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크 Aug 15. 2024

10화 빈 손으로 시작한 팟캐스트가 인기 방송이 되다

홈쇼핑 회사의 가장 큰 염원 중 하나를 꼽으라면 4060 주부 중심 고객층의 확대일 것이다. 그만큼 홈쇼핑 이용 고객의 확장성은 제한적이다. 업계가 선보인 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젊은 층에서는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고 홈쇼핑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개그 프로그램에서 소재로 쓰이는 것을 몇 번 본 적은 있겠다.

어느 날 나에게 특명이 떨어졌다. 밤시간 30분을 아무 조건 없이 편성해 줄 테니까 젊은 고객들과 1인 가구를 좀 끌어와보라는 것이었다.  구성이 어마무시하던 밀키트를 소분해서 팔아보기도 하고 향초 같은 홈쇼핑에서 보지 못했던 아이템을 판매해보기도 했지만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 판매야 어느 정도 잘 되었지만 결국 매번 사던 4060 고객들이었던 것이었다.

기존에 목표로 했던 것들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음에도 매출이 괜찮았기에 회사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시간을 번 김에 뭐라도 더 해보고 싶었다.

평소 나는 운동을 하며 팟캐스트를 즐겨 들었다. 당시에는 팟캐스트라는 콘텐츠 형태가 인기이기도 했다. 이용층도 젊은 편이었다. 아주 무모한 생각이 들었다,

'젊은 층과 1인 가구를 위한 팟캐스트를 시작해 보자'

평소 친분이 있는 쇼호스트 2명에게 내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고맙게도 둘은 흔쾌히 합류를 결정했다.

출연진 섭외는 성공했지만 제작비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나머지는 혼자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회사 녹음실에 커피를 한가득 사들고 갔다.

"혹시 일주일에 딱 두 번만 녹음할 수 있을까요? 한 시간씩만 쓰겠습니다"

"어떤 일 때문에요?"

"회사에서 시킨 일은 아닌데... 더 잘해보려고 뭘 좀 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하시되 저희는 녹음 파일만 드릴 테니까 보정이나 편집은 전부 직접 하셔야 합니다"

그래도 무료로 녹음실을 구한 게 어딘가.

팟캐스트 채널의 썸네일 등 각종 디자인 역시 스스로 해결했다. 전문 디자이너가 작업한 것과 비교가 되겠냐만은 지금은 디자인 퀄리티가 문제가 아니었다.

쇼호스트 역시 전혀 출연료를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출연을 제외한 기획과 대본 제작은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메인 진행자 역할과 최종 편집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첫 녹음 전날 쇼호스트들과 첫 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보다 말로만 한 시간을 알차게 채우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왜 나는 항상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리는 걸까'

열심히 달리다 보면 갑자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드러눕고 싶을 때까 있다. 남들과 똑같은 업무를 해내면서 이 팟캐스트 프로젝트는 온전히 내가 더 해야 한다. 아직 시작하지 않은 프로젝트이니 내가 다 사과하고 없던 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마음을 다 잡았다.

그렇게 시작된 첫 녹음. 노련한 쇼호스트들이 패널로서 역할을 잘해주었고 나 역시 최선을 다했다. 그날 밤 바로 편집을 완료하고 다음날 팀장을 찾아갔다.

"팀장님. 시간 나실 때 이거 한 번만 들어주세요"

"이게 뭔데?"

"그 밤에 하는 방송의 연장선 느낌으로 제작한 팟캐스트 파일럿 에피소드입니다"

"팟캐스트 해서 뭐 하게?"

"여기서 젊은 층과 1인 가구를 끌어들여서 저희 tv 방송 홍보도 하고 구매도 할 수 있게 하려고요"

마뜩잖은 표정으로 팀장은 내가 건넨 오디오 파일을 듣고는 나를 다시 불렀다.

"근데 팟캐스트도 성과내기가 쉬워?"

