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17.12.29)

학생회관에서 만난 사람들

by 취생몽사

A를 편견없이 대하기 힘들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지금도 A와 무슨 사업을 함께 하는 것이 조금 귀찮게 여겨지긴 한다. 학내의 정치 조직이란 정치 조직은 전부 와해되었거나 비대해진 학생회 행정에 넌더리를 내며 수권을 포기했다. 그렇다 해도 학외 정치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절멸한 것은 아니다. 대개 그들은 수권한 학생회에게 접촉해 그 집행력을 끌어다 사업을 추진해보려 한다. 노선도 사상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한다면, 먼저 고개를 쳐드는 감정은 경계심이다. 그래도 이러쿵저러쿵 마주하다 보니 사람에 정 주는 멍청한 버릇때문에 경계심보다는 ‘왜?’라는 호기심이 커지긴 했다.

나는 A와 근본적인 현실 진단부터 완전히 궤를 달리했다. 그렇기에 기조도 다를 수밖에 없었고, 종종 그의 의견에 퇴짜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는 몇 안되는 열정으로 움직이는 사람이긴 했다. 어디 어디 무슨 위원회 소속이라며 양복 입고 명함 돌리는 머저리들과는 달랐다. 받아온 명함 파쇄기에 넣기 바빴던 나는 그래도 그가 보내온 카카오톡 문서는 집중해서 읽으려 노력도 하고 그랬다. 이렇게 임기가 끝나고 생각해보니 그는 혼자서 인권연대국 전체가 담당하는 의제보다 많은 가짓수의 의제에 참여하고 있다. 음, 굉장한 비효율이다. 그래도 뭐랄까 그에게 약간의 경의를 표하고는 싶은 것이다.

몇 번의 퇴짜 이후에도 A는 굴하지 않고 이런 저런 요청을 해왔고, 내가 한가할 적에는 발벗고 뛰어다니며 A의 요청을 들어주려 노력하기도 했다. A는 날더러 ‘총학에도 들이받는 사람 하나쯤 있어야지!’하며 고마워했다. 음 역시 비효율적인 언사다. 첫째, 나는 들이받는 사람이 아니고 둘째, 그런 언사에 고취되기엔 나는 공사 구분이 철저한 편이다. 어쨋거나 나는 그와 나름대로 친분을 쌓았고, 가끔 학관 지나는 A가 담배 피자고 카톡을 보내도 당황하지 않고 2층에 내려가 담배를 피울 정도의 사이는 되었다. 오늘 듣자하니 A가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올해도 중운위에 참석한다고 한다. 간만에 연락을 해서 내가 당신보다 졸업 빠르다며 자랑을 좀 했다. 전혀 개의치 않는 A는 거듭 내게 내년에 뭘 할 것이냐 묻는다. 나는 한사코 공부하고 졸업할 것이라 했다. 밥을 먹자고 하길래 그러자고 했다. 같이 XX하자고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럴리도 없고 만약 그런다고 해도 지난 1년 종종 그랬던 것처럼 퇴짜를 놓으면 그만이니 상관없겠다 싶었다. 혼자 슬쩍 웃었다.

연말이다. 다들 기억을 정리할 때인 것 같아, 나도 그냥 사소한 인연 하나를 되짚어본다. 사실 이런 별 것 아닌 인연들이 쌓이면서 나를 빚어내는 것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그들은 녹았다 얼어붙어 투명한 얼음벽을 이루고, 나는 그에 내 얼굴을 비춰보기 때문이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라는 건 그 얼음벽 앞에 섰을 때, 어제의 나보다 못나지 않은 자신을 마주하는 것 아닌가. 다음번에 A를 만나거들랑, 1년 동안 묻지 못했던 ‘왜?’를 물어볼테다. 조금 더 얼음벽이 단단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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