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 가결되던 날

(24.12.15)

by 취생몽사

진부한 표현이지만, 십년같은 열흘이었다. 토요일 아침 두통이 너무 심해서 산행에 못 갈 것 같다고 산행 모임 선배님에게 연락드렸다. 지난밤에 추운 곳에서 술을 마셔댄 탓이다. 그 상태로 쉴 수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업무 연락을 받고 컴퓨터를 켜서 일을 했다. 집회에 가기로 한 지라 마음이 급한데도 지난 열흘과 마찬가지로 일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직무 정지를 당해야 하는 것은 대통령인데, 왜 내가 직무 정지 상태에 빠져있는가 그런 생각을 했다.


열두시가 다 되어서야 일을 끝내고 여의도로 갔다. 민주노총 아저씨들과 내 또래의 여성 동지들이 흡연구역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나도 언제 또 태우게 될 지 모른다 생각해서 같이 담배를 태웠다. 전공의 부스에 가서 아직 처단되지 않은 민수를 만나 바세린과 핫팩을 받았다. 노동당 깃발 아래에 있던 동현과 합류해서 본무대 앞으로 향했다. 꽃다지 공연을 보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탄핵안 상정까지 1시간쯤 남은 상황이었다. 동현이 거듭 경찰 쪽을 바라보며 여차하면 넘을 수 있는지 없는지 따지기 시작했다. 광장은 그보다는 차분히 표결을 지켜보았다.


당연하지만 쉽지 않았던 가결이 선포되고,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퍼졌다. 나는 여전히 다른 민중가요들이 더 좋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국가로 불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제처럼 살을 에는 밤 고통 받는 밤에는 동지가만한 곡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제 다시 만난 세계를 끝내 다 부르지 못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다. 나는 하도 울먹거리는 통에 이 곡의 마지막 파트인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를 입으로 따라 부를 자신이 없다. 울지 않게 도와달라는 가사 앞에 어제도 몇 번 울먹거렸다.


집회는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했고 나는 5시간만에 다시 담배를 태울 수 있었다. 광장에는 야당 의원들이 차례로 인사를 했다. 조국을 연호하는 사람들과 이재명을 연호하는 사람들 속에서 문득 마음이 차가워졌다. 국회를 향해 터져나오던 광장의 힘이 이번에는 나를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 길로 바로 여의도를 빠져나와 마포대교를 건넜다. 사람이 몰려 1키로 남짓한 다리 위에서 40분을 보냈다. 이래저래 마냥 신이 나지는 않았지만 여러 친구들과 모여서 술을 먹었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사람이 필요한가? 100만? 200만? 내 경우엔 셋 넷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만난 세계의 마지막 파트를 다시 떠올렸다.


이상한 꿈을 꿨다. 나는 5분대기조 수색조장이었다. 한 번도 가본적 없는 2탄약창에 트럭을 타고 진입했다. 친구들을 태우고 울퉁붕퉁한 길을 빠져나왔다.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아 계엄 detox를 할 겸 성북천을 뛰었다. 파란 하늘 보기가 제법 즐겁다. 속도도 제법 붙어서 이제는 뛴다는 게 무엇인지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코로 숨을 쉬려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다. 간밤의 열기가 마저 빠져나갔다. 즐거운 얼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순두부처럼 몽글거렸다. 또 어떤 것들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