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비선형, 시변 시스템

by 취생몽사

고통은 어디까지나 감각의 일부다. 그것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라 하여 타격을 입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사피엔스는 통점을 제거하지 않은 방향으로 진화한 생물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이가 길을 걷다 압정을 밟았을 때, 그는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과다츨혈로 죽어버릴 지 모른다.


고통은 소중한 것이며, 그 감각을 통해 우리는 생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내가 미세먼지를 잘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요소가 못된다. 저마다 마스크를 찬 사람들이 많아도, 담배를 꾸역꾸역 피워댔던 나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내 기관지는 무감각하다는 뜻이다.


기껏 날 생각해 준 애인님이 마스크를 받아가라고 했지만, 사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보다는 마스크가 더 꺼림칙하다. 탄약관리병으로 복무하던 시절, 그 퀴퀴한 탄약고를 청소하기 위해 마스크를 차던 기억은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그걸 떠나서도 몸에 올려진 것들은 나를 항상 옥죄는 것만 같다. 팔찌, 목걸이, 시계, 안경 등등. 내가 채 1달을 못 가고 벗어던진 것들의 목록은 헤아리기 힘들 지경이다.


플래쉬백은 그만. 지긋한 교수가 최신식 태블릿을 사용하여 강의를 진행하는 교실에 와있다. 오늘 신호와 시스템 강의는 선형 시불변 시스템에서 임펄스 펑션에 대한 출력의 합으로 임의의 출력을 표현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멍하니 앉아있는 나는 피부 압박에 민감하며, 기관지 고통에 둔감하다. 그렇게 나는 잠시 인간은 비선형이자 시변하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사실 나는 미세먼지에 예민하지만 피부 압박에 둔감한 애인님을 위해 마스크를 주문해두었다. 핸드폰이 울려 배송이 시작되었다는 알림을 보내왔다. 아직 관계의 회로도를 그려가는 중인 애인과 나는 미지의 입력값들에 대해 출력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와 내가 고민했던 성숙한 연애는, 성숙한 사람들의 연애였을 뿐, 연애 자체의 성숙도에는 닿지 못했는지 모른다. 어서 마스크를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