"쉽지 않겠죠. 그러니 도전해 보는 거고요"

"일단 하는 건 좋아. 그런데 이거 때문에 다른 일을 뺴주진 못해. 솔직히 금전적인 지원도 어려워. 그래도 할 거야?"

"네 한번 해보겠습니다"

팀장의 의심 가득한 질문에 오기처럼 대답을 하다가 정말 시작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잘할 수밖에 없었다.

쇼호스트들에게 정식으로 시작하게 되었음을 알리고 조금 더 체계적이고 장기간 계획을 논의했다.

그렇게 서로 남는 시간을 활용해 녹음을 시작했고 7번째 에피소드가 올라가고 쇼호스트에게 다급한 연락이 왔다.

"PD님!! 큰일 났어요! 저희 팟캐스트 들어가 보세요!!"

놀란 마음에 팟캐스트 관리자 페이지를 들어가니 하루 만에 구독자가 300명 가까이 늘고 10만 회 가까운 조회수가 발생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팟캐스트 플랫폼과 관련된 모든 게시판과 SNS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팟캐스트 플랫폼의 카카오톡 채널에 우리 팟캐스트의 에피소드가 추천 에피소드로 올라간 것이었다.

늘 쉐도우 복싱 같았던 에피소드 댓글창도 활기가 돌았다. 에피소드에 공감을 한다는 댓글, 무명들인데 말을 잘한다는 댓글 등등 우리를 힘나게 하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다.

총괄 제작자였던 나의 기쁨은 더할 나위 없었다. 나는 쇼호스트 2명을 더 영입하고 방송 횟수도 2배로 늘렸다.

말 잘하는 쇼호스트들 덕분에 나는 큰 어려움 없이 제작을 계속해나갔다. 우리 팟캐스트의 순위도 쭉쭉 오르기 시작했다. 매방송 오프닝에 이번주에는 우리 방송이 몇 위다! 야호! 같은 즐거운 말들이 끊이지 않았다.

매번 말하듯 문제를 이럴 때 생긴다. 제일 입담 좋고 핵심을 담당했던 쇼호스트가 나를 조용히 불렀다.

"저.. 아직 회사에도 이야기를 안 했는데요. 제가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싱글 컨셉으로 이야기하는 지금 방송에 제가 계속 출연하면 청취자들을 기만하는 것 같아요. 방송 인기도 점점 올라가는데 언젠가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메인 진행을 내가 하지만 입담을 담당하던 쇼호스트의 갑작스러운 하차는 큰 타격이었다.

"혹시 지금까지 출연하는 게 힘드셨나요? 스케줄이 빡빡해지다든지.."

"아니요! 저는 너무 재미있고 오히려 시작 멤버로 자부심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팟캐스트 하자고 결혼을 미룰 수는 없잖아요.."

나에게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찾고 싶었다.

싱글들을 대상으로 방송을 하고 있고 방송은 순항 중이었지만 타겟을 이렇게 좁혀서는 롱런이 어려울 것 같았다. 이참에 방송을 리뉴얼하고 싶었다. 출연하는 모든 쇼호스트들을 불러 모았다.

"앞으로 싱글들의 이야기와 결혼한 유부남녀들의 이야기를 모두 다루는 방송으로 확장하려고 합니다"

나를 포함한 5명 모두 싱글이었지만 모두가 찬성했다.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다뤄보자며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다행히 핵심 멤버도 지켜낼 수 있었다.

서서히 인기를 얻어가고 있는 팟캐스트의 존재로 회사 내부에서 출연을 하고 싶다는 직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특별편으로 노총각, 노처녀, 결혼 30년 차, 돌싱 등 다양한 게스트를 불러 그들의 에피소드를 풀어냈다. 자연스럽게 방송 횟수는 점점 더 많아지고 내가 해야 할 일도 점점 더 많아졌다.

거의 매일 방송일 올라가던 어느 날 팟캐스트 메인에 우리의 팟캐스트가 등장했다. 월간 추천 방송으로 선정이 된 것이었다.

