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에게 가장 반가운 소식은 취업 플랫폼에서 보내오는 포지션 제안 알림일 것이다.
이력서를 열심히 써서 업로드 한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포지션 제안 알림이 와서 급하게 확인을 했다. 서치펌이었다.
한마디로 헤드헌터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냥 구직 중으로 되어있으니 혹시 헤드헌터도 구미가 당길까 제안하는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포지션 제안을 수락했다. 혹시나 나에게는 다른 제안이 있을지 모른다는 헛된 희망과 함께.
"안녕하세요. 이력서 보고 연락드렸어요. 저희는 00 서치펌인데 자유롭게 일하시면서 성과대로 돈을 벌 수 있는 헤드헌터 자리를 제안드려요. 저희는 업계에서 가장 낮은 수수료를 자랑하고 일정 금액 기여하시면 그다음부터는 전부 헤드헌터가 가져가는..."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멘트에 힘이 빠졌다. 알면서 괜히 물어본다.
"정규직은 아닌 거죠...?"
"네 위촉직이신 거죠. 사무실은 있어요"
"네 고민해 보겠습니다.."
전화 도중 또 알림이 울렸다. 미리 보기로 뜬 메시지 '입사 제안이 도착했습니다'
또 심장이 떨렸다. 긴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이번에는 다르겠지.
서치펌은 아니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실제 회사였다.
회사 정보를 검색해 보고 맥이 풀렸다.
보험 다단계 회사. 그중에서도 최말단 영업직 제안.
회사 리뷰는 신기하게 다단계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고소득에 대한 칭송이 섞여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고민 없이 걸러야 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은 결국 제안 수락을 선택했다.
"안녕하세요? 이력서 보고 연락드렸어요! 저희가 이번에 사세 확장으로 좋은 분들을 대거 모시려고 해요. 저번달에 합류한 분도 500만 원 이상 받아가셔서 분위기가 아주 좋아요. 일단 한번 오셔서 이야기 들어보시고 결정하시는 건 어떠세요?"
"제안 포지션이 팀장이던데.. 팀원이 있는 건가요..?"
"... 저희는 사기 진작 목적으로 모두 팀장으로 통일하고 있어요. 팀장님들을 관리하는 실장님이 있고요"
들으면 들을수록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냥 끊어도 되는데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혹시 저에게 이런 제안을 주신 이유가 있을까요?"
하다못해 다양한 커리어로 인맥이 많아 보인다든지 최소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냥 그게 궁금했다.
"없습니다. 사세 확장으로 좋은 분들을 모시고 있어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담당자는 나에게 제안을 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그냥 구직 중으로 설정해둔 지원자들 아무에게나 제안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 고민해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서둘어 전화를 끊었다.
잠시 전화기를 끄고 생각에 잠겼다. 내 이력서를 본 회사는 어떤 느낌을 받을까.
너무 급해 보여서 만만해 보일까?
연차나 나이가 애매해서 고민 중일까?
능력 대비 연봉이 높아 보여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을까?
소속시켜 줄 수도 없고 정기적으로 돈을 줄수도 없는, 그저 위촉직으로 돈을 벌어다주면 그중 일부를 셰어 하는 그런 자리.
나에게 허락된 자리는 그런 것뿐이었다.
내가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미래가 너무도 담담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이 정도는 해프닝이라는 걸 깨닫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이력서를 보니 PD로서 정말 훌륭한 커리어를 쌓으셨더라고요!"
처음 들어보는 회사의 인사담당자가 밝게 인사를 했다.
"저희가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라 잘 맞을 것 같아요. 기본급은 300만 원인데 성과에 따라 월 700만 원도 가능합니다!"
인사담당자가 돈부터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틀려먹었다.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아요. 회사가 만든 대본에 따라 직접 녹음하시고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는 게 끝이에요. 회사에서 마케팅 돌릴 거고 조회수도 잘 나올 거예요"
"어떤 영상을 만드는 일인가요?"
"혹시 코인 잘 아실까요? 코인에 대한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리딩 영상인가요?"
"리딩이라기보다는... 투자자분들에게 투자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드리는 거죠"
"그럼 많이 보게만 하면 되는 건가요?"
"아 성과는 영상을 통해 회원 가입을 하시는 분들에 기반해서 측정됩니다"
"결국 불법 리딩이잖아요"
"아 혹시 이해가 잘 안 되시면 전화 끊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코인 불법리딩영상 제작. 이제는 범죄조직에서까지 내게 손을 내민 것이다.
그렇게 일자리를 갈망하면서 아이러니하게 일자리 제안에 의해 나는 조금씩 더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침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