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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Sep 05. 2024

22화 섣불리 시작한 유튜브로 평생 남을 상처를 만들다

10여 년 이상 친분을 유지하고 만날 때마다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가득했던 유명 인플루언서 지인이 대뜸 연락을 해왔다.


"일 쉬고 있다며?"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내가 지금 집 앞으로 갈 테니까 잠깐만 보자"


무슨 영문인지 몰라 궁금해하는 나를 지인은 따뜻한 말로 반겨주었다.


"회사들이 인재를 몰라보네. 뭐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나도 몇 년간 수입 없어서 맨날 포장마차 가서 술 마시면서 신세 한탄했을 때도 있었어. 걱정 마. 사람 쉽게 안 죽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인이 의미심장하게 말을 꺼냈다.


"알다시피 내가 나름 유명하고 홈쇼핑 출연도 많이 하고 해서 10년 넘게 잘 먹고 잘 살았잖니. 근데 이제 나이 50이 다 되어가니까 경쟁력도 좀 떨어지는 것 같고 불러주는 데가 점점 없어. 이런 말 창피하지만 몇 달째 예전 수입 반토막이거든"


"제가 감히 뭐라고 위로를 못 드리겠네요"


"그래서 더 힘들어지기 전에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유튜브를 시작해보려고 해. 마침 네가 PD이기도 하고 나랑 궁합이 잘 맞으니까.. 좀 도와주면 안 될까 해서"


"제가요? 제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다고.."


"기획이랑 촬영장 진행만 좀 해줘. 예전에 팟캐스트도 하고 콘텐츠도 많이 만들어봤잖아. 솔직히 주변에 부탁할 사람이 너뿐이다"


내 머릿속은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대세가 유튜브이기는 하지만 내가 유튜브 전문 PD도 아니고 한 사람의 절박한 프로젝트를 맡을 만한 능력은 없다고 판단했다. 

더 걱정인 건 유튜브 채널에 힘을 쏟다가 더 이상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이 중요한 유튜브 프로젝트에 적합한 사람은 아닌 거 같습니다. 주변에 정말 능력 있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PD들이 있는데요. 제가 좀 연결을 해드려도 될까요?"


내 말에 지인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장 성공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도 유튜브 잘 모르니까 차근차근해보고 싶은데 마음 맞는 사람이랑 했으면 해서. 모르는 PD랑 하면 나도 어색하고 불편해서 콘텐츠가 잘 나올까 하는 마음이야"


"다른걸 다 떠나서 저희가 비즈니스로 엮이는 게 무서워요. 지금까지 이렇게 좋은 관계로 서로 즐거웠고 때로는 의지도 되는 사이였는데. 콘텐츠 방향이나 성과 관련해서는 분명히 서로 의견이 있을 텐데 그런 충돌도 걱정돼서요"


"내가 다 맞출게. 제작비도 다 부담하고. 진짜 그냥 부담 내려놓고 일주일에 한 번 논다고 생각하자. 너도 머리 좀 식히는 셈 치고"


오래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지인이 이렇게까지 하는 부탁을 차마 냉정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우리의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막상 또 한다고 생각하니 긍정적인 포인트들이 보였다. 지인의 SNS도 큰 힘이 될 것이고 매일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채널 홍보도 가능해 보였다.

일단 안정적으로 1만 명 정도의 구독자를 모으는 것은 아주 쉬워 보였다. 1만 명 정도만 되어도 바로 다른 비즈니스 활동도 가능해 보였다.


믿을만한 편집자까지 합류를 했다. 예감이 좋았다. 이번 기회로 나 역시 다른 먹거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대망의 티저 오픈 날. 지인의 유튜브 채널 오픈 포부를 재미있게 담은 영상이 업로드 되었고 때맞춰 지인은 본인의 SNS에 그 소식을 알렸다.

예상보다 많은 조회와 댓글 그리고 예상치에 근접한 구독자 수.

첫 시작치고 나쁘지는 않았다.


지인은 재미있다는 반응들에 흥분했다. 유튜브 초짜였던 나 역시 이대로면 1차 목표 달성은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아직 라디오 홍보도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본편 1편이 올라가고 지인은 당당히 라디오에서 본인 유튜브 채널을 홍보했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오늘 자고 일어나면 수천 명의 구독자가 우리를 반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본편의 조회수는 티저의 절반도 안되었고 라디오까지 동원한 홍보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살짝 실망했지만 우리는 다시 의기투합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몇 달이 지났다. 꾸준히 일주일에 두 개의 콘텐츠가 올라갔지만 조회수와 구독자는 몇백 수준에서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로 고민을 했지만 해결책의 방향은 완전히 달랐다.

나는 지인이 촬영 중 지나치게 점잖은 척을 하며 재미의 정도를 떨어뜨린다고 판단했다. 좀 더 자신을 내려놓고 촬영장에서 만나는 일반인들과 시청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를 원했다. 지인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며, 다른 채널과의 차별성이라며 내 의견을 반대했다.


지인은 본인의 예전만 못한 네임벨류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훗날로 미루어두었던 유명 게스트들을 대거 출연시키자고 했다. 나는 벌써 그 카드를 써버리면 아까우니 어떻게든 우리끼리 일정 수준 이상의 성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로 맥이 빠진 상황에서 일이 터졌다.

처음으로 지방 촬영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해당 마을 관계자들과 장소를 섭외 완료하고 전날 확인차 지인에게 연락을 했다.


"내일 촬영 몇 시에 만날까요?"


"내일?? 다음 주 아니었어??"


"분명히 내일이라고 메시지에 써놨는데..."


"내일은 나 다른 스케줄이 있는데...... 어쩌지"


마을 관계자분들께 사과드리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괜한 짜증이 밀려왔다.


그때부터 둘 간의 소통이 매끄럽지 않았다.


또 다른 큰 촬영을 앞두고 서로 협의 하에 기획을 마무리하고 준비를 끝마친 촬영 전날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작비가 조금 많이 드네.. 아직 수익 한 푼 안나는 조금 부담이 되는 것 같아.. 최대한 싸게 찍을 수 있게 기획을 좀 바꾸면 어떨까? 내가 생각해 둔 기획이 있거든"


갑작스러운 변심과 성에 차지 않는 신규 기획 내용에 화가 치밀었지만 최대한 감정을 숨기며 답했다.


"그럼 이번에 저는 촬영에 집중할게요. 직접 기획하신 내용이니 그때 그때 지시 내려주세요"


이런저런 잡음과 함께 성과는 계속 나지 않았고 제작비가 부담되는 지인의 요청으로 콘텐츠의 스케일은 점점 줄어들었으며 다시 성과가 나지 않는 악순환에 빠졌다.


결국 지인은 마지막 카드를 빼들었다. 유명 연예인이자 유튜버들을 줄줄이 섭외했다.

본인 채널은 물론이고 출연하는 영상마다 몇십만 몇백만 조회수를 찍는 유명인들이었지만 우리 채널에서는 그 약발이 통하지 않았다. 


겨우 몇 천, 몇 만 조회수를 기록한 처참한 결과를 받아 들자 나는 더 이상 채널에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 역시 1년 가까이 시간과 돈을 투자한 것 대비 성과가 너무 미비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지인은 유튜브 채널을 접었다.


내가 안타까웠던 건 유튜브 채널이 실패해서도,  1년 가까이를 돈 한 푼 받지 않으며 헛되이 날려서도 아니었다.


10여 년 넘게 더할 나위 없이 좋던 관계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긴장감 있고 서먹서먹한 관계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서서히 커리어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잃으며 추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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