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크 Sep 02. 2024

21화 거짓으로 쌓아올린 탑에서 굴러 떨어지다

"너 라이브커머스에 대해서 좀 잘 알지?"


그렇게 친분이 두텁지 않던 옛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네. 그럭저럭 많이 스터디하고 경험도 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일해볼래?"


선배가 다니는 회사는 해당 업계에서 꽤나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었다.


"어떤 일을 하게 되나요?"


"라이브커머스 관련 전문가가 없어서.. 그거 관련 사업이나 아이디어들이 많이 필요해"


그래도 자신 있는 분야였다. 관심이 있다고 하니 다음날 바로 대표와 미팅이 잡혔다.


"저희가 너무 찾고 있던 인재시네요. 하하하"


대표의 말에 잠시나마 예전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당장 입사하셔서 힘을 보태주세요. 저희가 같이 해야 할 사업이 많습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직장인으로 복귀를 했다. 다시 일을 할 수 있음에 그저 행복했다.


입사 첫날 대표는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바로 해주실 일이 있어요. 저희가 지자체 사업을 따내야 하는데 총괄 책임을 맡아주세요"


나름 업계에서 잘 나간다는 회사였음에도 재무상태는 처참했다.

투자받은 돈도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정부나 지자체 지원 사업을 수주하지 못하면 회사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었다.


회사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지자체의 니즈에 맞게 나름의 사업 계획을 세웠다. 

중간중간 회사 정보가 필요한 부분은 대표가 직접 나에게 알려줬다.


나를 서포트해주는 직원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일은 내가 진행했어야 했다.

처음 해보는 방대한 서류 작업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입사하자마자 한 달가량을 매일 야근에 시달렸다.

평생 방송만 하다가 공무용 서류를 작업하니 일의 진척이 빠르지도 않았다.


입찰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체크하던 중 예전 사업 이력 관련 부분이 있었다.


"대표님 작년 해당 사업 이력 증빙이 200건 필요합니다"


"200건 까지는 안될 텐데.."


"그러면 애초에 입찰 자격이 안됩니다"


"잠시만요.."


대표는 다른 사업부 팀장을 부르더니 낮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내일까지 증빙서류 준비가 가능합니다. 걱정 말고 입찰 준비해 주세요"


대표의 말에 갸우뚱했지만 나는 그대로 업무를 진행했다.


다음날 어제 대표와 대화를 나눈 팀장이 나에게 서류를 가지고 왔다.


"이걸로 준비하시면 됩니다. 파일도 곧 드릴게요"


이상한 마음에 증빙서류를 꼼꼼하게 살펴봤다.

절반 가량이 실제 사업 내역과 맞지 않았다. 계약서의 도장도 다들 비슷했다.


"이거 서류가 이상한 거 같은데요"


"걱정 마시고 그냥 진행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입찰은 진행되었고 직접 지자체 관계자들에게 하는 PT가 남아있었다.


"대표님. 분명히 회사 내부 역량에 대한 질문들이 나올 텐데 회사 사정을 잘 아는 분이 PT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따내는 게 목표니까 질문 들어오면 다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 말고 정답은 없어요. 그냥 사업 기획하셨으니 직접 PT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회사 사정이라는 게 정해져 있는데 무조건 가능하다고 말한다는 게 맞는 건가?

입사 이후 계속 의문이 들었다. 이 회사 믿을만한 회사일까?


그렇게 사업 PT를 내가 진행했고 예상대로 관계자들은 내가 말하는 사업 계획에 더해 추가로 이런저런 것들을 요구했다. 마음속으로 꺼림칙했지만 나는 대표의 말처럼 다 가능하다는 대답을 반복했다. 다행히 근소한 차이로 1등을 해 최종적으로 사업을 수주하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난리가 났다. 회사 창립 이래 꾸준히 지자체 사업을 수주하려고 했지만 매번 실패했는데 이번에 최초로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파티가 벌어졌고 대표와 직원들은 연신 내 덕이라며 고마워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었다.


다음날 대표가 나를 불렀다. 나는 사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계획을 이야기하고 필요인원과 예산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총 인원 5명 정도로 해야 할 것 같아요"


"네? 제출한 서류에 투입되는 인원만 40명이라고 했는데 5명으로 운영을 하라니 무슨 말씀이신지요? 지자체 쪽에서도 가장 풍부한 인력을 투입한다고 해서 저희를 선택했습니다만.."


"사업 서류에 참고하시라고 저번에 드린 조직도에는 조금 뻥튀기가 있어요. 여기 같이 사무실을 쓰기는 하지만 20명은 다른 회사 소속입니다. 제 다른 회사요. 그래서 그 인원들은 이번 프로젝트에 투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면 지자체랑 약속한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을 할까요?"


"일단 최대한 해보고.. 싸게 외주를 주던가 하시죠"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실무진에서도 난리가 났다. 

모두가 황당해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지자체 관계자는 끊임없이 연락을 해오며 추가로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대표는 그저 다 할 수 있다는 말의 반복이었다.

일을 진행할수록 거짓으로 쌓아 올리는 불안한 탑 같은 느낌이었다. 

결국 대부분을 외부 인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지자체에서 받은 한정된 예산은 그들의 비용으로 대부분 소진되었다.

결국 그 많은 일을 하고도 우리 손에 남는 건 없었다.


이후 방송국과 제작사와 함께하는 TV 프로그램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었다.

제작사의 대표가 계획을 말했다.


"... 그래서 지방에도 스튜디오가 있어야 합니다"


대뜸 대표가 말을 받았다.


"잘 되었네요. 저희가 지방 곳곳에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거기를 활용하시죠"


우리가 지방에 스튜디오가 있었던가..? 


방송국 직원이 말했다.


"오디션 형태로 가야 하는데 공정성을 위해 모두 실시간 송출을 해야 합니다"


대표는 또 대답했다.


"저희가 동시에 10개까지 송출을 해봤습니다. 문제없습니다"


그런 적 없다. 내부에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도 없다.


회사에서 나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은 투자를 한 프로젝트였음에도

대표의 공수표가 중간에 들통이 나 모든 것이 없던 일이 되었다.


어느 날 예전에 진행했던 지자체 사업 담당자가 연락이 왔다.


"잘 지내셨어요? 저희 이번에 또 사업 하나 공고가 날 텐데.."

"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그게 아니고.. 신규 사업 공고를 내면서 지난 사업을 다시 들여다보다가 지원해 주셨던 서류들이나 이런 것들이 사실 관계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아마 윗선에서 정식을 문제 삼을 것 같아서.. 중간에서 제일 고생하셨는데 미리 알려드려요"


터질 것이 터진 느낌이었다. 

회사 임원진의 긴급회의가 열렸고 결론이 났다.


사업 기획을 주도하던 내가 마음대로 수치를 부풀리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제출한 것으로.


충격보다는  헛웃음이 나왔다. 막장 드라마나 웹소설을 보는 기분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보호하던 슈퍼맨의 힘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