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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진 May 01. 2020

세 명의 시각장애인

퇴근길 지하철역을 나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맞은 편에는 세 명의 시각장애인이 나란히 서서 나와 같이 신호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제일 앞에 서 있는 분의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있었다. 그분이 지팡이를 땅에 디디며 앞서가면, 뒤에 나란히 서 있는 분들이 앞 사람 팔을 붙잡고 쪼르르 같이 따라 걷는 모양이었다.


약간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분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다들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입가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나를 향한 것도 아니었는데 멀리서 훔쳐본  미소에 온종일 업무에 시달려 녹초가  마음이 녹아버리는  같았다.  때, 어디선가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다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분은 소리만 듣고 걷기 시작했는데  소리는 직각방향의 다른 신호등 불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찰나의 순간, 세 분과 달리는 차가 부딪힐 뻔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다. 다행히 차가 그리 빠르지 않았고, 거리에 여유를 둔 채 경적을 크게 울려 사고는 면했다. 그 상황이 뭐가 그리 우스웠는지, 뒷걸음 친 세 분들은 전보다 더 크게 웃을 뿐이었다. 곧이어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었고, 세 분은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제 방향을 찾아 걸어갔다.


수많은 사람이 오다니고 온갖 소리가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자동차들이 쌩쌩거리며 달리는 위험한 곳이었지만 세 분은 그저 자기들만의 세상, 그 어느 곳보다도 안전한 공간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보는 이 많은 것들이 그들의 눈엔 보이지 않겠으나 나는 왠지 모르게 그 컴컴함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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