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26.03.03)

덩그렇다

by 취생몽사

연휴 마지막날 집에서 혼자 밥을 먹는데, 오랜만에 덩그렇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쓸쓸하다거나 외롭다거나 하는 마음과는 조금 다르다. 생에 대한 막막함이 좀 더 강하다. 처음 그 느낌이 들었던 것은 몇 년전 깊은 새벽에 연구실에서 퇴근할 때였다. 내가 근무하던 고려대학교 신공학관 1층에는 자율주행 자동차(혹은 그렇다고 주장하는) 한 대가 구석에 처박혀 있었는데, 홀로 퇴근하는 새벽 그 자동차를 바라보며 그런 기분이 들었다. 당시 딱히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않았던 나는(혹은 그렇다고 주장하는) 건물을 나와 담배를 피면서 덩그렇다 덩그렇다 중얼거렸다.


새로 이사한 나의 집은 28평 아파트에 남향이다. 방은 세 개나 있고 화장실도 두 개나 있다. 나는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 볕이 들어오는 집에 처음 살아본다. 가끔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면 맨발을 가지런히 모아 볕드는 곳에 두고 따뜻하다고 생각하며 웃는다. 작지만 나름대로 서재도 있고, 대자로 누워도 넉넉한 침대도 있다. 머리맡엔 사탄탱고와 자본 이전의 세계, 영화의 맨살을 가져다 두었다. 다만 이 공간이 온전히 내 집이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부피가 늘어났을 뿐 질량은 그대로인 것이, 진공 속에 내던져진 기분이다. 덩그렇다. 내 집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 도시 전체에 내던져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 러닝 코스도 자주 가는 식당도 없다. 커피는 대체 어디서 먹어야 할까? 앉아서 담배 태울 까페도 없다. 정말로 덩그렇다.


내 대전집은 아직 내 친구들과 그리 잘 아는 사이가 아니다. 지난주에 하루를 묵고나서 입대하러 떠난 K 정도만 여기서 술을 먹고 신나서 고함을 지르다가 잠들었다. 그는 입대하기 전에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바 있었지만, 막상 날짜가 다가오자 텍스트의 힘에 의문을 갖게 된 K는 염세와 냉소의 텍스트를 휘발시키는 것에 집중했다. 세상은 우리가 바랐던 것과는 정반대로 무너지고 있고, 그는 아무래도 일종의 절망을 겪어내는 중인 것 같다. 그는 내 친구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이고 그의 글은 명징한 언어로 보다 말쑥한 모습의 스스로를 그려낸다. 하지만 내가 그의 글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 말쑥한 글이 아니라, 말쑥한 글과 수더분한 그 사이의 간극이었으므로, 국밥집에 앉아 그 간극의 반대편을 듣는 일 역시 즐겁게 느껴졌다. 그는 지내온 세월로 보나 가진 생각이나 취향으로 보나, 동지란 말에 가장 가까운 이였다. 그런 녀석마저 군대에 가버렸다니 또 덩그렇다. 세상은 다시금 포화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이 흙먼지에 대해 이야기해 줄 친구가 없다. 덩그렇다.


덩그렇다는 생각에 매달리다 보면 사는 것이 그토록 막막할 수가 없다. 내일부터는 좀 바쁜 날들이었으면 좋겠다. 취직은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내일을 위해 이만 자야지.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이미지들은 일단 접어두고 주말에나 펼쳐봐야지. 언젠가 이 순간들도 마저 흘러가게 될 것이다. 흘러 흘러 흘러가. 결국엔 흘러가니 두려움은 두고 가. 생이 막막하지 않았던 적 별로 없었는데, 이제와서 호들갑을 떤다는 건 웃긴 일이다.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은 사실 “괜찮다.”라고 끝내고 싶었다. 정말 그렇다. Night gathers, train dreams, and now my watch beg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