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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May 29. 2019

PD에겐 악몽! 홈쇼핑 실패 상품들

지난 글에서 기억에 남는 홈쇼핑 대박 상품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하는 방송마다 대박이 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시장과 고객들의 평가는 날카롭고 냉정하기 때문에 대박상품보다 훨씬 많은 실패작들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시리즈로 홈쇼핑 PD로서 다뤘던 방송 상품들 중에서 커리어에 위기까지 올 뻔했던 홈쇼핑 실패 상품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손쉽게 이슈에 편승하려다 벌어진 대참사


6년 전쯤 살인 진드기가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살인 진드기 의심환자들의 사망 소식이 심심찮게 들리고 물리면 바로 죽는다 등의 소위 말하는 가짜 뉴스까지 더해져 전 국민이 살인 진드기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때 한 업체에서 진드기 기피제를 방송해보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전 국민의 시선이 살인 진드기로 몰려있는 이때 진드기가 싫어하는, 특허받은 성분으로  만든 기피제를 팔면 대박이 날 거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 역시 지금의 이슈 정도면 방송을 하기만 하면 대박이 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상품 연구나 방송 준비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방송 시간을 정해서 고객들에게 상품을 보여주는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당시의 이슈에 맞게 스튜디오도 나름 야외 잔디밭 느낌에 텐트까지 쳐놓고 자신만만하게 방송을 시작했는데 이게 웬걸. 방송 시작 후 10분 동안 주문은 하나도 없고 고객들의 질문만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요.

어떤 원리로 진드기가 기피하는 것인지, 어떤 성분인 건지, 아이들에게도 무해한 지, 효과는 어느 정도 가는지, 진드기를 죽일 수는 없는 건지, 침실에 뿌리면 침실 진드기가 거실로 도망가는 거냐 등등 예상했던 질문과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 몰아치는데 그 답변만으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고객들의 입장에서 조금만 차분히 생각을 해봤다면 살인 진드기가 무섭다면 가장 먼저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최대한 야외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고 진드기가 있다면 피하기 보다는 확실히 죽이고 싶은 욕구가 있을것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했을텐데 우리는 그럼에도 죽어도 야외활동을 할 사람을 위한 아이템, 진드기를 죽이지도 못하는 아이템을 판매한 것이었습니다.

즉 그저 이슈에 편승하여 잘 팔리겠지 생각만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안이한 생각으로 인해 방송은 15분 만에 강제 종료되고 말았습니다(홈쇼핑에서 가끔 판매가 너무 안되면 손해의 최소화를 위해 방송을 조기 종료하기도 합니다) 어차피 방송을 했어야 한다면 살인 진드기의 위험이 있음에도 꼭 야외 활동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맞춤 연출을 준비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있습니다.


방송 실패를 부른 안이한 가격 관리


똑같은 물건을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려는 것은 소비자들의 당연한 행동 패턴입니다.

물론 해외 직구 등 본인의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방법이라면 조금 더 비싸게 사더라도 편하게 구매할 고객들이 있겠지만 심지어 손쉽게 최저가로 살 수 있다면? 더 비싸게 사는 고객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유명 브랜드의 세탁세제를 론칭하게 되었습니다. 브랜드, 세척력, 성분 등 주부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상품이라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홈쇼핑에서 고객들이 가져갈 혜택뿐이었습니다.

유명한 브랜드인 만큼 이미 시중에서도 판매를 하는 상품이었고 이번 방송에서 고객들이 단 몇 백 원이라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세팅을 끝냈습니다. 추가로 협력사와의 협의를 통해 사은품까지 확보하여 성공적인 방송이 예상되었습니다.

방송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주말, 장을 보기 위해 마트를 갔다가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곧 방송할 해당 상품이 1+1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1+1으로 계산하면 방송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가격이 되어버려 바로 협력사에 문의를 했더니 일부 마트에서 진행한 한시적 행사로 주말 내 끝나는 행사이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답변을 해왔습니다.

다소 찜찜했지만 절대 문제 발생하지 않게 조치하겠다는 협력사의 다짐을 받고 마침내 방송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호스트의 첫 설명이 진행되는 7분가량 고객들의 주문은 커녕 문의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요. 너무나 이상한 마음에 생방송 중 고객들과 소통하는 채팅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추적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1+1 행사는 방송을 하고 있는 그날까지도 마트에서 버젓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어제 마트에서 1+1으로 더 싸게 샀다는 고객, 누가 홈쇼핑에서 더 비싸게 사냐는 고객, 방금 마트 가서 더 싼 가격 봤다는 고객들의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고 역시나 방송은 20분을 넘기지 못하고 종료되었습니다.

제가 10년간 진행한 홈쇼핑 방송 중 가장 매출이 낮았던 방송이 되어 버렸고 협력사 역시 질책을 피하지 못했다.

