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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빛(光)

고려대학교 총학생회;518 광주 민주항쟁 추모 대자보(17.05.18)

by 취생몽사

오월의 빛(光)

1980년 5월을 기억하는 시인 중 하나인 하종오 시인은 시 ‘사월에서 오월로’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갖가지 꽃들 함께 꽃가루 나눠 살려고/향기내어 나비 떼 부르기도 했지만/너와 나는 씨앗을 맺지 못했다/이 봄을 아는 사람은 이 암유(暗喩)도 안다" 씨앗을 맺지 못했다는 그의 은유법에서 1980년 5월을 기억하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 참혹한 광경을 떠올리며 지긋이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참혹함과 암담함이 뭉쳐진 시대의 그늘을 지나 찬란한 민주주의를 마주하고 있음에도, 오월의 열 여덟 째 날은 그 자체로 참혹한 은유인지 모른다.

광주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시기 하늘을 뒤덮었을 신군부 헬기의 총탄 발굴 작업이 시작된 것은 무려 37년이 지난 올해 3월의 일이다. 계엄군에 의해 암매장 당한 시민들의 시체는 지금도 계속 발굴되고 있다. 채 규명되지 않은 진실은 차치하더라도 확인된 것만 15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항쟁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행방불명 된 사람들과 그 때 입은 부상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500명이 훌쩍 넘는다. 그러나 여전히 광주 민주항쟁을 모욕하고 왜곡하는 역사적 반동세력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서있는 이 땅에 정의는 살아 있는가? 이를테면, 전두환이란 자가 광주의 봄이 폭동이었다 망언함에 우리는 이 땅 위 정의의 존재를 의심해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지난 흐름 속에서 공동체를 관통한 상처들은 어떤 대우를 받았는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희생당한 이들의 고통과 상처는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광장을 가득히 메운 뜨거운 맹세와 끝없는 함성은 어디로 갔는가?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던 그들의 다짐은 끊임없는 탄압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포기하지 않은 이들은 계속해 울분을 삼켜야 했고, 그 때마다 가슴팍의 상처는 늘어만 갔다. 정의는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고, 그리하여 죽은 자가 앞서서 나간 그 길을 산 자는 쉬이 따를 수 없었다.

많은 사건들이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며, 공동체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무채색으로 변해간다. 그렇다면 진실을 규명하고 계속해 정신을 이어가는 모든 투쟁은, 숭고한 빛깔을 무채색, 무관심으로부터 지켜내려는 선언일 것이다. 역사를 지켜내는 것이 곧 미래를 지켜내는 것이기에, 선언을 이어받아 더 크게 퍼뜨리는 것은 자유와 정의를 물려받은 이들의 당연하고도 막중한 소명이다. 지난 37년이 그랬듯이, 2017년의 광주도 그 빛깔을 잃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광주는 광주(光州)일지 모른다.

작성자: 인권연대국장 윤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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