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역을 나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맞은 편에는 세 명의 시각장애인이 나란히 서서 나와 같이 신호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제일 앞에 서 있는 분의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있었다. 그분이 지팡이를 땅에 디디며 앞서가면, 뒤에 나란히 서 있는 분들이 앞 사람 팔을 붙잡고 쪼르르 같이 따라 걷는 모양이었다.
약간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세 분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다들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입가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나를 향한 것도 아니었는데 멀리서 훔쳐본 그 미소에 온종일 업무에 시달려 녹초가 된 마음이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그 때, 어디선가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다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세 분은 소리만 듣고 걷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는 직각방향의 다른 신호등 불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찰나의 순간, 세 분과 달리는 차가 부딪힐 뻔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다. 다행히 차가 그리 빠르지 않았고, 거리에 여유를 둔 채 경적을 크게 울려 사고는 면했다. 그 상황이 뭐가 그리 우스웠는지, 뒷걸음 친 세 분들은 전보다 더 크게 웃을 뿐이었다. 곧이어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었고, 세 분은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제 방향을 찾아 걸어갔다.
수많은 사람이 오다니고 온갖 소리가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자동차들이 쌩쌩거리며 달리는 위험한 곳이었지만 세 분은 그저 자기들만의 세상, 그 어느 곳보다도 안전한 공간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보는 이 많은 것들이 그들의 눈엔 보이지 않겠으나 나는 왠지 모르게 그 컴컴함이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