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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Jul 17. 2023

시장 상인들에게 온라인쇼핑 가르쳐봐야 소용없다고요?

얼마 전 모 구청의 주무관님 요청으로 한 토론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주제를 여쭤보니 소상공인 온라인쇼핑 지원 사업을 지속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떤 스탠스로 발언을 하면 되는지 궁금해하자 주무관님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씀해 주시되 그래도 지원 사업의 긍정적인 면들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답했습니다..

토론회의 열기는 예상외로 뜨거웠습니다. 지원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분들은 소상공인들의 참여도도 떨어질뿐더러 교육과 실습 위주의 지원은 생업에 바쁜 소상공인들에게는 일회성 보여주기식 행사일 뿐이고 결국 성과 없이 지원사업을 수행하는 회사에 아까운 혈세를 퍼주는 꼴 밖에 안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지원사업을 지속해야 한다는 쪽은 이런 지원 사업이라도 없으면 소상공인들은 결국 온라인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고 오프라인 영업만 고집할 경우 코로나 같은 비상사태 발생 시 대처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온라인 쇼핑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꼭 갖춰야 하고 이것은 지자체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양측 다 틀린 말은 아닌지라 팽팽한 의견 교환이 계속되었고 마침내 제 발언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런 소상공인 온라인쇼핑 지원사업을 실제로 수행해 본 적도 있고 수행하는 회사를 컨설팅 해본 입장에서 양측의 주장에 모두 공감이 되었고 모두를 아우를만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려던 찰나 인상 깊었던 상인 한분이 떠올랐습니다.

1년 전쯤 한 시장의 상인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사업을 수행하는 회사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라이브커머스 전반적인 강의와 더불어 개별 온라인 쇼핑 플랫폼 입점 과정 교육을 부탁받은 저는 한 달 정도 10명이 넘는 상인분들을 만나며 상품을 온라인 상점에 입점시키는 것부터 판매 후 프로세스까지 다양한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보통 지원사업에 선정된 상인분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기회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배우고 적용해 보는 분들과 지금 장사하기도 바쁜데 시간 내서 이런 거 배워서 뭐하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분들로 지금까지 많은 지원 사업을 진행하며 단 한번도 이 두 부류에서 벗어난 케이스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상인분이 교육은 정말 열심히 듣고 실습도 열심히 하는데 막상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은 안하는 것이었습니다. 온라인 쇼핑몰에 관심이 없다면 교육 참석률도 떨어지고 적극성도 떨어질텐데 정말 교육과 실습 때는 놀라울 정도로 집중하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했기에 궁금증은 더 커졌습니다.


하루는 교육 중에 너무 궁금한 나머지 직접 여쭤봤습니다.

"사장님. 이렇게 열심히 배우시는데 왜 정작 쇼핑몰 입점은 안 하세요?"

"아 저는 온라인 쇼핑몰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면 교육은 왜 이렇게 열심히 듣고 실습도 하시는 건가요?"

"저도 처음 이 교육을 들을 때 온라인으로 장사하는데 도움이 될 줄 알았죠. 근데 이게 지금 가게에서 장사하는데 너무 도움이 된다 말입니다"

너무나도 의외의 답변에 교육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게 무슨 말인지 여쭤보았습니다.

"제가 옛날 사람이라 아직도 박스 찢어서 거기에 매직으로 물건 이름이랑 가격 써놔요. 알아서 보고 믿겠지 한 거죠. 그런데 이번에 온라인 쇼핑몰 교육을 들으면서 고객들이 사소한 정보 하나하나를 얼마나 신경 쓰고 그게 구매로 이어지는지 느꼈단 말이죠. 그래서 이번에 박스 조각들 다 버리고 깔끔한 푯말들 사서 원산지부터 언제 들여왔고 원래 시중가격은 어디서 얼마인데 지금 얼마에 파는지 이런 걸 다 써뒀어요. 그리고 온라인쇼핑몰들 보니까 다 쿠폰이 있길래 나도 재미 삼아 쿠폰을 손으로 만들어서 다음에 오면 더 싸다, 하나라도 더 준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진짜 바꾼 게 몇 없는데 지금 매출이 계속 오르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온라인 쇼핑 교육이라고 꼭 온라인 쇼핑에만 써먹으라는 법 있습니까? 허허"


상인분의 대답을 듣고 정말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온라인쇼핑 교육이 이런 식으로도 활용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그때부터 저도 많은 분들에게 이 교육을 꼭 온라인 쇼핑 뿐만이 아니라 지금 장사하시면서도 써먹어달라고 부탁하곤 했습니다.

이 사례를 담담하게 이야기하자 토론장이 조용해졌습니다. 제 말 한마디로 여론이 바뀌었거나 결론을 짓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다들 생각지도 못한 사례에 놀란 눈치였습니다.

고맙다는 주무관님의 인사를 뒤로 한채 돌아오는 길에 그때 그 가게를 들러보았습니다. 오후 시간임에도 손님이 붐비고 여전히 사장님은 밝은 표정으로 장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소상공인 지원사업을 내년에도 계속하게 되었다는 주무관님의 연락을 머지않아 듣게 된 것은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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