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25.06.30)

<오징어게임>을 위한 변명

by 취생몽사


내가 보기에 <오징어게임 2,3>는 민주당 운동권 감성을 충실히 재현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전형적이라고는 못하겠다. 전형적인 민주당 운동권 감성을 굳이 맛보고 싶다면, 이준익의 <자산어보>를 추천한다. 그 영화를 보고 몸을 바들바들 떨며 흐느끼는 자칭 책사들을 보고 있으면, 선배 세대에 대한 존경이고 뭐고 다 쥐어패고 싶다는 생각만 들뿐이다. <오징어게임 2,3>의 성기훈은 그렇게까지 염치없는 인간은 아니다. 그는 다만 오지랖은 쓸데없이 넓고, 머리는 존나 나쁜 인간일 뿐이다. 아무래도 그게 민주당 586 운동권의 자화상이다.


성기훈은 살아남았으나 아무것도 구하지 못했다. 다시 게임에 참가하게 되자, 다른 참가자들을 구해보려 하지만 그 역시 신통치 않다. 민주주의의 외피를 쓴 ‘투표’라는 시스템에서도 성기훈은 연일 패배한다. 끝내 반란을 일으켰지만, 오히려 자신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더 많이 죽어나간다. 게임중단파(작중에선 빨갱이로 불리기도 한다)가 대거 참여한 그 반란 이후, 게임은 오히려 중단될 가능성 없이 굳어진다.


성기훈은 ‘게임을 멈춰야 한다’는 이념에 경도된 채, 새로운 연대의 길을 모색하지 못한다. 이념은 있었지만, 전략도 연대도 없었다. 그에게 남은 건 무기력뿐이다. 기훈은 영 엉뚱한 곳을 바라본다. 금자, 준희, 현주, 영미, 세미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정체성의 여성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살기 위한 길을 모색하지만, 기훈은 여기에서도 한 발짝 비켜서 있다. 그 와중에 타노스, 남규, 민수, 명기로 대표되는 젊은 남성들을 설득하지도 못한다. 성기훈은 대체 뭘 하는가? 93개국에서 동시에 1위를 한 드라마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아무것도 못한다. 영웅놀이는 재밌었냐는 비아냥과 함께, 자기 친구가 죽어나가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할 뿐이다.


결말에서도 성기훈은 끝내 완성되지 못한 무기력한 모습만을 전시한다. 준희와 아이를 살리겠다고 마음을 먹긴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소리를 질러대는 것뿐이다. 프론트맨이 다른 참가자들을 죽이라 칼을 건네줬지만, 그는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의지를 힘껏 발휘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마침내 아이와 단둘이 남은 상황이 되자, 그는 프론트맨의 조롱(“너희는 말이야, 경마장의 말”)에 반박하려 애쓴다. “우리는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사람은…” 하지만 그는 그 문장을 끝내 맺지 못하고 뛰어내린다. 혹자는 그의 행동(아이 대신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희생)을 사람됨의 윤리로 해석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아니다. 그는 그 빈칸을 채울 능력이 없다. 그저 자신이 죽는 게 낫다는 감각만이, 그를 밀어 내릴 뿐이다.


확신도, 윤리도, 자기 언어도 없다. 그저 떨어질 뿐이다. 떨어지는 성기훈을 보며 노무현 생각에 눈물짓는 아저씨들에게는 유감이지만, 586의 죄책감과 정치관은 어찌나 공허하고 또 가벼운지. 성기훈은 나풀거리며 땅으로 떨어진다. 그 몸뚱아리에는, 무기력한 세대의 자기혐오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오징어게임 2,3>는 흥행 측면에서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전반부에서 매력적이고 정의로운 캐릭터들은 다 죽어나가고, 후반부에서는 비호감으로 가득한 캐릭터들의 악전고투만이 반복된다. TV 역사상 최악의 서브플롯이라는 평마저 듣고 있는 황인호 사이드의 이야기는 답답함을 배가할 뿐이다. 쓸모없는 정의, 도달하지 않는 정의가 얼마나 불쾌한지를 이보다 집요하게 보여주는 예는 흔치 않다. 그렇기에 이러한 구조 속에서 성기훈의 무능력함은 더욱 도드라진다. 성기훈은 준희의 아이를 남기고, 끝내 퇴장한다. ‘새로운 세대에 희망을 건다’는 메시지는 지극히 무책임하며,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끝내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성기훈의 퇴장은 더욱 극적이다. 그것은 자기 불능의 연기이자, 자멸의 연출이다. 586은 끝났다는 선언. 그들은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다. 나는 <오징어게임>이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측면에서 아주 못 봐줄 이야기는 아니라고, 뭐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