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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동료를 내쫓다-1

by 지크

사업을 하며 갖은 풍파를 겪으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동료들 덕분이었습니다.

최소 15년 이상 관계를 맺으며 서로가 가진 능력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각자 강하게 주장하며 본인 몫을 챙기기보다는 서로를 배려하고 솔선수범하는 스타일임을 파악했기에 조심스럽고 신중할 수밖에 없는 동업을 큰 고민 없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간 큰 성과는 없었지만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할 수 있는 역할에 충실했고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곧 잘될 거라며 다들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디저트 사업을 시작하고 두바이 초콜릿으로 갑작스럽게 사업 규모가 커지자, 정확히 말하면 진짜 사업처럼 일이 굴러가기 시작하자 이 단단한 결속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동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한 건 아주 흔한 일로부터였습니다.


늘 흥이 넘치고 의욕 충만하던 A는 저희 사이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통했습니다. 저희끼리 사적인 대화를 할 때나 특히 술자리에서는 늘 주인공이었습니다.


어느 날 다 같이 모여 초콜릿을 만들고 있는데 유독 카다이프의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카다이프가 왜 이렇게 눅눅해? 제대로 안 볶은 것 같은데?"


카다이프를 담당하고 있던 A가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아 그래? 미안 다시 해볼게. 피곤해서 잠시 집중을 못했나 봐"


그러자 다른 동료 하나가 말했습니다.


"저번에 매장에서 와플도 덜 구워서 난리 났잖아. A는 요리 재능 없는 듯?"


그 말에 모두가 크게 웃었습니다.

늘 있는 해프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어느 날 백화점 모 지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떡볶이 맛이 너무 떨어져서 이번 주까지만 하고 매장 빼주세요. 떡볶이에서 무슨 물 탄 맛이 나네요"


매장 철수야 언제든 있을 수 있지만 저희는 꽤나 주력 지점이라 생각하던 곳이라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 이야기를 처음 전달받은 교수님은 부리나케 매장으로 뛰어갔습니다.

당시 매장 책임자였던 A는 아무것도 모르고 교수님에게 떡볶이를 서빙했습니다.


지점 담당자의 말처럼 떡볶이는 처음 그 맛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밍밍한 맛 그 자체라며 교수님은 직접 남은 떡볶이를 포장해서 저희에게 내밀었습니다.

떡볶이 맛을 본 저희 모두 침묵했습니다.


그날 밤 A는 안절부절못하며 말했습니다.


"그냥 원가 생각이 나서.. 양념장을 조금씩 덜 쓰긴 했는데.. 이렇게 맛이 차이 나는 이유는 모르겠네.."


돌이켜보니 초콜릿 품질에 대한 컴플레인에 있던 날에는 꼭 A가 있었습니다.


한 동료가 무겁게 말을 꺼냈습니다.


"꼭 요리 실력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당분간 제조는 나머지 인원이 할 테니 A는 매장 판매와 관리에 집중해 줘"


A는 알겠다며 맡겨 달라며 큰소리쳤습니다.


불행하게도 문제는 계속 터졌습니다.


"A가 재고 공유를 잘못해서 지금 00 지점 초콜릿이 하나도 없다는데?"


"A가 정산할 때마다 숫자가 안 맞아.."


"옆 매장 사장님이 그러는데 A가 아침에 들어올 때 보안요원이랑 말다툼했대. 본인이 신분증 깜빡하고"


A가 연관되는 일마다 문제가 터지니 저희도 난감했습니다.


그러다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침부터 모 지점 담당자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쪽 매장은 오픈 준비 안 해요? 오픈 시간 다되었는데 왜 아무도 없어요?"


그날 매장 오픈은 A가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A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전날밤 다른 지점 매장 철거를 하고 곤히 자고 있던 동료 하나가 허둥지둥 매장으로 달려갔지만 더 이상 해당 지점에서 저희는 매장 운영을 할 수 없었습니다.


A는 몸살이 너무 심하게 나서 약을 먹었더니 알람이며 전화며 소리를 전혀 못 들었다며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습니다.


A를 제외한 동료들이 모였습니다.


"솔직히 A 때문에 지금 회사 이미지도 그렇고 백화점과 관계가 너무 곤란해"


"A가 담당하는 영역마다 문제가 터지는데 이거야 원.."


긴 침묵이 흐르고 동료 하나가 무겁게 말을 꺼냈습니다.


"지금 A 때문에 빠진 매장이 2개야. 사적인 감정 빼면 나는 같이 일 못하겠다"


다른 동료도 말했습니다.


"사실 나도 A 사고 친 거 여러 번 수습하면서 동업자로서는 안될 것 같다 생각을 많이 했어"


또다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A와 함께한 수많이 많은 아름다운 추억들이 머릿속을 지나갔습니다.

동시에 휘청이는 사업의 현실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15년 이상 희로애락을 함께한 동료를.

지금도 사랑해 마지않는 피 같은 동료를.


우리 손으로 쳐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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