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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진 Jun 19. 2020

무엇이 작가를 만드는 걸까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조지 오웰은 짧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자신의 글쓰기를 가리켜 정치적 목적을 가진 행위였다고 고백한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아마 오웰의 글 중에 가장 널리 회자되었을 이 문장은 글쓰기를 고민했던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눈도장을 찍은 문장일 게다.


오웰은 그의 작업을 가리켜 "맥없는 책들"이라고 깎아내렸지만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작가 가운데 오늘날 그만큼 읽히는 작가가 얼마나 있을까. 1903년에 태어나 1950년에 사망하기까지 조지 오웰은 11권의 책과 수백 편의 에세이를 남겼는데, 그중 디스토피아 소설《1984》는 이미 정전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오웰이 남긴 글들은 아마 앞으로도 두고두고 읽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문장들에 담긴 힘 때문이다. 그 힘은 유럽 대륙이 두 번의 큰 전쟁을 겪는 와중에 시대와 온몸으로 맞선 삶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도 했다. 대학을 포기하고 영국의 식민지 버마에서 제국주의 경찰로 경력을 시작한 조지 오웰은 혼란과 고뇌에 빠져 방황했다. 그러다 런던으로 돌아와 부랑자들과 함께 밑바닥에서 생활하며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탄광촌에 들어가 노동자들과 지내는가 하면 스페인 내전이 벌어졌을 땐 민병대로 참여하기도 한다. 그 길은 누구나 꿈꿀 수 있지만 아무도 걸을 수 없는 길이기도 했다. 그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매섭게 총칼처럼 휘두른 펜대는 헛방이 아니었다. 그는 싸우듯 썼다.


" 모든 작가가 완전히 침묵하는 쪽을 택하거나, 아니면 소수의 특권층이 요구하는 마약만 만들어낼 때가 올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것은 내가 아주까리기름이나 고무 곤봉이나 강제수용소에 맞서 싸우는 것과 매한가지 일이다."


조지 오웰은 언제나 시대의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출발했고, 지향점은 정치적 목적이었으나 글을 쓰게 한 건 미학적 열정이기도 했다. 그는 글을 쓰면서 미학적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자의식이나 허영 따위에 도취되어 그런 건 아니었다. 그건 그가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이었고, "지상을 사랑"했던 감수성이자 미감이었다. 말하자면 가장 공적인 글쓰기를 가장 사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었고, 둘 사이를 끝없이 오가며 빚어낸 문장들이었다.


 "내가 할 일은 내 안의 뿌리 깊은 호오와,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강요하는 본질적으로 공적이고 비개인적인 활동을 화해시키는 작업이다."


정치를 논하는 그의 글은 매섭고 날 서지만, 문학적인 스케치들은 아름답다. 서두에 언급한 동명의 에세이 모음집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 이한중 옮김)엔 1931년부터 1948년까지 발표된 오웰의 에세이들이 담겨있는데, <스파이크>나, <교수형>, <코끼리를 쏘다> 같은 문학적인 필치가 빛나는 글부터 문명과 세태를 비판하는 글까지 다양한 결이 담겨있다. 특히나 울림이 있는 건 조지 오웰의 정직한 내면이 드러나는 순간이거나, 그의 작가적 의식이 고백되는 순간이다. 그런 글들엔 시공을 초월하는 감동이 있다.


그중 유난히 마음을 울리는 글은 <정말, 정말 좋았지>라는 에세이다. 이 글은 오웰이 여덟 살부터 열다섯 살이 되기까지 다녔던 기숙학교의 일들을 그린 "긴 자서전적 스케치"다. 단편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짜임새가 있는데, 그 당시 오웰이 위선적이고 무책임한 어른들에게 받은 상처들이 예민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다. 그 시절 수년간 상처에 시달린 어린 조지 오웰은 거대한 실패감에 빠져들고 만다. "나는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실패, 실패, 또 실패야말로 내가 지닌 가장 깊은 확신이었던 것이다." 불의한 시대와 온몸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하던 어른 조지 오웰과 이 어린 조지 오웰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 이 둘 사이에 놓여있는 건 무엇일까. 이 말은 사람을 작가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어린이를 어른으로 만드는가, 이 말과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 말일까.


#조지오웰 #나는왜쓰는가 #한겨레출판 #이한중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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