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04)
아무튼 기록은 해둬야겠다. 당원 독서 모임 뒷풀이에서 처음 뉴스를 들었을 땐, 그냥 황당하고 웃겼다. 정말 순수하게 웃겼다. 나는 서둘러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 나오라고 했다. “진짜 역사적인 날이야, 술 먹어야 해.” 당원 독서 모임 처음 끌려나와 같이 책을 읽던 현이를 붙잡고 술을 마셨다. 하필 독서 모임은 ‘소년이 온다’를 시작한 참이었다. 시험 공부 하느라 연락 끊겼던 준우가 전화를 해왔고, 승찬 당원은 여의도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동현은 가족들 걱정에 집에 있어야 한다고 분노했다. 술마시던 현이에게 혹시 뭔 일 생기면 내 음악 시디는 너 가지고 플스랑 게임 시디는 웅렬이 주라고 농을 했다. 가진 것 중에 가장 두꺼운, 하지만 5.56mm 보통탄 앞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옷을 입고 택시를 탔다.
국회로 향하는데 상황이 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헬기가 날아다니고 있었고, 1공수가 국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소식마저 들었다. 먼저 가 있는 사람들 생각을 했더니 마음이 급해졌다. 국회 정문에 도착했을 즈음,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를 가결했다. 친구들과 당원들을 차례로 만나서 황당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도 거리에 있었지만 그때에 비하면 다소 힘빠지는 상황이었다. 대치하고 있는 경찰 병력들도 큰 열의가 없어보였고, 모인 사람들 역시 일단 나왔는데 뭘 해야 하나 싶어서 담배만 태웠다.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될 예정인 민수가 와서 인사를 하고 갔다.
오랜만에 만난 준우가 슈미트에 대한 얘기를 해줬는데 사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급하게 조직된 것으로 보이는 집회에서는 한 사람씩 발언을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그것도 웅웅거릴 뿐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란죄가 성립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세한 상황을 몰랐던 나는 윤석열씨가 뭔가 적당한 핑계를 둘러대고 빠져나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국회로 출근했던 소희가 상황 종료되었다며 담배를 달라고 했다. 옆 쪽 문으로 빠져나와 여전히 황당해하는 그에게 담배를 건넸다.
기자는 기사를 쓰러 퇴근 아닌 퇴근을 했고, 나와 준우는 좀 걸으며 음료를 사마시고 이야기를 하다 택시를 잡고 집에 돌아갔다. 두 달만 이따 보자고 힘내라고 얘기해줬다. 이런 날에 법조인이 되려 공부를 해야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다. 또 이런 시대에 정치부 기자를 해야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다. 꿈결같은 밤이 지나고 세시간 남짓 잠들었다가 기사들을 찬찬히 다시 읽었다. 특전사들이 창문을 깨고 국회로 진입하려 했다는 것을 들었다. 순간 섬뜩해졌다. 멀쩡한 얼굴들을 볼 수 있었던 게 눈물나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런 시대에 엔지니어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