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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Aug 23. 2023

내 커리어의 끝자락이 이랬으면 좋겠다

상품들의 총판을 맡아 홈쇼핑 영업과 온라인 판매로 매출을 올리고 있는 회사에서 컨설팅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대표님을 비롯한 임직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현 상황을 파악하고 어떻게 하면 매출이 늘어날 수 있을지 심도 깊은 토론도 했습니다.


규모가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이사님이 두 분 계셨는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맡은 업무 영역도 다르고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직원분들과 개별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A 이사님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괜찮은 분이며 업무에도 도움이 되는 분이라고 칭찬하는 반면 B 이사님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불만이 많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우 흥미가 생긴 저는 업무진행 방식부터 대화하는 스타일까지 두 이사님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A 이사님은 모 홈쇼핑 회사의 PD로 재직하다 신생 홈쇼핑 회사의 원년멤버로 활약을 했고 은퇴 후 삶을 즐기던 중 연락을 받고 합류를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본인의 인적 인프라를 활용해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A 이사님과 식사를 하며 느낀 점은 급한 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생 홈쇼핑 채널을 키우기 위해 열정을 불태웠고 핵심 멤버로 활약을 하다가 미련 없이 은퇴해서 여가생활을 즐기던 차였기에 회사에 도움을 주기 위해 합류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며 회사 대 회사로 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하고 최선을 다하면 성공한다는 마인드였습니다. 또한 회사나 대표님과의 방향인 본인과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언제든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거나 쉴 거라는 말을 했습니다. 


B 이사님은 여러 홈쇼핑을 거치고 관계사 등에서 재직을 하다 사업을 시작했고 사업이 신통찮은 와중에 대표님의 간곡한 요청으로 합류를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역시 본인의 인적 인프라를 활용해 회사에 상품을 가지고 오는 일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B 이사님과 식사를 하며 느낀 점은 본인이 스스로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여러 회사에 몸 담으며 연차가 쌓이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찾는 회사가 줄어들고 있음을 느끼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신통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와중에 대표님의 연락을 받았고 빠르게 본인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성과가 없다면 본인이 해고당할 수도 있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습니다.


업무 스타일을 보니 A 이사님은 본인이 사업을 만드는 중심이라 생각하고 대부분의 일을 본인이 처리하고 직원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고 업무를 위해 대표님께 직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B 이사님은 회사의 자원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본인의 성과를 빠르게 올리고 싶어 했고 대표님의 의견은 전적으로 수용하는 편이었습니다.


전체 회의를 할 때 유심히 지켜보니 A 이사님은 철저히 본인이 아는 영역과 해야 하는 업무에 대해서만 발언을 하고 B 이사님은 회사 전반적인 모든 업무에 대해 말을 아끼지 않고 이렇게 해보자라는 발언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의 반발이 있을만한 실무와 동떨어진 발언들이 많았고 대표님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주일 이상 지켜본 결과 누가 더 유능하다, 인품이 좋다 라기보다는 여유의 유무에서 나오는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성과를 내서 본인을 증명했고 그에 따른 금전적인 보상과 인적인프라를 쌓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마음의 여유가 많고 시야가 넓은 것은 당연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어쩌면 10여 년 후의 제 모습들을 본 것 같았습니다. 20대 후반에 시작해서 10여 년 동안 제 커리어를 낭비했다고 느낄 만큼 안이하게 보내지는 안았지만 아직 크게 이룬 것도 없고 제가 굳이 찾지 않아도 손을 내밀어줄 회사들이 있을 만큼 업계에서 명성을 쌓지도 못했습니다. 


커리어 말년에 가서도 그저 생존에 급급해 조바심을 내며 회사의 눈치를 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부디 지금의 저도, 가까운 미래의 저도 진심을 다해 커리어를 쌓아 후회 없이 커리어를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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