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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Aug 14. 2023

형제 쇼호스트를 만난 날

얼마 전 아는 분의 부탁으로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쇼호스트 한 분을 라이브커머스 방송에 데뷔시켰습니다. 방송 전 공부하려는 열의도 대단했고 방송 기획안을 미리 전달하고 이런 식으로 방송이 진행될 테니 미리 보고 다른 의견 있으면 언제든 알려달라고 부탁했는데 한 시간이 되지도 않아 몇 가지 좋은 포인트를 짚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경험이 쌓이면 좋은 쇼호스트가 될 수 있겠다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방송 당일 일반적인 경우보다 30분 이상 일찍 스튜디오에 도착한 쇼호스트를 반갑게 맞이하는데 뒤따라 낯선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관계자 외에 스튜디오 출입이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찰나 그분이 정중히 인사를 하며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안녕하세요 PD님. 오늘 방송하는 쇼호스트 형 되는 사람입니다. 저는 모 홈쇼핑에서 쇼호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고 동생분 모니터링하러 왔냐는 말과 함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방송 전 긴장을 풀라는 의미로 방송쇼호스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니 형 동생하는 사이가 아니라 진짜 형제 관계였고 형의 쇼호스트 커리어를 지켜보고 매료된 나머지 본인도 이 길로 뛰어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형 역시 동생의 성공을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동생의 방송은 꼭 모니터링하고 조언을 해준다고 거들었습니다. 


"든든하시겠네요. 홈쇼핑 쇼호스트분이 매번 방송 모니터링도 해주고 피드백도 주고"


"가끔 부담스럽기도 한데 아무래도 배우고 있는 입장에서 너무 도움이 되죠 하하.."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는 쇼호스트에게 마이크 테스트 겸 오프닝 멘트 리허설을 진행하고 잠시 쉬는 타임이 되자 형이 머리 스타일링을 다시 손봐주며 동생에게 속삭입니다.


"톤을 더 올려야 해. 그리고 플랫폼에 맞는 인사말을 미리 숙지해두고. 처음에 너무 바로 상품 소개로 들어가지 말고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란 말이야"


"알겠어. 여러분 날씨가 너무 더운 것 같아요로 시작해 볼까?"


"아오 이 멍청아 요즘 방송 백개면 백 다 그렇게 시작하는데 차별성이 있어야지"


"춥다고 할 수는 없잖아.." 


형제 둘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방송이 시작되자 쇼호스트는 밝은 목소리로 시청자들을 맞았고 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동생의 멘트 하나하나를 귀 기울여 듣고 뭔가 쓰기도 했습니다.

방송 도중 동생이 찾는 것을 번개 같이 가져다 주기도 하고 청중이라도 되는 냥 앞에서 열심히 고개도 끄덕여 주었습니다.

방송이 끝나고 쇼호스트에게 매출 결과와 함께 간단히 피드백을 전했습니다.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좋은 점들이 있었기에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함께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스튜디오를 나서자마자 폭풍같이 대화를 주고 받는 둘의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습니다.

홈쇼핑, 라이브커머스 업계에서 흔치 않게 형제가 쇼호스트라는 같은 길을 걷고 있고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는 모습을 보니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PD님 오늘 불쑥 찾아뵈었는데 불쾌한 기색도 없이 맞아주시고 동생 방송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친구입니다. 많이 알려주시고 가차 없이 질책해 주세요!"


짠 듯이 동생에게서 메시지가 옵니다.


"PD님 오늘 부족했을 텐데 잘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더 많이 공부해서 발전된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저는 같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언젠가 두 분을 커머스 방송 한 화면에서 같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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