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이 산다

근황(18.01.19)

by 취생몽사

별 일 없이 산다.

어렸을 적 살던 조원동 집은 마당 딸린 2층 집이었다. 억척스러운 농민이었던 할머니는 막내 아들 장가를 보내기 위해 그간 돈을 제법 모아두셨고, 역시 억척스러운 회사원이었던 아버지 역시 그간 모아둔 돈이 조금 있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집은 신혼 부부를 위한 집 치고는 거대한 집이었다. 2층 전체를 세를 놓았던 것은 물론이고, 1층도 방을 쪼개 세를 놓았다. 당시 그 방들의 보증금과 월세가 얼마였는지 나는 모르나, 임차인들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던 것은 기억한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옆집 할머니에게 커피 드시러 오라고 말씀드리러 달려나가는 것이었고, 할머니가 어머니와 커피를 드실 적에 나는 눈을 비비며 아침을 먹었다. 뭐 또 기억은 잘 안나지만, 할머니와 같이 살던 황룡이란 친구(왜 이름이 황룡일까, 태몽 같은 것이었을까)랑 놀던 기억도 있다. 그 기억들이 내가 간직하는 것인지, 아니면 부모님의 말을 통해 새겨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를테면, 그와 나는 2층 집 올라가는 난간에서 벽돌을 바닥으로 떨어트려 맞은 편 집 삼성 아저씨(삼성에 다니다가 퇴직한 중년 부부의 집이었다.)네 차를 깨부쉈다고 했다. 이 일화는 아직도 부모님이 가끔씩 꺼내는 나의 어린 시절 만행 하나이기에, 그 반복된 이야기가 내게 기억을 심어준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기 때문이다.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그 동네의 기억은 무언가 조금은 너절하고 울퉁불퉁한 것들이다. 이를테면 팔꿈치에 남아있는 흉터가 그렇다. 그 시절의 나는 아침에 아버지 출근하시면 누가 집 앞에 차를 댈 세라 무거운 화분이랑 의자 같은 것들을 대문 앞에 끌어다 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퇴근하실 적에 화분과 의자를 치우는 것 역시 하루 일과 중 하나였는데, 나는 그 때 콘크리트 벽에 팔꿈치가 찢어졌고 급하게 응급실에 실려가 열 몇 바늘을 꼬매기도 했다. 다만, 나의 너절하고 울퉁불퉁한 기억은 주변 환경이 위험했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부모님의 양육 방식과 어린 시절의 유치한 마음이 이리저리 뒤섞여 만들어진 향수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어린 날의 도벽에 대한 기억이 그렇다. 골목길 초입에는 럭키 공판장이라는 이름의 마트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동네를 떠날 때까지 물건을 사본 적이 없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집 자녀치고는 아니 어쩌면 그런 집 자녀답게 '애들은 돈이 필요없다.'는 부모님의 양육철학은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까지 용돈을 한 푼도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물론 물건을 사본 적이 없을 뿐이지, 그곳을 이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 나는 문가에 놓인 껌 판매대에서 잽싸게 껌을 훔쳐 달아나는 놀이를 하곤 했다. 당연히 덜미가 잡혔고, 엄청 혼났다. 쫀쫀한 사장님은 부모님께 그 얘기를 했고, 나는 집에서도 혼이 나야 했다. 어쩌면 여전히 껌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같기도 하다. 혹은 청자켓에 대한 기억. 당시 나는 어딘가 모르게 철지난 살짝 큰 옷들을 입고 동네를 휘적거렸다. 대여섯살 터울의 사촌 형이 둘있었고, 그 사실은 어머니에게 '애들은 금방 자라니까.'라는 이유와 함께 옷을 사줄 필요를 덜어주었던 것이다. 그 결정판은 수학여행 가던 날 입혔던 청자켓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당시 한참 소아비만 증세를 보였던 내게 그것은 매우 끔찍한 선택이었다. 나는 그것을 돌돌말아 가방(그 가방 역시 걸스카우트 가방이었는데, 사촌 누나에게 받은 것이다.)에 넣고 다시는 꺼내보지 않았다. 여전히 청자켓은 내게 조금 무섭기까지 하다.

이제는 그 동네를 떠난지 10년도 넘었고,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오며 나의 너절하고 울퉁불퉁한 기억은 끝을 맞이하는 듯했다. 고등학교 때는 교복을 주로 입었고, 용돈도 한달에 2만원 쯤 받았다. 간식비 좀 아끼면 힙합 앨범도 한 달에 두 장씩 살 수 있었고, 데이트 같은 것들이야 대입 후에 배우기 시작했으니 그때는 돈을 좀 벌었다. 오오, 뷰-티풀 라이프. 끊이지 않는 과외 속에 20개월치 용돈을 한 번에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수원에서 안암을 오가는 통학생이었지만, 그게 뭐 대수였겠나. 주도적으로 소비하는 삶은 신나는 것들로 가득했다. 물론 대학은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요하는 공간이기에, 학사 경고라는 것을 받아들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너절한 기억이여 쎄굿빠~'를 위해 이러코롬 말을 늘어놓은 것은 아니고, 요즘에야 다시 어떤 너절하고 울퉁불퉁한 일상이 내게 돌아온 것 같아 기쁘다고 쓰는 중이다. 방금 '돌아왔다.'고 썼는데 정말이지 그 말이 맞다. 전역 후 마냥 자취가 즐겁던 날들도 끝이 났고, 나는 꾀죄죄한 모습으로 커피를 손에 들고 담배를 피는 이 일상에 편안함을 느낀다. 이 너절하고 울퉁불퉁한 몰골! 그리웠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제 아침마다 커피를 드시러 오라고 말씀드릴 황룡이 할머니는 안 계시지만, 등기 있고 정식 계약서도 있는 방. 그래서 제도권의 보호를 받는 주거환경이 허락하는 얕은 감상과 자기 만족. 어젯밤 애인 말마따나, 생긴대로 살아가는 게 이래서 좋은 것인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