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인권영화제
엉덩이가 무거운 것이 항상 미덕이 되지는 않는다. 낮부터 일한다는 핑계로 총학실 자리에 앉아, 나오지 않는 회의안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해가 기울어졌다. 그제서야 일어나 벼르고 벼르던 영화제에 다녀왔다. 주말 오후 마로니에 공원이 대개 그렇듯,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저마다 노래하고 환호하고 박수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두와 함께 놓인 무대에서 스물 두 번째 서울인권영화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부스를 지키고 있길래, 가서 몇 마디를 전하고 향초와 프로그램북, 뱃지 같은 것들을 샀다. 토요일에 상영되었다던 '망각과 기억 2'가 평소 무척 보고 싶었던 영화였기에, 프로그램북을 들춰보며 엉덩이가 무거운 것은 미덕이 아니라고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영화제는 폐막식과 폐막작인 '씨씨에게 자유를' 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다만 지인들이 하나같이 극찬했기에, 조금은 헛헛한 마음을 달래며 이런저런 글을 읽어내렸다.
폐막식이 시작되었고, 하늘을 나는 아프리카댄스라는 이름의 댄스팀 공연과 자원활동가들이 나와 영화제를 위해 고생한 서로를 위해 격려하는 자리가 진행되었다. 그렇게 스물 세번째 만남을 기약하며 사회자들이 물러나자 이번 영화제의 폐막작인 '씨씨에게 자유를'이 상영되었다. 언제나 환멸했을 뿐 분노가 부족했던 내게, 잔혹한 차별과 폭력 속에서도 희망과 연대를 이어나가는 모습은 조금 서글펐고 꽤 사랑스러웠다.
씨씨의 모습을 뒤로하고 학관에 돌아와 향초에 불을 붙였다. 불온;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을 의미한다. 이 건물에 반쯤 기대어 선 나는 충분히 불온했을까. 처음 발을 들이던 그 겨울로부터 나는 얼마나 타협했고 얼마나 덜 치열해졌을까. 6년 전 오늘, 2011년 6월 5일은 불온했던 흑인 트랜스여성 씨씨가 그녀를 잔혹하게 쥐어짜던 세상에 대해 불온했던 날이다. 지금 나는 충분히 불온한가. 지금 나는 불온한 자들 곁에 충분히 가까이 서 있는가. 촛불은 말이 없되, 불온한 향초에선 평온한 향이 피어올랐다. 그런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