출연한 모든 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자리를 마련했다. 지금까지 조금씩 모아 온 청취 수익금에 사비를 보태 조촐한 파티도 진행했다. 모두가 내가 중심을 잡아줘서 이 팟캐스트가 운영될 수 있다고 말을 했다. 그날은 우리 멤버들 최고의 날이었다.

어느 날 회사 홍보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PD님 동호회로 팟캐스트 하시죠?"

"동호회는 아니고.. 일종의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잘 되고 있다는 말씀을 들어서요. 저희가 가볍게 말씀을 나누고 사보에 실어도 될까요?"

이제 회사에서도 우리의 성과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사보에 실려 그룹사 전체에 소개가 되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지자 나는 본격적으로 계획한 일들을 시작했다. 방송 중간중간 홈쇼핑 방송과 상품에 대한 홍보를 진행하고 일부 상품은 무상으로 오디오 광고를 제작해주기도 했다.

팟캐스트들을 리뷰하고 추천하는 팟캐스트에 우리 팟캐스트가 소개되기도 했다.

홈쇼핑 방송도 이에 맞춰 조금씩 우리가 원하던 시청자층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방송 메시지로 팟캐스트 듣고 왔다는 내용들이 점점 많아졌다. 회사에서는 이제 정식으로 나의 업무로 인정을 하고 따로 시간을 빼주기 시작했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혹시 싱글 앤 메리 제작하시는 PD님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저는 팟빵에서 제작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혹시 하루 시간 내셔서 회의 가능하실까요?"

왜 팟캐스트 플랫폼에서 연락을 했는지 의아했다.

쇼호스트 두 명과 함께 회의자리에 참석했다.

"정말 재미있게 듣고 있습니다. 다 직장인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거의 매일 방송을 올리시는지 대단합니다. 콘텐츠가 생명은 저희 회사 입장에서도 감사합니다"

팀장은 가벼운 칭찬으로 말을 시작했다.

"바쁘신데 모신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저희 팟빵 오리지널 프로그램 제작 관련하여 논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리지널 프로그램이요??"

"네. 저희 플랫폼이 모든 분들에게 팟캐스트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드리지만 팟빵에서 직접 제작하는 오리지널 방송들도 있습니다. 불금쇼 같은 거지요"

"아 네네 들어봤습니다"

"그런 방송들은 저희가 특히 홍보나 노출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성장도 빠르고 금방 인기 방송으로 자리 잡아요. 저도 자꾸 순위에 올라오고 추천이 되니까 제작하시는 방송을 들어봤어요. 분명 프로페셔널하거나 인지도 있는 분들은 아닌데 자꾸 듣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거의 매일 방송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제작 능력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하시는 방송은 그대로 하시되 저희의 오리지널 프로그램을 하나 같이 론칭해주실 수 있을까요?"

초보 제작자 입장에서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제안이었다.

모든 출연진들과 한번 고민을 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회의는 끝났다.

그날 밤 들뜬 가슴을 진정 못하고 있는데 팀장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혹시 다 참여하시는 게 힘드시면 PD님만 하셔도 됩니다. 진행자는 저희가 훨씬 인지도 있고 잘하는 분들 붙여드릴 수 있어요'

갑자기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시작할 때부터 함께 한 동지들을 두고 혼자 할 수는 없었다. 영화에서 보던 주인공의 고뇌의 장면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현실은 영화 같지가 않아서 모든 쇼호스트가 흔쾌히 제작에 합류하기로 했고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만 정작 회사에서 다른 일을 같이 하면 안 된다며 허락을 하지 않았다. 주인공의 고뇌 따위 필요 없었던 것이다.

소식을 전해 들은 팀장은 다음에 좋은 기회를 만들자며 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좌충우돌을 하며 팟캐스트 제작자로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요즘도 가끔 그때 방송을 다시 듣기 하며 추억에 잠길 때가 있다.

지금 들어보면 진행도 어설프고 주제도 재미가 없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관심을 받았을까 생각해 본다.

또 슈퍼맨 당신일까?


이전 09화 9화 경쟁사 본부장이 회사 앞까지 온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