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크 Jun 13. 2023

왜 쇼호스트들은 생방송 중 싸웠을까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홈쇼핑에서는 갖가지 일들이 방송 중에 벌어집니다.

세트가 무너지는 것 등은 애교이고 폭우로 인한 단전으로 스튜디오가 암전 된다든지 쇼호스트가 방송 5분 전에 쓰러져서 구급차에 실려간다든지 정말 다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참고로 모두 제가 겪었던 방송 사고입니다)


이제 어떤 돌발 상황에도 의연한 저임에도 너무나 당황스럽고 도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지금도 제가 애정하는 한 주방브랜드의 방송이 잡혔습니다. 쇼호스트 배정을 확인하며 놀랐는데 동기인 쇼호스트 두 명이 배정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보통의 고연차의 쇼호스트가 메인 호스트로 방송을 리드하고 저연차의 쇼호스트가 서브 호스트로 진행을 보조하는 형태였기에 참 드문 일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최초로 부부인 쇼호스트와도 방송을 해봤기에 나름 동기만의 케미가 있겠다 생각하며 방송 회의를 하고 문제없이 방송 준비를 했습니다. 쇼호스트들도 사이좋게 서로 롤을 의논하며 별 탈 없이 넘어가는 듯했습니다.


방송 당일 부조정실에 있던 저는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가뜩이나 좋아하는 브랜드인데 그날따라 방송진행도 잘되고 매출 또한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밀려드는 주문 속에 영상과 음악을 내보내며 쇼호스트들이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홈쇼핑이라 할지라도 중간중간 재정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영상과 음악을 방송에 내보내며 세트 조정을 하기도 하고 PD와 쇼호스트가 방송 흐름에 관해 짧게 논의를 하기도 합니다. 이 날은 방송과 매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쇼호스트들의 숨 돌릴 시간을 준다 생각하고 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MD와 매진 여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PD님.. 잠시 스튜디오 보셔야 할 것 같은데.."


기술감독님의 다급한 목소리에 스튜디오를 비추고 있는 카메라 모니터 화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귀한(?) 장면이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쇼호스트들이 서로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이크를 내렸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장 FD 감독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두 분이 싸운다고 말하는 것을 보아 심상찮은 분위기였습니다.


정말 돌발상황에 단련이 되었다고 자부했지만 순간 멍해져서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대다가 퍼득 정신을 차렸습니다.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 방송이 끝날때까지 두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를 시청자들에게 계속 노출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화면이 스튜디오로 돌아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두 쇼호스트는 활짝 웃으며 멘트를 이어갔습니다. 심지어 서로 멘트를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 뒤로 단 한번도 소위 말하는 영상 플레이 타임이나 주문 유도 타임 없이 방송을 끝냈고 방송 흐름에 대해 의아해하는 MD를 뒤로 한채 두 쇼호스트를 만나러 갔습니다.


멀찍이 떨어져서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는 쇼호스트들에게 무슨 일이었냐고 묻자 한 쇼호스트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버리고 남은 쇼호스트가 그제서야 자초지종을 털어놓았습니다.


서로 메인 진행을 하고 싶은 욕심에 은근한 경쟁이 있었는데 그 앙금이 하필 생방송 도중에 터져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안된다고 침착한 척 말을 했지만 그 당시 저도 너무 당황해서 식은 땀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생방송 도중 진행자들 간의 싸움을 본 PD. 저 밖에 없지 않을까요?



작가의 이전글 100번째 글을 저에게 바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