믿었던 방청객들의 배신


홈쇼핑 PD로 일을 하면서 느끼는 점 중 하나가 우리나라만큼 영어 공부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라가 있을까라는 점 입니다. 현재 홈쇼핑에서 진행하고 있는 영어공부 상품만 4~5가지가 되고 과거에 인기가 있었다가 없어진 상품들까지 더하면 셀 수 조차 없습니다.

독특한 학습법을 내세운 상품, 스타 강사를 내세운 상품, 금전적으로 학습 동기를 부여하는 상품 등 다양한 상품이 있는데 보통 새해 결심을 하게 되는 1~3월 초까지가 영어 공부 상품의 성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올해는 영어 정복'이라는 슬로건으로 새해 결심을 영어공부로 마음먹은 사람들을 유혹하며 많은 영어 상품 방송들이 편성되기 마련입니다.

스타 강사를 내세운 영어 공부 상품을 방송하게 되어서 준비하던 중 정말 영어공부에 절실한 사람들을 스튜디오에 초대해서 이 스타 강사의 강의가 얼마나 대단한지 경험하게 하고 리얼한 반응을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스타 강사는 짧지만 방청객들에게 임팩트 있을만한 강의를 준비했고 저 역시 에이전시를 통해 방청객들을 구하고 강의에 맞는 스튜디오 세팅과 방송 흐름을 준비하여 대박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방송 당일, 강사와 강의 내용에 대해 최종 체크를 하고 스태프들과 동선 등을 협의한 후 방청객들이 채워지면 마지막 리허설을 해보고 방송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보통 방송 30분 전, 아무리 늦어도 20분 전에는 스튜디오에 자리를 잡는 방청객들이 방송 15분 전이 되어도 스튜디오에 없는 것이 아닌가요.

이상하게 여긴 저는 에이전시에 전화를 했지만 몇 번을 걸어도 응답이 없는 전화에 멘붕이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늦은 밤 진행된 방송이라 빠르게 대체 인원을 구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방송 시작도 얼마 남지 않은 터라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결국 방청객 없이 강사의 단독 강의로 진행하기로 결정을 하고 방송에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급히 수정을 했다 하더라도 방청객과의 소통 위주로 미리 짜인 강의는 강사의 열변에도 불구하고  텅 빈 스튜디오에서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방송은 이 상품의 다음 방송이 불투명할 정도의 매출만을 남긴 채 초라하게 끝났습니다.

입사 이래 가장 화가 나고 허무했던 기억입니다.

역시즌도 정도라는 것이 있는데..


마케팅 기법 중 꽤 보편화된 개념인 역시즌 마케팅은 홈쇼핑에도 적용됩니다. 의류 상품에 주로 활용되기는 하지만 가전제품 방송에도 역시즌 마케팅을 종종 활용하기도 합니다.

몇 년 새 무더위가 극심해짐에 따라 여름철만 되면 에어컨이 불티나게 팔리는데 조금만 늦게 주문하면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물량 생산에 한계가 있는 제조사와 한정된 물량을 나눠서 팔아야 하는 유통사들은 여름 시즌만 되면 물량 확보와 배송 대란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홈쇼핑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잘 팔리는만큼 경쟁도 심한 여름 시즌을 피해 가끔 역시즌 마케팅으로 겨울에 에어컨 판매 방송을 진행합니다.

2018년 1월에 변함없이 '더워지면 이미 늦다', '역시즌에 사야 저렴하다' 등의 슬로건으로 에어컨 역시즌 방송을 진행했었는데 PD 입장에서 에어컨 상품도 괜찮았고 가격 역시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하필 2018년 1~2월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추운 기간이었고 한파로 항공기 결항과 인명사고까지 나던 시기였습니다. 미리 무더위를 대비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당장 얼어 죽게 생긴 마당에 아무리 좋은 조건으로 에어컨을 보여준들 고객들이 반응할 리가 없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빨리 사야 빨리 시원한 여름을 보낸다'고 말하는 것이 민망했을 정도인데 장사가 잘 되었을 리 없었습니다. 강추위만큼 고객들의 소비 욕구도 얼어붙어버렸던 방송이었고 그 후 회사에서조차 역시즌 마케팅도 정도를 봐가면서 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교훈을 준 방송이 되었습니다.


홈쇼핑에서 한 상품이 방송되려면 많은 검증 단계를 거쳐야 하고 일정 매출 이상이 나오겠다고 최종 결론이 난 상품들만 방송을 통해 고객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 매출의 절반도 달성하지 못하는 방송들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실패의 요인이 명확하게 분석되는 방송도 있지만 실패한 많은 방송들이 그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아직도 고객들을 잘 모르고 시장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변수가 많은 이 시장에서 승부를 걸어야하는 이 상황마저도 홈쇼핑 방송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습니다.

가끔 과거 실패한 상품 모음 특별방송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이건 아주 먼 훗날 제가 홈쇼핑 방송 사장이라도 되는 날 실현해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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