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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진 Jun 12. 2020

글쓰기에 절대 법칙 따윈 없어요

《위반하는 글쓰기》, 강창래


글쓰기 책이 제법 잘 팔리는 상품이 된 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다. 대형서점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서가에는 꼭 잘 나가는 글쓰기 책들이 하나씩은 꽂혀 있고, 온라인서점에도 잊을만하면 글쓰기 신간 소식이 메인을 채운다. 왜 그럴까. 1인 미디어 증가라는 매체 환경 변화와 디지털 시대에 자꾸만 떨어지는 독해력과 문장력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일까.


나도 비슷한 시기에 블로그를 시작했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 쓰다 자괴감이 들 때면 글쓰기 책을 찾아 읽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서평 글쓰기 특강》, 《서평 쓰는 법》, 《글쓰기의 최전선》, 《소설가의 일》, 《무엇이든 쓰게 된다》, 《고종석의 문장》... 아 쓰고 보니 왜 이리도 많을까. 이것 말고도 몇 권 더 있는 것 같은데 스치듯 지나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도 읽을 책들 쌓아놓은 곳에는 글쓰기에 관한 책이 몇 권 더 있다.


그러나 글쓰기 책을 아무리 읽어도 곧장 실력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이건 뭐 나뿐만 아니라 만연해있는 불편한 진실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저렇게 많은 책들을 읽었을 테고, 글쓰기 책들이 계속 나오는 것이겠다. 글쓰기는 저마다 몸에 새겨진 고유한 삶의 경험과 통찰들이 자기도 모르게 배어져 나오는 것인지, 어쭙잖게 머리 까딱해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글쓰기 책을 전처럼 찾아 읽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저렇게 읽어댄 건, 글쓰기의 묘한 매력 때문이었지만.


종종 글쓰기에 대한 에세이는 찾아 읽지만 이젠 글쓰기 기술을 다룬 책은 거들떠도 안 보는데, 그런 책 중 하나가 웬일로 눈에 들어왔다. 도발하는 듯한 제목과 카피("글쓰기 비법에 대한 소문과 진실, 어디에서나 통하는 절대 법칙은 없다!")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출판사 편집기획자로 일한 강창래 작가가 쓴 《위반하는 글쓰기》였다. 이 책은 "유효 기간이 지난 지식은 버려야 한다"는 말로 포문을 연다. 기존에 출간된 숱한 글쓰기 책에서 제시한 방법론들이 시효가 다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어떠어떠한 통념이 왜 잘못됐는지 생선 가시 발라내듯 해부하고 부순 후,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글 잘 쓰는 사람은 따로 있을까? 거의 모든 글쓰기 책에서는 이 물음에 모두가 노력하고 훈련하면 잘 쓸 수 있다는 답을 하고 시작한다. 그래야 글쓰기 책이 성립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선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두 자기가 잘 쓸 수 있는 글을 잘 쓴다." 모두 노력한다고 잘 쓸 수 있는 건 아니고, 각자 자기가 잘 쓸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많이 쓰면 잘 쓰게 될까? 많이 읽으면 잘 쓰게 될까? 필사를 많이 하면 잘 쓰게 될까? 저자는 기존 글쓰기 책에서 봤을 법한 기시감이 드는 명제들을 하나씩 톺아간다.


기존의 허울 좋은 원칙들이 해체된 후 나름의 방법론이 펼쳐진다. 바로 머리와 가슴속을 하고 싶은 이야기들로 꽉꽉 채우라는 것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아직 좋은 글을 쓰기는 쉽지 않다.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할 정도가 되어야 좋은 글을 쓸 가능성이 높다. 쓰겠다는 결심보다 글로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생각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괜히 연애편지가 일기보다 잘 써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로 속을 가득 채우면, 마치 원석에서 보석을 세공해내듯 좋은 글들을 뽑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여태껏 출간한 많은 책들이 그런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고 전하며 다소 극단적인 예시, 서평 하나를 쓰려고 7권의 책과 10편의 영화를 보았다는 경험담도 들려준다.


여러 원칙들을 꼬집었지만 글은 쓰고 나서 고쳐야 한다는 원칙에는 저자도 동의하나보다. 다만 그 과정에서도 통념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한다. 예컨대 형용사와 부사는 되도록 안 쓰면 좋은 게 아니라 '잘' 써야 하고, 직유는 은유의 못난 동생이 아니라 직유만을 위한 자리가 있으며, 문장이 길다고 무조건 안 좋은 것도 아니라는 식이다. 그러나 이 모든 "원칙은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깨달음과 망각의 대상이다. 원칙은 언제나 알고 나서 잊어야 한다." 결국 글쓰기는 잔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지난한 수련을 통해 비로소 글쓰기의 과정이 몸에 새겨질 때, 자기 고유의 글이 써진다는 말이겠다.


저자가 말하는 시효가 지난 글쓰기 원칙들이 어디에서 수집된 것들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때론 저자도 그 원칙의 연장선 위에 서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같은 이야기의 다른 판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건 "어디에서나 통하는 절대 법칙은 없다"는 말이다. 각자마다 갖고 있는 고유한 글쓰기의 길이 있을 텐데, 그 길을 탐험하면서 괜히 그릇된 편견으로 눈을 가리지 말라는 말이다. 이 책은 그 탐험이 미로로 빠지지 않도록 도와줄 등불이 되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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