되 면적이 없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나와 바로 그 다음 순간의 나만이 점멸한다. 뛰어온 길과 뛰어갈 길을 생각할 때 때로는 이 선 위에서 스스로를 인식하나, 이내 다시 점이 되어 점멸을 반복한다. 무엇인가 생각하고 쓰고 계산하고 코딩하는 모든 일들로부터 분리된다. 나의 존재라는 것은 주의를 기울여야 간신히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축소되어 있고, 축소된 자아 속에서 애정이나 증오, 비관이나 낙관같은 상반된 감정들마저 같이 뒤섞인다. 문득 떠오르는 즐거운 생각에 히죽이거나 문득 떠오르는 좋지 않은 생각들을 떨쳐버리려 간신히 고개를 흔든다.
달리기가 끝나면 나는 가장 먼저 물을 찾는다. 대개 용두희망어린이집 맞은편에 있는 편의점에서 하늘보리를 산다. 너무 급하게 마시지 않으려고 입에 잠시 물을 머금은 채로 걷는다. 코로 호흡이 강제되어 보다 빠르게 호흡이 안정된다. 물을 꿀꺽 삼키고 나서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고 망설임과 갈멍을 뒤섞어 한숨을 쉰다. 집 앞 골목길에서 담배를 한 대 깊게 빨아올린다. 니코틴이 몸의 구석구석 퍼져나가며 육체를 수복하는 기분을 맛본다. 엉겨붙어 있던 감정들도 서로 나뉘어진다. 담배연기를 뱉으며 그 중 못난 놈들은 조금이나마 밖으로 내보내려 노력한다. 달리기를 마치고 씻다 보면 여전히 틀어져 있는 골반이 신경쓰인다. 이래저래 돼지보다는 곰에 가까워진 몸에 딱히 불만은 없지만, 마른 몸의 삶이란 이번 생에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한다. 마사지볼을 가져와 발바닥을 지압하고 눕는다. 이 방에서 남은 1년 정도의 생활을 생각한다. 다음 집 근처에도 달리기 코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