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05)
지난주부터 해서 무척 바쁜 주중을 보내고 있고 어제는 새벽에 국회에 다녀와서 잠도 별로 못자고 출근해서 열시 넘어 퇴근했다. 퇴근 직후 기절하듯 잠들었는데 그 사이 올라온 기사들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오늘 오후에 탄핵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당연히 탄핵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여기에 반대하는 것 자체가 제발 순장해달라고 손드는 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국민의힘 의원 총회는 단체로 순장을 각오한 것으로 보이고, 나는 아직까지도 상식선이라는 말랑한 단어를 붙잡고 있었다는 게 부끄럽다.
나는 지난 몇년간 양대 보수정당에 의해 타락한 투쟁이란 단어에 신물이 났으나, 이 새벽에는 투쟁이라는 단어 외에는 다른 말을 선택할 능력이 없다. 촛불 같은 소리할 게 아니라 휘발유와 가스통을 들쳐메야 한다. 국민의힘 당사를 점거하고 추경호를 비롯한 친윤계 의원들의 거처를 타격하여 이 반란군들을 광장에서 처형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일단 가능한 한 최대한 거리로 나갈 생각이다. 이 사태가 지속된다는 것 자체가 공화국의 수치다. 제6공화국의 종언을 항상 바라왔지만, 이런 더러운 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불안 속에서 밤을 새우고 싶지 않다. 당장 내가 안암동을 서성이며 담배를 태우는 이 순간에도, 1934년 나치와 히틀러가 장검의 밤을 일으켰듯 주요 인사들이 체포되어 살해되고 있을지 어찌 아는가? 군경 개개인의 양심적인 해태가 유일하게 기대야 할 안전망인가? 군이 좀 더 따라줬으면 성공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저들의 패악질은 단순 일회성 국회에 대한 침탈과 그 방임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화국 인민 전체와 우리의 역사를 부정했다. 지금껏 이 체제를 위해 죽어간 이들을 모욕하고 조롱했으며, 광기 어린 퇴행으로 국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오늘 학교에 대자보가 나붙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안녕들하십니까’로 시작되었던 나의 스무살 언저리를 생각했다. 상황은 보다 비참해졌다. 그 시절의 안녕들하시냐는 물음은 목소리 없는 세대라 여겨지는 우리 세대에 대한 자조적인 물음일 수 있었으나, 지난 밤을 계기로 ‘안녕’이라는 단어는 무사안일을 의미하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국회 앞에서 만난 이들의 황당함과 반가움이 섞인 표정들이 생생하고, 그 표정들을 잃어버릴까 대단히 겁이 난다.
“재갈을 물린다 해서 입을 다물지 않으며, 족쇄를 채운다 해서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곤봉으로 때린다고 해서 가만히 맞지 않는다.”는 금속노조 성명 몇 문장에 하염없이 운다. 탄핵안 의결은 가장 기본적인 조처일 뿐이다. 더 이상 저 미치광이가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냅둬선 안 된다. 박근혜 퇴진을 위해 거리에 모였을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삶이 나아질 수 있는 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소회를 나눴다. 이제는 당시의 그 소회조차 우습게 보일 정도로 삶 자체를 지켜내는 것이 간절하다.
나의 서른 살은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전보다 때묻고 소심해진 마음에 찬 바람이 분다. 긴 겨울이 될 것 같다. 다소 비장하게도,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흔들어대는 저들을 적대하며, 곁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저 비열함과 퍽퍽함에 맞서 나갈 연합군이다. 우리는 서로의 전우이고, 우리는 서로의 용기이며, 우리는 서로가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는 삶의 보증수표가 되어야 한다. 서로의 맑은 얼굴이 계속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믿고 싶다. 모두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