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여름아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나선지 아침저녁 기온이 쌀쌀하다. 모기는 여전하고 한낮은 덥지만, 집 방바닥은 벌써 서늘해져 맨바닥에는 누워 있기가 힘들다. 아직 8월이지만 여름 기세가 많이 꺾인 느낌이다.
여름은 매해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얼굴을 한다. 올해도 그랬다. 소서를 지날 때만 해도 역대급 여름 더위 예고편을 보는 듯했는데, 봄에 안 내리던 비가 몰아 내리더니 싱거운 여름이 되어버렸다.
가까이 일본이나 중국, 멀리 지구 반대편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역대급 폭염에 가뭄까지 이어져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고통받고 있다는데, 어찌 이리도 다를 수 있을까. 신기하다.
처서가 지나고 한 여름 꿈도 같이 사그라드는 것 같다. 더위를 정리한다는 뜻의 처서가 내 여름날까지도 말도 없이 정리해 버리려나 보다. 이제 9월도 코앞이다. 다음 주면 솔솔 바람 타고 가을 생각도 몰려오겠지. 여름이 갔으니 일터에서는 더욱 맹렬하게 일들이 쌓여가겠지.
아직 여름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것 같은데, 미처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됐는데, 예고 없이 이별 통지를 받은 것 같아 서운하다. 어쩌면 여름은 그토록 강렬하게 햇빛으로 내리쬐다가 한순간 사라져버려서 오래도록 선명히 기억에 남는 걸까. <그 여름의 끝>, <그해 여름 손님>, <한여름 밤의 꿈>,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여름이 반짝> 등등, 여름의 순간을 그려낸 작품들이 많은 건 그 순간이 그만큼 선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올 여름을 기대하며 이제는 그만 보내줘야겠다. 잘 가라 여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