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근황(24.01.07)

by 취생몽사


한참을 울었다. 나는 그 도시에 가본 적이 있다. 배가 가라앉기 두 달 전의 일이다. 세미와 하은,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휘젓고 다녔을 고잔동과 중앙동에서 입대를 앞두고 술을 마셨다. 아침까지 술을 마시다가 조조 영화로 겨울왕국을 보러 갔다. 겨울 아침 텅 빈 길거리는 추웠다. 내가 그 도시를 다시 찾은 건 3년이 지나서였다. 나는 202번 버스가 지나는 저 길을 안다. 화랑공원이 어디인지도 알고, 저 학교가 어디인지 그 교실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봤다. 3주기 행사라며 정치인들이 와서 한 마디씩 거들었다. 대선을 앞둔 시점이었고, 누군가에겐 야유가 누군가에겐 환호가 쏟아졌다. 나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환호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그 이후로 그 도시를 다시 찾지 않았다. 사는 게 정신없었다. 비루한 삶은 기억력도 나쁘고 씀씀이도 헤픈 탓에, 누구에게 어떤 삶을 빚지고 사는지 자주 까먹었다. 이 나라는 비극이 비극으로 잊혀지는 일이 흔했다.


영화를 처음 보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행간의 비극이 고개를 내밀 때마다 이 천진한 아이들이 어떻게 이 이야기를 맺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내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애도에 필요한 것은 경직된 몸짓이나 너절한 추도글이 아닌, 진심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만 몰랐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은 총천연색 악다구니로 가득하지만 이 모두를 헤쳐나와 서로에게 닿는 것은 진심뿐이라는 것을, 그 공허하디 공허한 진심이란 건 때론 이토록 사무친다는 것을. 나는 문득 박노해 시가 걸려있던 단원고 교실로 돌아간 것 같았다. 책걸상을 손으로 쓸어보고 그 차가움에 몸서리쳤다. 빈 자리가 너무 많아서 다시 한 번 마음이 무너졌다.


이 나라는 비극이 비극으로 잊혀지는 일이 흔했다. 또 비극이 발생할 때마다 온갖 참담한 언어가 같이 끌려나왔다. 나는 비극만큼이나 이 참담한 나날들에 화가 났다. 세상에 대한 애정이 끝내 무너졌고, 무엇인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부숴지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무안에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나던 며칠 전 지독한 염세와 냉소가 몸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또 이 참담한 나날을 살아내야 한다는 게 환멸이 났다. “아흐흑”으로 시작하는 신문기사를 읽다가 화가 나서 던져버렸다. 그래서 오늘 이 영화를 마주하고는 하염없이 울었다. 진혼제나 다름없는 화면들 속에서 간만에 소리 내어 울었다.


언젠가 읽었던 기사에서 “공감은 치유의 버팀목이다.”라는 문장을 기억한다. 두 참사의 생존자들이 만나 살아감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사였다. 하지만 저 문장은 곱씹을수록 아픈 말이다. 일단 거대한 비극의 공감이라는 것은 새로운 비극을 전제하고 있고, 동시에 공감만으로는 온전한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뀌지만 왜 인간사는 그대로인가? 더욱 지독해진 총천연색 악다구니 속에서 우리는 흑백의 미소를 어떻게 되찾아야 하는가? 공감이 치유의 버팀목이라면 치유의 마중물은 연대로부터 차오른다고 믿는다. 살아남은 우리는 정체성을 가로질러 서로의 존재에 대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비록 떨어져 있는 너와 나지만 유예된 사랑과 꿈과 삶의 장엄함을 언제고 기억하겠다는 책임감이 절실하다. 그래야 우리는 치유를 이야기할 수 있다. 삶은 나아지는 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이야기에 대한 믿음은 지켜져야 한다. 이 어려운 계절에 이 영화를 봤다. 제목이 <너와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