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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Jun 21. 2023

2년은 기다려주겠다던 회장님을 뒤로 하고 나왔습니다

"PD님! 이번에 저희 회사에서 라이브커머스 조직을 새로 만들어요. 많은 지원이 들어갈거고 사람들도 모으고 있어요. 합류하실 수 있을까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브랜사의 팀장님이 늦은 저녁 연락을 해왔습니다. 내부적으로 라이브커머스를 진행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고 있고 힘을 보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팀장님. 제안에 정말 감사드립니다만 제가 합류해서 큰 기여를 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은데 아쉽네요. 알겠습니다"


홈쇼핑과 플랫폼사에서 라이브커머스를 총괄하며 직접 라이브커머스를 해보겠다는 브랜드사를 정말 많이 봤습니다. 실제 실무자분들이 저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저 역시 장비 등 방송 인프라 구축에 도움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일부 빅브랜드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1년을 못 채우고 포기를 하고 조직이 와해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 역시 너무나 똑같았습니다. 



회사 경영진 주도로 야심차게 조직을 만들어 내부적으로 라이브커머스를 시작합니다.


몇 번 방송을 해보니 매출이 신통치 않습니다.


이제 시작했기에 테스트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회사에서도 용인해줍니다.


여전히 매출이 나오지 않습니다.


서서히 회사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초초해진 라이브커머스 조직은 마지막 수단으로  마케팅, 출연자 등에 비용을 투자하여 아주 작은 성과를 냅니다.


회사에서는 다른 채널을 통해 발생하는 매출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이 성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비용 이슈가 제기됩니다.


라이브커머스 조직은 방송 횟수도 늘려보는 등 발버둥을 쳐보지만 결국 회사에서는 아직 라이브커머스를 할 때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조직은 와해되고 구성원들은 퇴사를 하거나 회사의 영업 조직이나 마케팅 조직으로 흡수됩니다.



수많은 브랜드사 내 라이브커머스 조직의 흥망성쇠를 목격한 저로서는 좋은 제안임에도 쉽게 결정 내리기 어려운 사안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팀장님이 다시 한번 연락을 주셨습니다.


"PD님. 저희 회사가 판매 채널을 아예 라이브커머스로 일원화할 계획이어서 회사 지원을 집중적으로 할텐데 그래도 혹시 생각이 없으실까요?"


"지금 라이브커머스 시장이 매출 관점에서는 많이 어려워서 회사가 기다려주기 쉽지 않을겁니다. 저도 바로 매출을 낼만한 능력은 없는 사람이고요. 저보다 더 훌륭한 분이 조직을 잘 이끄셔서 기대하시는 바를 달성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좋아하던 브랜드이고 겪어봤던 실무자분들도 참 좋은 분들이어서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현실적인판단을 해야했습니다.


늦은 밤, 팀장님으로부터 메세지가 왔습니다.


"PD님. 회장님이 한번 뵙자고 하십니다.시간 가능하실까요?"


회장님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대체 현재 라이브커머스 시장에서 무엇을 보셨기에 이토록 관심이 있으신지.


다음날 회장님과 만나 두시간 가까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회장님은 저의 경력은 물론 현재 라이브커머스 시장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보시고 정말 큰 관심이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오랜 기간 홈쇼핑 방송을 진행하며 수수료에 대해 깊은 고민이 있었다며 이번 기회에 완전히 내재화 하고 싶다며 열의를 보이셨습니다.


"회장님, 말씀하신 바에 모두 동의합니다만 신생 브랜드가 주력인 상황에서 라이브커머스로 당장 만족하실만한 매출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많은 투자를 하실거라 들었는데 회사 차원에서 조직이 안정화 될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제가 홈쇼핑으로 성공하는 것도 4년이 걸렸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패할거다 얘기하고 반대했는지 아시나요. 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라이브커머스도 최소 2년은 투자하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오셔서 하시고 싶은 것 마음껏 해보시고 작은 성과라도 있으면 공유해주세요.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회장님의 말에 가슴이 뛰긴했지만 하루만 고민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끝마쳤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팀장님께 정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좋은 제안 주셨지만 합류가 어려울 것 같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죄송한 마음에 그 후 제가 속한 플랫폼은 물론이고 여러 인적 인프라를 동원해 방송과 판매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소기의 성과가 나기도 했습니다. 마케팅과 브랜딩이 아직 부족한 신생 브랜드가 라이브커머스로 성공하는 모습을 저도 진심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6개월 뒤에 라이브커머스 조직이 없어지고 조직원들은 퇴사나 조직이동 등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2년은 기다릴 수 있다던 회장님의 진심어린 표정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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