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올해도 얼추 저물어 갑니다. 이제와 생각하건대, 삶이란 건 생각보다 단순해서 우리는 그 대차대조표를 그리는 시점을 결정할 뿐입니다. 당장 이 글을 볼 수 앴는 여러분은 대체로 제가 믿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제 동지이거나, 정치적 입장은 상이하더라도 삶의 궤적을 같이 한 탓에 저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여러분 삶이 딱히 방해받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 어떤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한 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제 삶의 어느 지점에서 굉장히 반짝이는 사람들이었고, 그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삶을 논할 수 없는 일들이 사람 사이엔 벌어지기도 하고, 그걸 구태여 붙들어 잡고 싶진 않습니다. 그 와중에 어처구니 없는 썰에 놓이기도 하겠지만 신경쓰지 않겠습니다. 왜냐? 어른의 삶이란 해명하기 보다는 증명하는 것일테니까요. 저는 대체로 모든 순간이 무채색보다는 빛깔을 찾아가길 바래왔고, 그래서 매 순간에 진심을 다하며 살아왔습니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친구에게 감성이니 어쩌니 부끄러운 핀잔을 들을지언정 진심이 닿는 사람에게 사살당해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덕뷴에 올해의 끝은 제법 평온합니다. 나는 좋은 술을 마시고 좋은 영화를 보면서 좋은 이야기를 하며 겨울을 지샙니다. 쓰잘데 없는 인간들을 싹 쓸어내니 오히려 마음자리가 더욱 굳셉니다. 지금의 나는 북악산에 대고 부동심을, 동해에 대고 포용심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한동안 입력값에 집중했더니 이제야 조금 충만한 기분이 들고 있습니다. 석박사통합과정이란 말에서 가장 소중한 게 과정이란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요. 제가 여태껏 쓴, 혹은 앞으로 남은 시간 쓸 논문 어떤 것보다 그 과정이 더 소중하다는 걸 요즘 깨닫습니다.
내 삶의 의미는 서사에 있습니다. 나는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좋은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좋은 이야기에 대한 신념이 무너질 수도 있는 사람들 속에서 계속해서 좋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한때의 동지들은 간데 없습니다. 동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마저 그때 별 생각없었다고 얘기합니다. 그래도 이 깃발엔 우리의 낡은 슬로건이 삐뚤빼뚤 적혀있고, 그래서 일단은 내가 깃돌이를 해야겠습니다. 이 깃발을 볼 수 있는 모두를 난 사랑하고, 내년 나올 제 졸업 논문을 나누어 줘야겠습니다. 그것은 가장 값진 냄비 받침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어여쁘고 날카로운 감각들보다는 투박하고 머뭇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적은 문장이 어찌 가난하고 어찌 주저하겠습니까. 가슴안에 사랑만. 가슴안에 사랑만. 아무리 어디서 음험한 말이 쏟아져도 여전히 가슴안에 사랑만. 이렇게 서른 살의 첫 해가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한 해였습니다. 이 마지막 문장에 제가 드릴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