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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Jul 06. 2023

목표 달성하고 욕먹기는 처음입니다


요즘처럼 습하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어느 날이었습니다.


팀장님이 모 MD와 회의를 진행하라고 이야기를 하며 주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MD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만남을 청했습니다.


MD는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표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모기포충기라고.. 불빛으로 모기를 유인해서 가둔 뒤에 말려 죽이는 기계가 있는데.. 요즘 엄청 핫하답니다"


"오 그래요? 그럼 얼른 괜찮은 브랜드 하나 소싱해서 방송하시죠!"


"아 그게.. 한 브랜드 상품만 계속 대박이 나고 있는데.. 다행히 저희와 방송하기로 했고 준비만 하면 됩니다.. 문제는.. 이 브랜드가 타 홈쇼핑에서 판매가 너무 잘 되었어요"


"뭐 매진되거나 그러나보죠?"


"매진되는 수준이 아니라.. 방송 시작 10분, 20분 만에 계속 매진이 된다고 하네요"


대화를 해보니 좋은 상품을 영업에 성공하고도 MD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은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대단한 상품을 겨우겨우 데리고 왔는데 그들의 눈높이가 하늘로 치솟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방송 회의 때 협력사분들의 입장은 마치 개선장군같이 위풍당당했습니다.


위축된 MD의 상품 설명이 짧게 끝나자마자 상품의 총책임자로 보이는 분이 바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타 홈쇼핑에서 죽어도 본인들과만 하자고 했는데 하도 MD분께서 간곡하게 요청하셔서 큰 마음먹고 넘어왔습니다. 4번 방송 전부 방송 시간 30분을 못 넘겼어요. 이번에도 기대가 큽니다"


소위 말해 목에 힘이 들어간, 과장하면 거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분의 말씀에 마음이 썩 편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해 해보겠노라 말씀드렸습니다.


MD 역시 동일 시간대에 적용되는 매출 목표보다 훨씬 높은 목표를 설정해서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타 홈쇼핑 방송을 열심히 모니터링하고 그에 더한 추가적인 매출과 방송 연출 장치까지 마련하여 시작된 방송.


쇼호스트 역시 오늘은 무조건 조기 매진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방송은 쉴 새 없이 진행되었고 쇼호스트는 목이 쉴 때까지 판매에 열을 올렸습니다.


결과는 한껏 올려놓은 목표 매출의 150%.


평소 같으면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다고 다들 즐거워할 테지만 방송 리뷰 회의 분위기는 무거웠습니다.


"저희 상품 방송하고 매진 못한 방송이 이번이 처음입니다. 시간대도 애매했고 방송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여러모로 실망입니다"


협력사 관계자분의 이야기에 저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MD와 쇼호스트도 어쩔 줄 몰라 다음에 더 잘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그 상품을 가지고 한강으로 갔습니다. 밤새 실제 수많은 모기들이 잡히는 모습을 촬영하여 다음 방송애 활용했습니다.


방송 시간이 끝날 때쯤 매진이 되었지만 결국 협력사는 저희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른 홈쇼핑 회사를 찾아 떠났습니다.


문제는 처음 이 상품이 모습을 드러낸 지도 시간이 좀 지났고 시즌도 끝물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으며 수많은 유사 제품들이 등장하면서 그 이후 매진은 커녕 목표 매출을 채우기도 힘들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협력사는 마지막 매진의 기록이 있는 저희 회사를 다시 두드렸지만 MD의 단호한 거부로 다시는 방송을 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 당시 협력사 총책임자였던 분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단 두 번의 방송이지만 저를 또렷하게 기억을 해주셨고 그때의 일을 안주삼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때일을 회상하며 그분은 당시 본인이 조금만 더 겸손했다면 좋은 기회가 많았을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뜨거웠던 여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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