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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Sep 01. 2024

20화 달콤했던 재입사 제안과 씁쓸한 결말

첫 회사를 오래 다녔다 보니 그쪽 직원들과의 친분은 여전히 두터웠다.


친하게 지내던 방송 스탭들을 우연히 만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어떻게 지내요? 옮긴 회사는 다닐만해요?"


"어쩌다 보니 쉬고 있어요"


"아 그렇구나. 따로 계획은 있어요?"


"다시 회사를 찾고 있어요"


"그렇군요. 요즘 회사에 재입사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정말요? 회사에서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네 그런데 최근에 기조가 바뀌었는지 많이 재입사하더라고요?"


"그렇군요"


"막말로 안 좋게 퇴사한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일도 잘했는데 혹시 생각 있으면 재입사 고려해 보세요"


재입사는 정말 고려하지 않은 옵션이었다.


선례가 거의 없기도 했고 티끌 나마 남은 자존심도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어떻게 지내니?"


내가 몸 담았던 팀의 팀장이 불쑥 연락이 왔다.

뭔가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네 뭐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소식은 들었다"


"네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네요"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로 내 근황을 묻던 팀장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어갔다.


".. 혹시 다시 복귀할 생각 있니?"


지금 재입사를 제안하는 건가? 내가 꿈꾸던 미래는 아니지만 암울한 내 현실에 한줄기 빛 같은 제안이었다.


"제가 지금 뭐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 저야 감사하죠"


"알겠어. 잠시만 기다려봐"


팀장은 급히 전화를 끊었다. 오후 늦게 팀장의 전화가 다시 왔다.


"전무님이랑 이야기해 봤는데 바로 확답을 주시진 않았어.. 그런데 말씀하시는 뉘앙스를 보니 네가 연봉 같은 것만 좀 포기하면 문제없을 것 같아"


"네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일단 전무님이랑 식사를 한번 하자"


회사 근처에서 전무와 팀장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다가 조금은 불편한 주제가 메인이어서 그런지 분위기는 사뭇 어색했다.


별 의미 없는 안부와 근황을 주고받다가 전무가 말을 꺼냈다.


"이번에 마케팅 쪽 백 대리도 재입사한 거 알지?"


"네 들었습니다"


"지금 받는 연봉은 보장 못해. 그냥 원래 연차대로 받게 될 거야. 괜찮니?"


"네 괜찮습니다"


"다행이다. 지금 회사가 재입사를 허용하는 분위기여서. 회사에서는 퇴사한 인재들이 다시 입사하면 기존 직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이라고 판단하고 있어. 막말로 나가봐야 별거 없더라의 산증인들이랄까"


대화는 더 긍정적일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사장님한테 오늘 보고할게. 근데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 막은 적은 없으셔서 형식적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전무는 희망에 찬 말을 남기고 떠났다.

회사 넘버투인 전무의 말, 이 정도면 사실상 입사 확정과 다를 바 없었다.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연락을 해서 나의 복귀를 밝혔다.

내가 나온 회사로의 복귀.

조금 민망하기는 하겠지만 어쩌면 지금 내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무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했던 환경에서 다시 재기할 수 있다.

익숙한 사람들과 다시 일할 수 있다.

처음부터 다시 평판을 쌓을 필요도 없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초조하게 보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조금 좋지 않은 모양새지만 다시 재기하자.


나는 흥분으로 떨리는 마음에 한동안 길가에 주저앉아 있었다.


복귀하면 동료들에게 어떻게 말을 할까? 

한동안 세상 공부하고 왔다고 하면 민망하지 않으려나?

복귀 첫 방송은 내가 만들어놓고 나간 프로그램으로 하고 싶다.


온갖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 참이었다.

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전화벨이 울렸다. 팀장이었다.

좋은 소식은 최대한 빨리 전하고 싶었나 보다.


"네 팀장님"

"전무님이 빨리 출근시키려고 오늘 들어가자마자 사장님한테 얘기했더라고"

"아 그렇군요"

"사장님이.. 굳이 사업부에 추가 인원이 필요하냐라고 하셨다네.."


조금 강한 충격이었다. 

사실상 복귀를 전제로 이것저것 생각하던 차라 그 참담함은 더욱 컸다.


"최근 재입사 희망자를 대부분 승인하셨는데..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대답이 없자 팀장은 더욱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 미안하다.. 다음에 술이나 한잔 하자"


"알겠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승부수를 걸었음에도 때가 아니라는 것은 영원히 적당한 때라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작은 희망으로 부풀었던 심장은 그렇게 산산이 부서졌다.


그날이었던 것 같다.


내가 느낀 슈퍼맨의 힘이 어쩌면 내 착각일 수도 있다고 느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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